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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직 Oct 10. 2022

내가 팀장이 된 이유

이야기의 시작

어느 날 상사가 물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어?"


상사가 작은 회의실로 저를 불렀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첫 번째는 싱가폴에 있는 아시아 헤드쿼터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일했던 외국계 회사에서 2~3년 정도 일한 주니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아시아 헤드쿼터로 가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는 조금 상황이 안 좋은 브랜드의 팀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입사해 4년 정도 밖에 일하지 않은 저에게 팀장이 된다는 상상은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동안 밥먹듯이 야근하며 열심히 일을 했는데 지금까지의 노력이 인정 받는 것 같은 뿌듯함과 함께, '팀장'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불쾌하지 않은 긴장감도 들었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일하고 있으면서도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했던 저에게, 사실 첫 번째 선택지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더듬더듬 말해야 하는 영어로 싱가폴 본사에서 하루종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이었어요. 잠시 생각해 본 저는 큰 고민 없이 대답했습니다. 팀장이 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저는 외국계 기업에서 5년째 해가 시작되던 해에 29번째 생일을 몇 일 앞두고 팀장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그 때 저의 대답이 제가 팀장이 되는 것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그 회사에서는 팀장이 팀원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커리어 방향성에 대해서 자주 질문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 때 상사의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생각했던 '팀장'과 진짜 팀장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팀장이 되었다


그 이후로 6년이 조금 넘게 계속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되돌아보니 참 지치고 힘든 순간도 많았던 것 같네요.


저는 외국계 기업에서 팀장이 된 이후로 2년 정도 그 회사에서 더 일했습니다. 4~5명 정도 되는 첫 팀원들과 함께 2개의 브랜드를 담당했었습니다. 한 개 브랜드는 잘 되었고 지금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른 한 개의 브랜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제가 그 브랜드의 마지막 팀장이었고요.


그 이후로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습니다. 큰 회사에서 일하면서 항상 스타트업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어요. 당시 제가 일하던 외국계 회사의 사무실이 역삼역에 있었는데요. 맞은편 건물에 지금은 엄청나게 유명해진 스타트업의 사무실이 많았습니다. 점심시간마다 마주치는 스타트업 직원들의 사뭇 다른 분위기에 그 호기심은 점점 더 커졌어요. 호기심을 따라 스타트업으로 이직했고 핀테크, 엔터테인먼트, 트레블 테크 등의 스타트업에서 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꽤 다양한 산업을 경험했네요. 그 기간동안 한 회사의 마케팅 디렉터로 근무해 보기도 했고, 현재도 스타트업의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팀장으로 일한다는 것은 아직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회사와 팀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습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와 같은 불안과 공포의 혼돈의 감정을 느낄 때도 많았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몇 일을 고민하며 잠 못이루던 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팀장이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던 상사의 말을 떠올립니다.






내가 팀장이 된 이유


첫 회사에서 팀장이 된 후 시간이 꽤 지났을 때 쯤, 외국인 상사에게 왜 내가 이 브랜드의 팀장이 되었는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상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브랜드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어. 그런데 팀장이 필요했지. 싱가폴 본사와의 긴밀한 소통도 필요했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 브랜드에 가장 필요했던 건 한국 지사에 있는 영업팀과의 탄탄한 협업이었어. 그래서 한국 영업팀 헤드에게 물었어. 누가 이 브랜드의 팀장이 되면 영업팀 매니저분들이 -- 주니어부터 어르신들까지 -- 우리 브랜드의 턴어라운드를 최선을 다해 도울 것 같으냐고. 몇 일 뒤 영업팀 헤드가 영업팀 직원들에게 물어봤는데, 네가 팀장이 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그래서 고민없이 네가 적임자라고 생각했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팀장이 되기 전 팀원으로 있을 때, 당시의 팀장님 몰래 영업팀 매니저들을 도와드린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제 일이 아니었지만 영업팀 어르신들이 요청하는 영업용 자료를 만들어 드리기도 하고, 같이 거래처를 만나달라고 하면 다른 일 제쳐두고 함께 거래처 미팅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팀장님 몰래 한푼두푼 남는 마케팅 예산으로 영업팀에서 추가로 제작해 달라고 하는 매장 연출물을 만들어 드리거나 광고를 지원해 드리기도 했어요. 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일단 영업팀의 도움 요청을 받으면 계산을 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 돕고 싶었습니다. 그게 다른 마케팅 매니저들과 조금 달랐던 모양입니다.


저는 특출나게 일을 잘 하거나,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대단한 잠재력이 있어서 팀장이 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팀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했을 때 남들보도 조금 더 고생해서 도와준 것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상사가 말해 주었던 내가 팀장이 된 이 이유는 '나는 앞으로 이런 팀장이 되어야 겠다'라는 생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거기에 훌륭한 선배 팀장님들을 보고 배우고, 좋은 팀원들을 만나 피와 살이 되는 피드백을 받으며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걸어 온 것 같습니다. 저같이 특출나지 않은 팀장이 우당탕탕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난 6년 동안 다양한 회사와 산업에서 얻은 경험이, 이제 팀장이 되는 훌륭한 분들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변변치 않지만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느 날 팀장이 된 모든 팀장님들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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