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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15. 2022

눈동자를 붙여봐요

< 길거리에서 수집한 멀어지는 눈동자/ 카페에서의 분홍색 얼굴들 >



거대한 트럭도 눈동자 스티커 하나를 붙이면 순식간에 귀여워졌다.



컵 손잡이를 사이에 두고 눈동자 스티커를 붙이면 높은 코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눈이 달린 슬리퍼는 쌍둥이 같았다.

간판집 여닫이문에 붙은 눈동자는 문을 열 때마다 눈 사이가 멀어졌다가, 문을 닫으면 눈 사이가 가까워졌다.

눈동자가 붙은 딸기 음료는 얼굴이 늘 분홍빛이었다.


카페, 마트, 도로, 길거리 어디서든 눈동자가 있는 곳이면 저절로 눈길이 갔다. 의인화된 귀여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눈동자 스티커 하나로 트럭은 ‘존’이 되고, 컵은 ‘수진’이 되고, 슬리퍼는 ‘량현, 량하’가 되는 재밌는 장면이었다. 무표정한 사물에 동그라미만 더해졌을 뿐인데 한 명의 사람으로 재탄생되었다.



눈동자 있는 물건을 수집하다 보니, 주위에서도 나의 눈동자 사랑을 알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윙크하는 신발을 선물해 주었다.


한 동안 이 신발만 신고 다녔다. 이 신발을 신은 날에는 내 몸에 눈이 네 개였다. 이 치료를 하러 치과를 갔다. 평소 진료할 때. 말이 없으셨던 의사 선생님이기에 그날도 사무적인 진료만 이루어질 줄 알았다. 치과의 베드에 누워 입을 벌리고 있는데, 과묵했던 의사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 녀석이 쳐다보고 있으니, 긴장되네요."


내 신발을 보고 한 말이었다. 윙크하는 신발은 말이 없던 사람도 위트 있게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입을 열 수밖에 없는 운동화였다. 눈동자의 힘은 이렇게 셌다.


수집을 하다 보니, 눈동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나아가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발견은 수동적인 일. 어느 순간, 어디에서 만날 줄 모른다. 어떤 날은 눈동자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그런 고민 속의 어느 날 능동적인 수집을 할 수 있는 걸 발견했다. 문방구에서 눈동자 스티커를 발견했다. 종이로 된 스티커 말고, 하얀색 부직포 위에 검은 눈동자가 그려진, 탄탄한 스티커였다.


그 순간부터 의인화된 사물들을 기다리지 않고 창조할 수 있었다.


내가 신이 되어,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곁에 둘 수 있었다. 스티커를 잔뜩 사서, 화장실 문고리에도 스티커를 붙이고, 차에 타서도 핸들에 눈 스티커를 붙였다. 거대한 직사각형 얼굴을 가진 텔레비전에도 눈을 만들어 주었다. 자동차 키, 핸드폰, 화분, 호빵, 귤 등 그 무엇이 되었든 눈 스티커를 마구마구 붙였다. 집안 곳곳은 마치 야구 관중석처럼 눈동자가 가득했다. 어디든 붙이기만 하면 무표정했던 것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연필꽂이에 눈을 붙여 주니, 학교에 가면 어디에 놓아도 잘 구별되어 좋다고 했다. 친구에게 건네는 선물 포장이 밋밋하면 눈동자 스티커를 붙였고, 휴대용 선풍기에도 붙였다. 시간이 지나, 좀 지저분해진 눈동자는 깨끗한 것으로 바꿔 주기도 했다. 이쯤 되니, 눈동자가 붙어 있기 않은 것들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거리에서 그라피티를 하는 예술가처럼 나는 날마다 눈동자 아티스트였다.






눈동자를 수집한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주위에 나처럼 눈동자에 열광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존재했다. 드라마틱한 귀여움을 아는 사람이 또 있다니….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이리나 블록(lrina bloc)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브랜드 로고를 만든다. 그녀는 브랜드 디자인을 하다가 어느 날 ‘로고가 나를 보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후 놀이처럼 로고들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나이키 로고에 눈동자를 그리니 날렵한 바람돌이가 되었고, 펩시 로고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니 입을 크게 벌려 웃는 사람이 되었다. 애플 로고는 살아 있는 사과가 되었고, 미키마우스는 순식간에 큰 귀를 가진 개구리가 되었다. 브랜드의 오래된 역사와 근엄함 위에 얹어진 눈동자는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갔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발랄하게 바뀐 로고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즐거운 상상이라며 사람들은 좋아했다.   

<이리나 블록의 작품들/ 펩시로고, 나이키 로고>





눈동자를 물건에 붙일 수도 있었지만 회사의 로고에도 붙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것보다, 약간만 새로운 것에 열광하므로 그녀의 작품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쯤 되니, 사물의 눈 말고

사람에게 눈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친구는 평소에 선글라스를 쓰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 중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눈인데, 예쁜 눈을 선글라스로 가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멋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에 친구의 말은 신선했다.



그동안 미인은 눈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몇십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이 생각은 코로나를 겪으며 달라졌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다. 입을 가린 채, 반쪽 얼굴로 사람들을 만났다. 반이 가려진 얼굴을 보며, 코와 입을 상상했다. 여기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니 얼굴을 상상하는 감각이 풍성하게 작동했다. 모든 감각으로 상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제스처

말의 속도와 억양,

목소리톤

옷차림 등


비언어적 요소로 상대를 느끼기 시작했다.

코로나 전에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첫인상으로 판단할 때가 많았다. 그걸 경계한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외모는 크게 다가왔다. 마스크 없던 세상에서는 시각에만 의존했다면, 마스크 쓴 세상은 외모 이외의 것에 집중하게 했다. 코로나의 순기능이었다.


마스크가 벗어지면 실망하는 얼굴도 있었지만,

서로의 눈만 바라본 상대는 그 누가 되었든 아름다웠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매력적이었다.



결국 외모란 조화로움이 중요했다.

눈을 마주치며 알았다.



반쯤 가려진 얼굴로 사람을 만나는 세상도 좋다. 외모 이외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상대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눈만 바라보며 사는 세상은 이렇게 다채롭다. 수집을 하다 보면 발견을 넘어 창조하게 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더 깊이 사색하게 된다. 수집은 삶을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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