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일기 D+1
우리는 조리원에 가지 않는다. 산후 도우미도 부르지 않는다. 분유 안 먹이고 모유 수유를 하기로 했다. 어떤 이유나 신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풀어 말하자면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아빠인 내가 직접 아기를 볼 수 있어서다.
조리원을 안 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대개는 놀라면서 '왜 안 가세요!?' 하고 묻는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시시콜콜 설명하고 싶지 않으니 조리원 가는 척하고 말을 아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조리원은 한국에만 있는 문화이며, 그런 쓸데없는 곳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과격한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조리원이 있어 다행인 일이라 생각한다.
엄마 혼자 아기를 본다고 해보자. 출산 후에 집에 돌아오면 아기를 케어하면서 몸을 회복해야 하고 자연스레 식사, 청소, 빨래와 같은 집안일도 하게 되는데 출산 후 아직 온전치 않은 몸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기는 우는데. 육아는 전부 처음 해보는 일뿐인 데다, 산후 릴렉신 호르몬으로 관절이 취약한 상태다. 이런 때에 아기를 위한다고 엄마 몸 생각 안 하고 관절을 과하게 사용해서 다쳐버리면 이게 흔히 말하는 산후풍이 되는 거고 잘못하면 평생을 간다고 한다. (참고로 산후풍은 차가운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엄마들이 출산 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환경인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하는 남편들이 많지 않고, 부모님들도 도와주실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도와주실 수 있다고 해도 부모님들과 육아 방식의 차이로 스트레스만 더 받기도 한다. 조리원이 아니라 산후 도우미를 부른다고 해도 결국 밤에는 혼자서 아기를 봐야 하며, 남이 내 집에 오는 게 불편한 것은 덤이다. '왜 조리원을 안 가느냐' 하는 호들갑이 이해할만하다. 그러니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만이라도 남의 손을 빌리자는 거다.
하지만 아빠인 내가 육아휴직을 한다면 어떨까? 식사, 청소, 빨래와 같은 집안일과 아기 트림시키기, 달래기, 기저귀 갈이도 아빠가 할 수 있다.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모유수유와 몸 회복하기다. 모유 수유는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괴로움은 있지만 자궁 수축을 도와 엄마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해 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아빠가 아기를 돌보면 무엇보다 아기와 부모 모두에게 좋다. 아기는 생후 2주간 태어나서 처음 겪는 세상을 온전히 엄마, 아빠와 함께할 수 있다. 엄마, 아빠도 몸은 고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이 기간을 아기와 함께 보낼 수 있고, 또 아기를 직접 돌보며 부모로 거듭난다. 아기와 보내는 시간 자체만으로 부모에게는 선물이다.
신생아는 잠만 자지 않느냐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만으로 삶을 깎아내리는 태도라 생각한다. 신생아의 삶을 상상해 보자. 잘 보지도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지만. 매일이 새롭다. 오늘부터 새로 볼 수 있는 것들이 다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조금씩 더 잘 움직이게 될 거다. 삶의 놀라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관측이 가능한 세계, 상상력이 결여된 빈약한 어른의 세계에서는 신생아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측정 가능성은 어른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미덕일지 모르나 아기에게는 그렇지 않다. 새롭게 삶이 열려가는 경이로운 순간에 부모가 함께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병원에서도 아기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24시간 모자동실을 해버렸다. 새벽 3시에 출산을 했으니 잠도 제대로 못 잔 피곤한 몸으로 바로 다음날부터 밤에 자는 건지 깨어있는 건지 모르는 상태로 퇴원날까지 견뎌야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검사로 자꾸만 아기를 뺏어가서 분유를 먹여버리는 병원이 야속하기만 하다.
24시간 동안 태어난 지 24시간도 안된 갓난아기와 함께 지내라고 하면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나름 공부를 해왔다지만 그래도 아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직 어색한 사이인 우리가 옆에 딱 붙어서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니. 밥은 제대로 먹일 수 있을지, 우는 애를 달랠 수나 있을지 걱정이 많다. 하지만 임신의 순간부터 부모에게는 후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기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빠르게 커가기 때문이고, 커가는 아기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차피 겪어야 할 어려움이라면 가능한 일찍 겪고 일찍 능숙해지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신생아와 첫날밤을 보내고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1. 아내의 모유는 아직 거의 나오지 않는다.
2. 아기들의 배고파 싶어 하는 표정은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다.
3. 쫑알이는 불 켜진 화장실에 가면 쉽게 울음이 그친다. 아무래도 백색소음 영향으로 보인다.
4. 생각보다 아기는 잘 울지 않는다.
5. 앞으로 푹 잘 수 있는 날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출산 후 6시간 병원에서의 기본적인 검사를 마치고, 쫑알이는 우리가 있는 병실로 왔다. 새벽 3시에 출산이었기에 다음날 10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오매불망 언제 10시가 되는지만 기다렸다. 출산 때에는 아기와 엄마가 건강하기를 걱정하느라 설렐 틈이 없었는데, 다시 아기를 보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은 임신과 출산 전 과정을 통틀어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약속의 10시. 정말로 아기가 우리 품으로 오는 시간이 되었다. 아기는 항상 운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본 쫑알이는 얌전했다. 많은 시간을 자고 있고 깨어 있을 때도 잘 울지 않았다. 성격이 순한 아기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발달 단계상 아직 잘 울지 않은 시기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출산 시에 회음부 통증으로 제 몸 가누기도 힘들어 화장실도 함께 가야 했기에 쫑알이 달래기와 기저귀 갈이는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아기가 울면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아내의 젖을 물리고, 달래고 재우고. 신생아실에 검사를 보내면 그제야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한다.
아직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고, 모자동실 중간에 신생아실에서 검사를 명목으로 아기를 데려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는 이때가 육아 난이도가 가장 쉬운 시기다. 튜토리얼이라고 할만하다. 다만 그만큼 아내의 몸상태가 좋지 않고, 새벽 출산으로 잠을 잘 못 잔 시기라 체력적으로는 고달프다. 개운하게 씻지도 못하고 다리 쭉 뻗고 잘 수도 없지만 이미 아빠가 되었으니 불평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