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내꺼라는 거짓말
먼 곳이 그립다고 앓는 소리를 했어도 곰곰히 돌이켜보니 나는 꽤나 착실히 사회의 요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내 사주를 보고는 평범하게 살 거라고 했다는 점쟁이가 떠올랐다. 그거 들으려고 돈 내고 왔나. 엄마를 쏘아붙이면서 발끈했었는데 어쩌면 그 점쟁이가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고2 때 문과냐 이과냐 고른 거랑 고3 때 대학교와 전공을 택한 것쯤 잘 쳐줘서 선택이라면 모를까 돌이켜보니 인생을 바꾸는 선택 같은 건 한 적 없었다. 세상이 하라니까 학교에 가고 공부를 했다. 좌우 깜빡이를 켜고 사회가 인정하는 큰길 안에서 적정속도로 달리며 살았다.
저기 멀리에 진짜 내 삶이 있다고 확신했으면서도, 소용돌이가 돌 때마다 숨을 들이켰으면서도, 언젠가 내가 내 꿈을 이뤄줄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한다는 게 무서웠다. 내 결정이 전부 내 몫이라고? 처음 느껴보는 내 인생이라는 존재가 깨닫자 마자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가 선택한다는 건 결과도 책임도 내 몫이라는 건데 아니 뭐, 해본 적이 있어야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게 겁나는 일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다. 내가 하려는 선택이 다 틀린 것만 같았다. 이런 선택을 하고서도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는데 스물 넷 남짓 나의 세계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가득했다.
내 인생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열 번 쯤 했는데 샤워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러다가 결국 여행을 안 가면 어쩌지? 세계여행 가고 싶었다고 꿈만 꾸면서 살다가 뻔하게 늙어서 여행 가고 싶다는 어린 친구들한테 ‘나도 네 나이 땐 말이야’ 하고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면 어쩌지. 언젠가 떠날 거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무서워서 머무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순식간에 겁나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 상상이 훨씬 더 무서웠거든. 남의 시선 때문에 내 결정을 의심해서 겁이 났던 거다. 가짜 겁에 눌려있었다. 무전여행이라도 떠나겠다고 생각했던 어린 내가 봤으면 비웃었을 게 뻔하다. 아.. 내가 나를 의심하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사직서 사유란에 세계여행을 또박또박 눌러 적었다. 그렇게 나는 고속도로 옆에 있는 비상탈출구 문을 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