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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Nov 11. 2019

우디의 한 마디가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를 불러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됐는데도 소용돌이는 자꾸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소용돌이라는 고얀놈 때문에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이방인이었다. 회사에선 369로 퇴사욕구가 생긴다는데 나는 그냥 매일매일 떠나고 싶었다. 돈 한 푼 없이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만나던 우디를 닮은 남자친구만 아니었다면, 우디의 한마디에 설득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제일 싼 티켓을 사서 어디로든 떠났을 거다. 


근데 우디가 그랬다. 수진아, 돈이 있으면 여행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우디의 한마디는 엄마와의 터키여행을 단번에 불러왔다. 


엄마랑 나는 꿈같은 풍경으로 알려진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참이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새벽마다 떠오르는 열기구를 타라고 했다. 누구는 그게 카파도키아를 둘러보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했고 또 누구는 그게 카파도키아에 오는 이유라고도 했다. 


멋진 걸, 하고 여행사에 들렸다. 열기구 타는데는 한 명당 100불이 훌쩍 넘었다. 가격을 듣고나니 그렇게까지 타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았다. 타고 싶으면 타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하는 엄마한테 우리는 일정이 넉넉하니까 일단 내일 아침에 구경을 하고나서 정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스카프를 휘휘 두르고 카파도키아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열기구가 이국적인 봉우리가 가득한 카파도키아 여기저기서 두둥실 그림처럼 떠올랐다.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신기해서 손을 막 흔들었더니 그 사람들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우와- 하면서 손 흔드는 나를 보고 엄마는 또 내려가서 등록하고 꼭꼭꼭 내일 타러 가라고 했다. 자기는 높은 곳이 무서우니 여기서 이렇게 손을 흔들어 주겠다고. 근데 나는 헷갈렸다. 딱히 타고 싶은지 모르겠어. 


우디 말이 맞았다. 여행을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처음으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열기구를 내가 좋아했을까? 궁금해 하는 것 말고 그 때 그거 생각보다 별로였잖아, 하는 여행이 하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휩싸여 돈의 힘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떠올린 다음엔 틈만 나면 여행에 얼마가 필요할지 찾아봤다. 일년 동안 여행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누구라도 정확히 답을 알려준다면 당장이라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급한데 모두 대답이 달랐다. 


누구는 오백으로도 충분했다고 했는데 누구는 오천도 모자랐다고 했고 누구는 심지어 일억을 모았는데도 부족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왜죠? 정보를 구하면 구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세상엔 그런 질문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걸 모르는 스무 살 초반의 수진이었다. 


다행이라면 내가 단순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 그럼 하루에 십만 원만 쓰지 뭐. 그러면 일 년 365일, 삼천육백오십만 원. 어떤 날은 적게 쓰는 날도 있을 거니까 대충 삼천 모으면 일 년 여행 할 수 있지 않을까? 삼천만 원. 목표가 정해지니 되려 쉬웠다. 그 돈만 모으면 되겠지 뭐. 


하지만 삼천만 원은 큰 돈이었다. 첫 월급에서 백만 원을 뚝 떼서 모으기 시작했다. 못 입고 못 먹는 것보다 여행 못 가는 게 더 싫었다. 직장인이 되면 생활이 좀 핀다지만 내겐 여전히 만원이 컸다. 엄마는 월급의 반을 저축하는 나를 기특하게 생각했지만, 그건 얇은 치마 한장 휘 두르고 자유롭게 떠돌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맛보고, 만나고 싶은 어린 시절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오는 4월이 되면 삼천만 원이 다 모일 거였다. 꼬박 삼 년 하고도 삼 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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