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하고 인사를 하네
이륙을 준비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하와이에 도착이라니.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불끈 솟았다. 미국은 처음이다. 아니 집에서 이렇게 멀리 벗어난 건 처음이잖아. 인터넷에서 본 카더라에서는 미국은 가임기의 직업 없는 여자에게 입국 심사를 특히나 까다롭게 본다고 했다. 흥, 내 나라두고 누가 불법으로 살고싶을까봐? 생각했지만 하와이 땅도 못 밟아보고 한국으로 고대로 반송될까봐 이스타 신청서류, 통장 잔액을 증명하는 서류, LA를 거쳐 멕시코로 아웃 하는 표까지 꼼꼼히 클리어 파일에 담아 온 터였다. 안전벨트 사인이 켜지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고양이 세수를 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웃음을 지었다. 응. 이 정도면 착해 보여 괜찮아.
착륙. 호놀룰루 공항에 내렸다. 룰루. 이름마저 이쁘잖아 생각하면서 비몽사몽 하는 아기를 챙기는 가족 여행자들을 제치고 서둘러 걸었다. 공항에서는 하와이 느낌이 하나도 안나네. 얼른 공항 밖으로 나가고 싶어. 입국 심사장에 도착하니 갑자기 하와이 분위기가 와락 난다. 덩치 좋은데다 까무잡잡하게 탄 공항 직원들이 야자수가 그려진 빨강초록파랑이 뒤섞인 알록달록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웃으면서 알로-하 하고 인사했다. 세상에. 여기서는 정말 알로하라고 인사하나 봐. 처음으로 하와이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예전 명함이라도 챙길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심사를 기다렸다. 여전히 긴장됐다. 모자를 벗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심사관에게 걸리길 바라고 있었는데 제일 깐깐해 보이는 심사관에게 걸렸다. 어쩔 수 없지. 세상 제일 따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심사관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Hi(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여권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여권이랑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내가 해가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두툼한 클리어 파일을 함께 건넸다. 그는 내 여권을 슥 훑어보고는 하와이는 처음이야? 하고 물었다. 네. 처음이에요. 3년 동안 세계여행을 준비했는데 하와이가 첫 번째 목적지에요. 묻지도 않은 대답을 늘어놓았다. 그제야 심사관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임프레시브! (인상적이네) 하고 슬쩍 끄덕였다. 감이 좋은걸. 서핑해봤어? 그가 물었다. 아뇨. 근데 꼭 배워볼 거에요. 얼마나 머물 거야? 하와이에 한 달 있다가 LA로 갈 거고 거기서 멕시코로 아웃 할 거에요. 비행기 표는 여기 있어요. 그리곤 괜히 말했나 하고 조금 후회를 했다. 카더라에 따르면 심사관 재량으로 아웃 비행기표 날짜까지만 비자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까진 다 알아들었으니 다행이다. 그는 여권을 뒤적거리더니 빈공간을 찾아 비자 도장을 꽝 찍었다.
웰컴 투 하와이.
땡큐!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마자 여권을 펼쳤다. 3개월 꽉 채운 비자가 찍혀 있다. 이젠 공식적으로 하와이에 왔다. 진짜 여행이 시작된 거야. 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