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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8. 2021

산에 있는 인생

( 제니스 쿠키 )

< 오늘 온 택배 _ 제니스 쿠키 > 


홍콩의 제니스 쿠키는 꾸덕한 느낌으로 버터맛의 밀도가 느껴진다.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 그래서 하루에 3개씩만 먹기도 다짐을 한다.


 또 하나의 매력은 매 시즌마다 바뀌는 틴케이스 그림들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곰돌이의 의상을 보는 즐거움과 틴케이스를 수집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디.





틴케이스를 열기 전, 쿠키의 맛을 모르듯 

산을 타기 전, 무엇을 보게 될 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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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언제 나타날까?”

“빨리 걸어야 운동이 된대.”

“이 버섯 좀 봐.”

“내 몸속의 변화를 느껴봐”     



산을 오르며 각자가 집중하는 것이 달랐다. 동산이몽이었다. 아이는 주머니에 작은 쿠키를 챙겨 갔다. 저번 산에서 만난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넷 중에 가장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좀 천천히 가자는 나의 제안에 그렇게 해서는 운동이 안 되고, 빨리 걸어야 운동이 된다고 했다. 



등산을 안 좋아하는 나는 도대체 산을 왜 오르는 거냐고 물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온몸으로 스며드는 자연의 공기를 느껴보라고 했다. 등산인다운 이야기였다. 말대로 숨을 들이마셨다. 뜻밖의 진한 향수 냄새가 코 속으로 돌진했다. 남편의 향수 냄새였다. 산에 가는데 왜 향수를 뿌린 거지? 자연의 향기를 맡으려고 하면 자꾸 인공의 냄새가 코 속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내 뒤로 와야만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오소소 소소’ 소리를 냈다. 바닥에는 작은 도토리들이 모자를 벗어 놓았고, 밤들은 외투만 남기도 외출을 했다. 누워 쉬는 나무도 있었다. 


산을 오르다가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몸보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인 것 같았다.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야 했다. 


행복은 셀프


드문드문 버섯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처럼 한 개, 두 개 스쳐갔다.      



하얀 꽃 모양의 버섯

가운데는 밤색인데 끝으로 갈수록 옅어지는 버섯

나무에 계단처럼 타고 자란 버섯

나이테에 자란 목탄 같은 버섯

난간에 오렌지주스가 흐른 것처럼 핀 주황 버섯

빨강 우산을 펼친 것 같은 버섯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었다. 버섯 발레리나들의 스커트를 감상하다보니 다리에 모터를 단 듯 신이 났다. 지루했던 산이 호기심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기쁨의 도미도를 이어가던 중 한 시간이 넘어 가자 문득 돌아갈 길이 걱정되었다. 정상까지 편도로만 가면 갈 수 있겠는데, 온 거리만큼 되돌아가야 했다. 나와 아이는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하고 체력이 좋은 남편과 엄마는 정상에 가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두 팀으로 나뉘었다. 차를 가져가야 했기에 차 키를 받아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내려오는데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좀 전에 왔던 길은 찾을 수 있었는데 내려갈수록 아리송했다. 도심에서는 건물이나, 은행, 횡단보도가 지표가 되어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산은 온통 나무뿐이어서 왔던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올라갈 때에는 남편이 앞장서서 졸졸 따라가기만 했기에 정확한 길을 몰랐다. (등산인들은 올라갈 때 어떤 지점들을 기억하며 간다고 한다.) 갈림길마다 있던 방향 표시 푯말도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중간의 다른 지점들을 말해주었다. 또 지도에는 가야 할 지점이 정확히 그려져 있는데 표지판에는 그 이름이 없어 더 헷갈리기도 했다. 정확한 정보전달이 중요한 산에서 푯말과 지도가 엉뚱했다.

감각으로 찾아 한참 내려갔는데 뭔가 쎄-한 기분이 들었다. 올 때 이런 풍경이 없었는데... 


한 시였음에도 햇빛 없이 스산하고 추웠다. 우리의 마음 같았다. 핸드폰을 켰다. 지도 속에서 우리가 움직이는대로 동그란 점도 같이 움직였다. 산 속이었기에 화살표는 뱅그르르 돌기만 했다. 헷갈렸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객관식 문제를 풀 듯 4개 중 아닌 곳 2곳을 제외했다. 남은 두 곳 중 한 곳을 택해야 했다. 이미 지치기도 했고 한 번 더 헤맸다가는 공포심이 생길 것 같았다. 고민하는데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을 만났다.      



“저희가 길을 헤매서 그런데요. (핸드폰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로 나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할까요?”

“이 쪽으로 가면 돼요.”     



자신감이 있는 답이었기에 용기가 조금 생겼다.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여전히 걱정스러워 보였다. 이 상황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목표가 있어도 이렇게 헤매는 순간이 생겨. 목표로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처럼 길을 가다가 잘못 들어서면 다시 되돌아가도 되고, 내비게이션을 켜는 지혜를 발휘해도 돼. 그리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서 도움을 구해도 되고....”


“산에 인생이 있었네.”     


 “조금 있으면 길 찾을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아이에게 한 말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입으로 나온 말은 아이의 귀를 지나 내게 도착했다. 산길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버섯을 보며 즐기던 경쾌한 마음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 시간을 헤맸을까? 위기의 정점을 찍고 결말에 다다르듯 들어설 때 오른 나무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에 도착하자 그늘은 사라지고 햇살이 쏟아졌다. 우리의 얼굴에도 웃음이 쏟아졌다. 걱정으로 사라졌던 말들도 와글와글 생겨났다. 내려와 우리는 긴 탐험을 마친 듯 포옹을 했다. 


손을 꼭 잡고 주차장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달콤한 코코아를 마시며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자고 이야기했다.      


삶과 닮은 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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