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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Oct 20. 2022

너무 늦었다는 말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이 나온다면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얼핏 생각하면 기쁘다. 일을 안 해도 돈을 벌 수 있다니 그만한 꿀이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뭔가 쎄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회사라는 곳은 원래 주는 돈보다 일을 더 시키면 더 시켰지 덜 시키지는 않는 곳이다. 그런데 회사가 돈을 주면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뭐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된 거다. 그 불로소득의 주인공에게는 조만간 사달이 생길 확률이 높다.


  구조조정의 불똥을 맞고 엉뚱한 곳으로 발령이 난 나는 새 팀에서 일을 받지 못 했다. 애초에 나 같은 인문계열 전공자가 필요없는 팀이었다. 쓸모없는 팀원을 받게 된 팀장의 고민이 깊었다. 그렇게 고민해서 만들어낸 나의 업무가 '팀장 보필'이었다. 하지만 그가 부재중일 때 전화를 받는 것 외에는 딱히 보필할 일이 없었다. 팀의 잡무가 모두 나에게 떨어졌다. 회의실 세팅 좀 해 줘. 점심 메뉴 좀 모아줘. 회식 장소 좀 예약해줘. 하나같이 잔심부름들인데 그 때는 누가 내게 말을 걸고 뭘 부탁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잠시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았


  제대로 된 업무가 없이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매일 9시간을 사무실에서 버티자니 지루해서 온몸이 꼬일 지경이었다. 하필 팀장 바로 옆자리에 앉은터라 딴짓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팀장이 한숨만 조금 크게 쉬어도 눈치가 보였다. 사무실에서 놀고 있는 건 나 뿐이었으니까.


  처음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스스로를 계발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입사원교육 때 받은 PPT교재를 꺼내 거기에 있는 모든 샘플을 만들어보았다. 대학시절, PPT를 만들 줄 몰라서 조모임 때마다 "제가 레포트 쓸게요!"하고 손 들던 바보는 지루한 시간을 버티는 동안 각종 애니메이션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PPT의 달인이 되었다.


  그래도 회사는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무쓸모 인간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나를 뽑아놓고 사라져버린 전 사장에 대한 분노, 사람을 바보취급하는 회사에 대한 원망, 이런 것들이 마음 속에서 뒤엉키며 될대로 되라 싶어졌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대놓고 토익공부를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토익 점수라도 만들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팀장은 "일을 줘야할텐데..."하고 뒷말을 잇지 못 했다. 하지만 팀 업무의 대부분이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일인데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결국 나는 "오늘 점심 뭐 드실래요?"와 "이번 회식은 강남역 해물찜 가게로 가시겠습니다~"만 명랑하게 외치다가 두번째 조직개편을 맞았다. 회사는 나를 또 다른 팀으로 보냈다.


  새 팀으로 옮겨가며 아주 조금은 기대를 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전 팀의 팀장은 어떻게든 나를 팀 안에 끼워넣어보려고 노력은 했었다. 그리고 팀 사람들도 다정해서 같이 밥을 먹거나 회식을 갈 때는 즐거웠다. 그런데 새 팀의 팀장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나를 바라보는 팀장의 눈빛이 '너.는.쓸.모.없.는.인.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팀 사람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새로 발령난 막내에게 관심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무단결근을 해도 모를 것 같았다.


  매일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내일은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달까지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후, 2년 후를 생각하 막막했다.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회사가 언제까지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일을 할 수 없는 팀으로만 발령을 내는 게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 같았다. 잘리기 전에 내 발로 나가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그즈음, 서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글을 읽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십대후반까지 자기 길을 찾지 못 한 사람은 너무 늦었으니 빨리빨리 진로를 정해야한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썼지?"하고 던져버렸을 책인데, 스물일곱의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명치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정녕 너무 늦어버린 것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고작 이십대에 나의 인생은 실패로 결론난 것인가.


  '너무 늦었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공채, 고시공부, 학원강사 등 연관없는 진로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고 여기저기 찔러보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취업사이트에 또 들락거리며 신입사원을 구하는 곳마다 원서를 다. 차라리 고시를 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서 행정고시 책잔뜩 주문했다. 수학선생님을 구한다는 대치동 학원에서 면접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길 같지가 않았다. 이러다 하나 얻어걸리면 그게 내 인생이려니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랬다가 또 지금처럼 예상치 못 한 일에 내 삶이 흔들리면 또 때려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들을 털어놓자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너, 선생님 해 보는 건 어때? 애들도 좋아하고 잘 할 것 같은데."

  "이제와서 선생님을 어떻게 해. 그거 교대 나와야 하잖아."

  "교대에 직장다니다가 오는 사람들 많아. 애 엄마들도 있는걸?"


  그 순간, 캄캄하던 눈 앞에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다. 길 가다 만난 어린 애들이 예뻐서 쳐다보느라 갈 길을 못 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가르치는 일에도 소질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가 과외해준 아이들은 거의 다 성적이 올랐다. 친구 말대로 나는 선생님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수능공부를 하고 교대에 들어가서 졸업하려면 최소 5년이 필요했다. 스물여덟에 수능공부를 시작해도 서른셋이 되어서야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회사에서는 절대 그려지지 않던 나의 미래가 눈 앞에 그려지는데, 그게 꽤 행복할 것 같았다. 수능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고, 임용고시를 볼 생각을 하 막막했지만 그렇게 몇 년 고생해서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교대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내게 "미쳤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비싼 돈 들여 대학까지 가르쳐놨더니 이리저리 헤매다가 서른이 다 되어 도로 대학에 간다는 을 보며 허무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좀비같이 출퇴근만 반복하는 무쓸모의 회사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매달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 아쉬워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할까도 잠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다가는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았다. 굳게 마음먹고 사표를 냈다. 마지막 출근날, 사원증을 반납하고 나오는 나를 보며 팀 사람 중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나갈 사람이 나간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속이 후련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좋았지만 대체로 나빴던 회사와는 헤어지는 게 맞았다.


  고난의 시간을 버텨내며 받아낸 월급과 퇴직금으로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9년만에 다시 EBS 수능특강을 사며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 나이에 대학에 다시 가는 게 잘하는 짓일까. 거대한 불안이 수시로 찾아왔다. 수학문제를 풀다가,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그렇게 불안감이 밀려올 때면 우주에 혼자 떨어져있는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나를 믿어줄 사람도, 이 길을 헤쳐나가야 할 사람도 오직 나 뿐이었다. 스스로에게 수도없이 이야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길고 긴 인생 중에 나는 고작 스물여덟해를 살아냈을 뿐이라고. 절대 많이 늦은 건 아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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