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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Nov 11. 2019

먼 곳에의 그리움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남들도 그런 줄 알았다. 다들 마음속에 소용돌이 하나쯤 이유 없이 팽팽 돌지만 잘 숨기고 안 그런 척 살아내는 줄 알았다. 그들을 보면서 왜 나는 남들처럼 못하는 걸까? 의아해했는데 알고보니 나만 그런 거였다. 그래서 그랬구나. 소용돌이가 없으니까, 소용돌이에 휩쓸린 적이 없으니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구나. 그걸 알고 나니 되려 마음이 편했다. 



이건 내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소용돌이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기억하는 때부터, 그러니까 꼬꼬맹이 때부터 내 마음 한복판에는 소용돌이가 있었다. 이노무 소용돌이는 예고도 없이 몰아쳤는데 그게 몰아치기 시작하면 나는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빨려 들어갔다. 그 안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무력했다. 무턱대고 가져본 적 없는 것, 가보지 않은 곳이 그리웠다. 우리 가족은 외국에 가본 적도 없는데 왜 어째서 먼 곳이 그리운 건지 내가 나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를 이 세상에 데려온 엄마도 물었다. 니는 뭐가 문제고? 


여기서 태어난 죄로 여기에서 죽을 것 같아요. 그럴 이유도 없는데 마음이 그리움으로 가득차서 울렁거렸다.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몰려올 때마다 내가 여전히 같은 곳에 있다는 게 유독 생생했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이 미웠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지겨웠다. 여전히 같은 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용돌이에 익숙해졌지만 낌새를 눈치챌 순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어서 숨을 흡, 들이키고 사라져라 사라져라 하고 중얼거렸다. 가본 적 없는 세상이 그리워서 착실히 하루를 보내고도 침대에 누우면 마음이 허했다. 왜 나는 여기에 있지? 왜 나는 내가 태어난 곳에서 사는 게 이렇게 어렵지? 어떻게 가본 적도 없는 곳이 그리울 수가 있지? 그게 가능한 걸까? 대체 왜 가본 적도 없는 곳에서 나를 부른다고 확신하게 되는 거지? 왜 나만 이렇지? 답을 할 수 없었다.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마음을 따라가 보는 것. 무엇이 나를 불렀는지 시간을 들여 알아보는 것. 


그래서 떠났습니다.



1.

마트에 가서 포도를 보고 생각했다. 헐. 팔다리 없는 포도도 칠레에서 여기까지 왔네. 나는 뭐냐.


2. 

그리움과 먼 곳으로 홀홀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가의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서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공상해 보고 웃기도 한다.

내게도 집시의 피 한 방울 섞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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