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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8. 2021

반찬 목소리

( ㅋㅋㅋ 접시 )

우연히 <ㅋㅋㅋ접시> 보았다. 하얀색 접시 안에는 꽃이나 식물, 나비, 고양이 그림이 아닌 ㅋㅋㅋㅋㅋㅋㅋ 라는 글자가 파란색으로 빼곡히 그려져 있다. 카톡창에서만 보던 ㅋㅋㅋ를 접시 위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접시와 한글은 서로 사는 곳이 달랐기에 한 공간에서 만난 장면을 보니 낯설고 신선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접시는 누가 만든 것일까? 찾아보니 ‘연호경’이라는 도자기 작가의 작품이었다. 작가의 SNS에 들어가자 신발창 모양의 접시도 있었고, 글을 쓰다가 틀렸을 때에 찍찍 그은 낙서도 파스타 볼 위에 그려져 있었다.      


I HAVE NO IDEA.

I LIKE YOU.

SEOUL

EXIT     


라는 손글씨가 적힌 그릇들도 있었다. 모두 범상치 않았다. 그동안 보아온 그릇과 차별화된 작품이었다. 접시를 깨는 건 곤란했지만 접시에 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작가의 작품들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경기 세계 도자비엔날레를 보러 가는 길에 이천에 위치한 작가님의 공방을 방문했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접시를 보니 파란색의 ㅋㅋㅋ 가 동동 떠다니며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싼 가격은 아니었기에 접시를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며 요리조리 살폈다. ㅋㅋㅋ접시를 사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며 남편과 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접시를 왜 사? 내가 써 줄게.”

남편이 말했다.

“엄마는 하하연이니까. 내가 ㅎㅎㅎㅎㅎ 접시 만들어 줄게.”     



두 사람의 반응에 맥이 풀렸다. 나의 소비에 강한 호응을 얻지 못하자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그곳까지 가서 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딸이 하얀색 지점토를 꺼내 접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ㅎㅎㅎ 접시를 만들어 준다는 거였다. 미술활동의 교육적 차원에서 그렇게 만들어 보는 것까지는 좋겠지만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작가가 만든 접시를 보는 건 쉽다. 판단하고 결론 내리는 것도 쉽다. 하지만 그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접시 위에서 키워 유형의 그릇을 만들고 굽고 하는 과정은 어려운 일이다. 보는 것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접시 안에 숨은 과정과 시간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접시에 매력을 느끼지 않아서 구입하지 않는 건 괜찮지만 좋아하는 데 따라 만드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을 모방해서 만든 짝퉁과 같은 일 같았다.




언젠가 책에서 진짜가 아닌 가짜 물건을 구입하면 안에서 거짓 자아가 생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거짓 자아는 어떤 행동을 하든 움츠려 드는 마음을 길러낸다고 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은 다 폴로 옷을 입고 있었다. 폴로 모자, 폴로 바지, 폴로셔츠, 폴로 양말까지... 부러운 마음에 가짜 폴로 모자를 사서 그걸 쓰고 수학여행을 갔었다. 2박 3일 내내 그들의 당당하고 깔끔한 폴로 로고와 나의 휘청이고 풀 죽은 폴로 로고가 교차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 누가 뭐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부끄러웠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거짓 물건을 구입 한 순간에는 몰랐지만 그 물건을 사용하는 시간 동안 찜찜함과 죄책감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 여운이 더 무서운 거였다.


아이에게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시간을 훔치는 생각 도둑이라고 말했다. 꼭 물건을 훔쳐야만 도둑이 아니라, 누군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창작물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고... 그래서 <ㅋㅋㅋ 접시>를 따라 만들기보다는 사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나 조차도 모호했던 감정이 말이 되어 나오니 명확해졌다.


그러니 결국 ㅋㅋㅋ접시를 꼭 사야 했다. 첫사랑을 살면서 여러 번 만나지 못하듯 살다가 한눈에 반한 물건을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작품을 구매해서 작가의 아이디어를 응원해야 했다.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수집하는 마음이었다.     


작가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번에 공방에서 접시를 보고 갔는데 계속 아른거려서요. 구입할 수 있을까요?’


다음 날, <ㅋㅋㅋ접시>가 도착했다.

어느 날은 버섯이, 어느 날은 고등어가, 어느 날은 참외가 ㅋㅋㅋㅋㅋㅋ 웃었다.

날마다 반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 오늘의 언박싱 _ ㅋㅋㅋ 접시 >


접시에 글자를 쓴 아이디어를 구입했다.

가끔은 글자들도 핸드폰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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