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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y 11. 2024

유설악산기(遊雪嶽山記)

2024. 05. 04

설악산 울산바위에 다녀왔다. 울산바위 등산은 몇 년 전부터 계획했는데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정 생겨서 이제야 가게 되었다. 사람의 심리가 희한한 게 처음에는 "울산바위 한 번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한 번 두 번 스케줄이 어긋나서 못 가게 되니 이상하게 더 가고 싶어지고 꼭 가야만 하는 버킷리스트가 돼버린 것 같다.



날씨는 약간 더웠지만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새벽 5시에 출발을 해서 차량 정체는 없었다. 설악산에 도착하니 아침 8시가 되었다. 일치감치 도착에서 5월의 찬란한 햇살을 여유롭게 만끽했다. 요즘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확실히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다람쥐가 지나간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결혼을 하고 난 후에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산에 자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매주 등산을 하고 싶지만 집에서 가사노동으로 끙끙 데는 아내를 보면 매정하게 그럴 수 없다. 다른 집 남편은 요리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다 주는데 가사일이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가족이 생겼으면 나의 사생활은 일정 부분 접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한 번쯤 밀어봤을 흔들바위. 이 정도면 국민바위라고 해도 될 듯싶다.
계단이 조금 무섭기는 했으나 금방 익숙해졌다. 초등학생들도 올라간다.
울산바위 정상에서 본 속초 바다


이 호텔은 3월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예약하는 과정에 꽤 번거로움이 있었다. 4인가족의 스케줄이 모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험일정, 집안의 대소사, 아내의 일정, 나의 일정.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 같다.


예약 날짜 때문에 호텔에 여러 번 전화를 했는데 그때마다 공교롭게도 같은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여러 번 전화를 하니 귀찮을 만도 할 텐데 그 녀는 정말 친절했다. 더 감동을 받았던 건 예약에는 없던 서비스까지 제공을 해 주었다. 자칫 진상고객이 될 수도 있었던 나는 충성고객으로 변했다. 여러 곳의 호텔을 이용해 보았지만 이렇게 진심이 느껴지는 서비스는 처음이었다.


그 녀는 체크인할 때도 나를 알아보며 반겨주었다. 3개월 전에 예약을 했는데 말이다. 그녀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진심은 어느 호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여행 내내 기분이 좋았다. 진정한 서비스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준 사람이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것에 감동을 받는 것 같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돈을 버는데 all in을 했어야 했나? 성공하여 돈을 벌었어야 했나? 사는 게 팍팍할 때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늘 미안하다. 부를 축적하는데 에너지를 더 많이 쏟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돈을 얻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면 돈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렇게 까지 해서 부(富)를 축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이 가끔 흔들린다. 흔들렸다는 것이지 바뀌었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오랜 시간을 함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가족이라고 해도 같은 공간에 함께 오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같은 집에서 살아도 각자의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서로 표정을 보고 눈빛을 보고 그 사람의 숨소리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숨소리에도 감정이 있다.



저녁은 대충 라면으로 때웠다. 어찌하다 보니 저녁때를 놓쳤다. 급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치킨과 컵라면과 햇반 밖에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에는 지역 맛집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음식으로 감동하지 않는데 고된 산행 후에 먹는 밥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먹는 내내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백담계곡과 만해 마을을 둘러보았다. 숲은 하루가 다르게 울창해지고 있다. 봄은 짧을 것이다. 아까운 봄이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봄을 더 느껴봐야겠다.


만해마을(만해 한용운)
만해마을(만해 한용운)
비 내리는 소양호.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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