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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Sep 25. 2024

엄마는 피자를 안 드신다고 하셨어

    딸이 저녁 메뉴로 '엄마표 피자'를 골랐다. 엄마표 피자라고 하니 직접 발효시킨 도우에 수제 햄이라도 얹어줘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별거 없다. 식빵에 통조림 옥수수를 얹고, 그 위에 치즈를 듬뿍 뿌린 후 에어프라이어에 굽는 게 끝이다. 토마토 소스를 못 먹고, 옥수수를 좋아하고, 치즈에 환장하는 딸을 위해 대충 만들어본 건데, 그게 입에 맞는지 딸은 종종 엄마표 피자를 찾는다. 그 날도 한 입 먹자마자 작고 통통한 엄지손가락 두 개를 척 올리며 엄마표 피자가 최고라고 했다.


    입맛 까다로운 딸의 한 끼를 손쉽게 해결한데다가 쌍따봉까지 받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엄마를 붙잡고 나의 식빵 피자에 대한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했다. 원래 엄마는 아이가 뭘 잘 먹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아이가 게눈 감추듯 피자를 먹는 모습을 보고도 저렇게 떨떠름한 얼굴이라는 건 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다. 아니나다를까, 잠시 후 엄마에게서 퉁명스러운 말이 날아왔다.

    "그렇게 맛있는 거면 엄마도 해주지!"


    기가 차서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피자를 만들기 전, 나는 분명 엄마에게 같이 드시겠냐고 물었다. 거절한 건 엄마였다. 국도 있고 반찬도 있다고, 아이 먹을 거나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불과 십분 뒤, 엄마는 내게 왜 아이 음식만 만들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가끔 딸이 엄마표 스파게티나 엄마표 피자를 찾아서 내가 주방에 서게 되는 날, 함께 드실 것을 권하면 엄마는 매번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종일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아이 먹을 것만 만들라는 거다. 그러면 나는 두어번 권하다 말고 그냥 아이가 먹을 만큼만 만들었다. 케첩 하나 안 들어간 밍밍한 식빵 피자나 느끼한 크림 스파게티가 엄마에게 적극 권장할 음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은근히, 가끔은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서운한 얼굴이다. 내가 아이만 위해주고, 본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마음이 답답해서 팔짝 뛸 것 같다. 대체 어느 장단에 박자를 맞추라는 건가.


    딸이 피자를 잘 먹어서 좋아졌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자가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가 이 말 했다 저 말 하는 게 힘드니 그냥 속마음을 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는 농담으로 한 말에 정색을 하고 따지고 든다며 서운한 얼굴을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며 내 뜻을 전해보려 했으나 이미 노여워진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둘 다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른들에게 사랑만 받아서 무서울 게 없는 일곱살 딸이 할미도, 엄마도 너무 시끄럽다며 조용히 하라고 악을 썼다.


    식빵 피자 한쪽에서 시작된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이중 메세지'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이중 메세지가 자녀에게 해롭다, 부모의 일관된 양육태도가 중요하다는 내용의 글들이 주르륵 떴다. 이렇게 하라는 지 저렇게 하라는 지 알 수 없는 부모의 태도 때문에 정신분열증이 야기된다는 연구결과까지 있었다. 내 나이에 엄마의 양육태도를 탓할 건 아닌 것 같고, 정신분열증까지는 아니지 않나...? 하면서도 이번엔 엄마가 잘못한 거라고 굳게 믿으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걸 엄마 탓으로 돌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출근을 하고도 엄마와의 싸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엄마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공감과 위로를 얻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를 다 들은 한 동료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드시고 싶냐고 묻지 말고 그냥 해드리면 되잖아. 물어보면 엄마는 당연히 하지 말라고 하지."

    뜻밖의 말에 나는 나의 입장을 조금 더 덧붙였다.

    "아니, 엄마가 진짜로 안 드시고 싶을 수도 있잖아. 왜 안 드신다고 했다가, 그 다음엔 안 해주냐고 서운해하냐고. 사람 마음이 그렇게 두 가지일 수가 있어?"

    그러자 미 성인이 된 자식이 있는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에게는 원래 두 가지 마음이 있어. 자식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그래도 자식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자식을 오래 키워본 동료들은 다들 내가 아닌 엄마의 입장에 공감했다. 일을 하고 돌아와 지친 자식이 안쓰러워 쉬게 하고 싶은 마음도 진심, 자식 손에서 나온 맛있는 걸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라는 거다. 그 자리에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하는 사람은 정작 엄마의 딸인 하나 뿐이었다. 제3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전날의 상황을 되돌아보니 그제야 뭐가 잘못된 건지 눈에 보였다. 엄마가 안 먹겠다고 했다고 정말 자식 먹을 것만 만들어서 먹이고 있는 나.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며 어머님의 짜장면까지 다 먹어치우고 있는 답답이가 바로 나였다.


    오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한 동료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엄마한테 따지지 말고 잘 해. 나는 이제 엄마랑 싸우고 싶어도 못 싸워."

    그 말이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얹혔다. 엄마의 나이는 올해로 예순일곱. 언젠가 나도 엄마를 떠나보내게 되는 날이 있을 거다. 그때까지 엄마가 이 말 했다 저 말 했으니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얼른 엄마한테 식빵 한쪽 구워드리지 못 한 걸 후회하며 가슴을 치겠지.


    지난 겨울, 설을 앞두고 엄마에게 집에 언제 가면 좋을 물었더니 "난 아무 상관 없다. 너희 편할 때 와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나는 설날 오전가기로 마음 먹고 전날까지 남편과 함께 밀린 집안일을 했다.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고, 묵은 빨래를 돌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잡채거리 사놨는데 언제 먹고 싶니?"

    난 "내일 먹어요."라고 대답하고 베개커버까지 벗겨서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두어시간 후, 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은 떡국도 먹고, 갈비찜도 먹어야 하는데."

    그제야 엄마의 말을 알아들었다. 빨리 오라는 거구나. 우리가 보고싶다는 거구나. 우리는 세탁기의 마지막 빨래가 탈수를 마치자마자 엄마의 집으로 출발했다. 저녁 여덟시가 넘은 시간에 잡채를 볶는 엄마의 얼굴이 왠지 밝아보였다.


    엄마가 하는 말은 종종 이렇게 알쏭달쏭하다. 아마 엄마가 본심을 시원하게 말해주는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속내를 알아내는 건 내 몫이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엄마한테 잘 해주는 쪽으로 답을 점쳐봐야겠다. 하지만 내 딸이 좋아하는 엄마표 피자는 정말 우 엄마 입에 안 맞을 것 같은데.... 그래도 다음번에는 일단 엄마 몫까지 만들어 생각이다. 한 입 먹고 느끼함에 소스라치더라도 서운한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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