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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24. 2021

숫자와 마음 중

( 뜨개질 귀걸이 )

오랜만에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늘 함께 살다가 결혼 후 떨어져서 살다 보니 문득, 이렇게 엄마를 오래 안 보고 살아도 되나? 궁금했다. 나는 엄마가 자주 그리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내밀한 부분은 잘 이야기하지 않기에 엄마는 나 없이도 잘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가끔 이렇게 만날 때, 맛있는 걸 사드리고, 좋은 곳에 데려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윤기 나는 간장게장을 하나씩 주문해서 쪽쪽 살을 발라먹고 돌솥밥에 누릉지 물도 붓는다. 오색 밑반찬을 엄마 가까운 곳에 가져다 놓는다. 식혜도 떠다가 숟가락 옆에 갖다 놓았다. 반찬에 많이 보고싶었다는 마음을 실어 엄마 곁에 두었다.  


뜨개질을 하며 색색의 실로 힘든 삶을 지워내셨던 엄마. 포코그란데의 뜨개질인형 전시를 보여 드리고 싶어 방문했다. 늘 비슷한 것만 만드시기에 다른 뜨개질의 세계로 나들이를 떠났다. 안경을 올려 인형 가까이에 눈을 맞추고 이건 어떻게 뜨는 것인지? 동그란 생각풍선을 머리 위에 띄우셨다. 많은 영감이 채워지길 바라며 근처의 카페에 들렀다.


엄마가 커피를 사겠다고 했지만 말렸다. 


"엄마는 누리기만 해. 그동안 나에게 해준게 얼마인데.... 평생가도 다 못 갚아."


쑥스러운 내가 한 고백이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의 공백을 대화로 빼곡히 채워나갔다. 곧 있을 제사에 대한 부담을 다독였고, 아빠가 설거지를 다 한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졌다. 결혼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게 어색했다. 엄마는 지하철 역으로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려는데 엄마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네가 좋아하는 오이지 조금 해왔어. 가서 먹어.”    

 

내 가방이 무거워질까, 엄마가 계속 들고 다니다가 헤어질 때 건넸다.    

  

“엄마, 집에 오이지 많아. 지난번에 어머님이 많이 해주셨어. 미리 물어보고 해오지. 왜 그랬어?”

“,,,,,,,,”

“못 먹으면 아까우니까 다시 가져가서 엄마 먹어.”     


내 생각해서 해오신 건데, 모른 척 받아 오기에는 다 못 먹을 것 같았다. 힘들게 만든 시간이 아까워서 돌려보냈다. 뭔가 꼬여버린 엔딩 장면같이 찜찜했다. 서로 몇 발자국 가서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를 반복했다. 못 만날 사이도 아닌데 헤어질 때마다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반짝이던 모든 시간을 함께한 엄마이기에 엄마의 시간을 내가 볼 수 없고, 서로를 모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게 힘겹게 느껴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청주의 어느 식당에서 한우 갈비를 먹고 있었다. 반대편 테이블에는 네 가족이 엄마를 모시고 식사를 했다. 우리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쪽은 식사가 끝나갔다. 친정엄마로 보이는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다시 앉았다.      


“내가 고기 2인분 더 시켰어.”

“엄마, 우리 배불러. 더 안 시켜도 돼요.”

“부족할까 봐. 많이 먹어.”

“우리 더 못 먹어. 물어보고 시키지?”     


목소리에 조금씩 가시들이 돋아났다. 사위가 사장님을 불러 방금 시킨 것 취소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벌써 고기가 나와서 안 된다고 했다. 순간 적막이 흘렀다.      


“엄마가 낼게.”

“됐어요. 우리가 맛있는 거 사드리려고 한 건데…. 뭘 엄마가 내요? 싸가야지 모.”     


분위기가 날카로웠던 추가로 시킨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괜찮았을 텐데 한우였기에 값도 비싼데 더 먹을 수 없어 낭비되는 것처럼 느꼈을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먹어요?”

“아니, 나는 애들 잘 먹으니까, 더 먹으라고 시킨 거지….”


어머님은 어쩔 줄 몰라하셨고, 따뜻했던 식사 시간은 그 앞에 놓인 숯처럼 식어 갔다. 옆 테이블에 있던 나마저 곤란해서 발을 동동거렸다. 친정엄마의 마음도 알겠고, 자식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그 상황에 놓인 건 내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친정어머님의 표정을 보며 마음이 쓰였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행동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때,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다.     

그 순간, 우리 엄마도 저런 마음이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해서 못 먹을까 봐 돌려보낸 오이지 뒤에 숨은 마음이 그곳에서 보였다.     



갈비 56000원.

오이지 2통.     




왜 마음보다 숫자가 먼저 보일까? 

왜 늘 마음은 지각하는 걸까?      






< 오늘의 언박싱 _ 뜨개질 귀걸이 >


뜨개질 소품들은 포근함을 가지고 있다. 

총을 만들어도 포근하고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도 앙증맞다.

세상 모든 물건들을 귀엽게 만드는 뜨개질의 속성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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