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컴퓨터를 갖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부모님이 큰맘 먹고 데스크탑을 사주었는데 나는 그 비싼 컴퓨터로 테트리스만 했다. 그거 말고는 컴퓨터를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으니까. 컴퓨터를 좀 더 다채롭게 사용하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였으나 그때도 인터넷, 한글, 메신저 이렇게 세 가지만 썼다. 그보다 넓은 컴퓨터의 세계에 대해서는 이해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컴퓨터를 하다가 뭐가 잘 안 되면 세게 두들겨보거나 전원을 껐다가 켰다. 스피커가 꺼져있는 줄도 모르고 소리가 안 난다며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사운드카드를 삭제해서 동생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은 이후로 컴퓨터가 안 되면 늘 동생을 불렀다. 내 앞에서는 먹통인 척하던 컴퓨터는 공대생인 동생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학창시절 내내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동생은 컴퓨터 앞에서만큼은 나를 마음껏 바보천치 취급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정도로 컴맹이었다.
그렇게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 취직한 곳이 하필 IT회사였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기획팀을 뽑는다길래 내 손으로 지원하긴 했지만, 결코 가고 싶던 회사는 아니었다. 허나, 반년 동안의 구직활동 결과 나를 뽑아준 회사는 달랑 그 회사 하나 뿐이었다. 컴맹 주제에 IT회사라니. 운명의 장난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백수의 세계로 돌아갈 게 아니라면 일단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야 했다.
신입사원들끼리 합숙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3주 동안은 행복했다. 동기들과 앉아서 교육을 듣고, 조별 활동을 하고, 장기자랑을 하며 재미나게 지냈더니 월급이 나왔다. 이런 걸 시키면서 돈까지 주다니 역시 대기업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신입사원 실무교육이 시작되자 고통이 시작되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내가 입사한 곳은 IT회사였고, IT회사의 신입사원 교육 커리큘럼에는 PPT와 엑셀, C언어 등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PPT와 엑셀은 대충 뭔지라도 알고 있었지만 C언어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8시간동안 컴퓨터와 씨름했다. PPT는 약간 미술 같으니까, 엑셀은 수학이랑 비슷하니까 어찌어찌 이해를 했다. 문제는 C언어였다. 강사는 C언어가 쉽고 편리하게 코딩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언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에게 C언어는 고대상형문자나 외계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음과 같은 글들을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include <stdio.h>
main()
{
short a=32767, b=32768;
unsigned short c=65535, d=65536;
printf("a=%d b=%d\n",a,b);
printf("c=%u d=%u\n\n",c,d);
a=32767, b=32769;
c=65535, d=65537;
printf("a=%d b=%d\n",a,b);
printf("c=%u d=%u\n",c,d);
}
컴퓨터 언어의 세계에 완벽하게 무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사의 코딩을 필사적으로 따라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똑같이 따라한 것 같은데도 프로그램을 돌려보면 여기저기서 오류가 났다며 글씨들이 빨갛게 빛났다. 주식에서는 빨간색이 뜨면 기쁘지만, 코딩에서는 빨간색이 뜨면 문제다. 빨간색으로 변한 부분을 모두 수정해야 프로그램이 돌아간다. 한두개도 아니고 수십개씩 오류가 난 걸 보고있자면 한숨부터 나왔다. 컴퓨터를 전공한 동기들이 와서 여기는 구문이 틀렸고, 이건 뭐가 틀렸고 하며 뚝딱뚝딱 고쳐줄 때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간단한 문제들조차 나에게는 해결불가였다.
바보가 된 기분으로 교육을 들으며 회사는 참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은 사람에게 아무리 프로그래밍을 가르쳐봤자 절대로 실무에서 써먹을 수 없을텐데 왜 월급까지 줘가면서 이런 걸 가르치는 걸까. 설마... 나에게 프로그래밍을 시키려는 걸까?
다행히 회사에서 내게 기대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면접에서 나의 방송경력에 관심을 보이던 사장은 내가 회사의 매거진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름도 그럴싸한 기획팀으로 발령을 받으며 한껏 들떴다. 일단 사람의 언어로 하는 일이라면 뭘하든 코딩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 다니는 건 고단하면서도 행복했다. 한 시간반 거리의 회사에 8시반까지 출근하기 위해 매일 새벽 6시에 눈을 뜨는 건 좀 힘들었고, 출퇴근길의 지옥철에 시달리는 건 많이 힘들었다. KPI가 어쩌고, 식스시그마가 어쩌고 하는 낯선 용어가 난무하는 세계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라던 대로 주5일 근무에 월급을 2백만원 넘게 주는 회사에서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 밥값도 안 주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문화비에 복지포인트까지 챙겨주는 회사에 다니면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입사동기와 몰래 사내연애까지 하고 있었으니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린 셈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팀장인 상무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고, 사이도 좋지않은 과장과 대리가 자꾸 붙어앉아 속닥거렸다. 최대한 안 듣는 척 하면서 귀를 쫑긋 세워보니 상무님은 날아가는 거냐, 쟤는 어떡하냐,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쟤는 어떡하냐'에서 '쟤'는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았다.
심란한 분위기의 원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회사의 사장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새 사장은 모든 직원을 실무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IT회사에서 실무라는 건 코딩과 IT시스템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므로 인문계열 전공자들이 주축을 이루던 팀들은 대거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내가 속해있던 기획팀도 공중분해되었다. 팀장이었던 상무는 회사를 나갔고, 과장과 대리는 각자 다른 팀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며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생뚱맞은 팀으로 발령이 났다. 회사 전체의 IT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팀이었다. 발령을 받았으니 출근은 했으나 대리 한 명을 제외한 팀원 전체가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 이루어진 그 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회사의 매거진을 만들겠다며 신나서 회사에 다니던 한 신입사원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까지는 입사 후 채 반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