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미니멀리즘의 시대다. 공간을 잠식하는 물건들에 지쳐서인지 미니멀하게 살아보겠다며 여러가지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설레지 않는 물건을 버리고, 하루에 하나씩 버리고, 당근에 팔고, 모르는 사람에게 무료로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비워내고 나면 그만큼 채워지는 행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맥시멀리스트 엄마와 함께 딸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게 낫다'를 신조로 삼는 큰 손 홍여사의 라이프 스타일은 손녀딸 육아를 시작하면서 뭐랄까, 전성기에 이른 느낌이다.
지금 엄마 집 현관에는 알록달록 예쁜 180 사이즈의 신발들이 하나, 둘, 셋... 총 일곱 켤레가 놓여있다. 계절에 따라 샌들에서 부츠로, 겨울 운동화에서 여름 운동화로 라인업이 바뀔 뿐 개수는 비슷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모든 신발에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건 놀이터 갈 때 편하게 신는 신발, 저건 유치원 갈 때 신는 신발, 또 저건 원피스에 맞춰 신기 좋은 신발... 고작 놀이터와 유치원을 오가는 아이에게 이토록 많은 신발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딸에게는 신발만 많은 게 아니다. 옷도 많고, 악세사리도 많다. 원피스는 색깔별로, 레깅스는 길이와 두께별로 다 구비되어 있다. 잠옷과 양말과 가디건과 바람막이와 패딩과 조끼가 모든 온도에 적합하게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거의 다 나의 엄마가 샀다.
간식을 담아놓는 서랍도 언제나 꽉 차 있다. 아이가 잘 먹는 과자, 쿠키, 젤리, 사탕, 비타민 등은 떨어지지 않게 쟁여두신다. 가끔은 나도 처음 보는 외국 간식이 들어있기도 하다. 놀이터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먹고 아이가 맛있어하면 엄마는 빈 봉지를 소중히 챙겨왔다가 열심히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주신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한 나의 딸에게 모자람이라는 건 없다.
엄마가 아이를 키워주시는 것 뿐만 아니라 옷에 신발에 간식까지 다 사주시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맥시멀리스트 엄마에게서 태어난 내가 하필 정리중독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은 어딜 정리해볼까~"하고 콧노래를 하며 온 집안을 뒤집는 게 낙인 사람이다. 각 물건에 딱 맞는 자리를 정해주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몇 개인지, 그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하지만 엄마의 집에서 물건이 몇 개인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사놓은 물건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엄마는 맥시멀리스트인 동시에 깔끔쟁이여서 물건들을 일단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차곡차곡 넣어두는데 그게 바로 물건을 찾을 수 없는 원인이 되곤 한다. 아이 치약을 다 쓴 줄 알고 새로 사면 나중에 양말서랍 같은 곳에서 새 치약이 발견된다. 얼마 전에 산 과자가 안 보여서 다시 사면 한참 있다 무언가의 밑에서 발견된다. 물건이 많아서 물건을 더 사게 되는 아이러니다.
그렇게 넘쳐나는 물건들 중 적지 않은 것들이 충분히 쓰여지기 전에 버려진다. 아이들은 봄에 입었던 옷을 가을에 입힐 수 없고, 올 여름에 신겼던 신발은 다음 여름에 신길 수 없다. 아이가 맛있어 한다고 넉넉하게 사둔 과자나 젤리는 금세 관심에서 밀려나 서랍에 쳐박혀있다가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기 일쑤다. 그렇게 몇 번 못 입고 버려지는 옷들, 뜯어보지도 못 하고 날짜가 지난 젤리들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처음 엄마와 함께 육아를 시작했을 때, 우리 모녀는 이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 입는 데 관심이 별로 없는 나는 특히 아이의 옷이 넘쳐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이 작은 아이에게 이렇게 많은 입을 것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옷장 가득 차 있는 아이 옷을 다 합치면 얼마일까. 내가 엄마에게 드리는 한달에 백만원이 아이의 옷값으로 다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가 뭘 사들고 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뭘 또 사왔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엄마는 자기 돈 들여서 내 딸 옷을 사왔으면서도 궁색하게 변명을 했다. 전에 있던 바람막이가 그새 짧아졌다, 바지가 껴서 애가 불편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난리를 치자 엄마는 급기야 내가 없을 때 아이 옷을 사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는 아이를 보고 "또 사셨어?"하고 물으면 엄마는 늘 전에 입던 거라고 하셨다. (아무리 봐도 새 옷 같은데...)
아이가 새 옷을 입으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아깝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이의 옷장이 미어터지는 걸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해법은 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에게 매일 똑같은 옷을 입히든, 점퍼 하나로 한 계절을 보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엄마의 육아 스타일을 존중해야 했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흔쾌히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인간적으로 딸에게는 옷이 너무 많았다.
어느 날, 나는 할머니가 사준 새 원피스를 입고 공주 같다며 좋아하는 아이를 불만스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잔소리에 시동을 걸었다. 쟤 원피스가 몇 벌인줄 아냐고, 대체 왜 그렇게 옷을 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타박했다. 그러자 평소에는 듣고 넘기던 엄마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네 딸이 하루에 옷을 몇 벌이나 갈아입는지 아니? 땀 흘려서 갈아입고, 놀이터에서 더러워져서 갈아입고, 뭘 쏟아서 갈아입고 하다보면 하루에도 서너 벌이야. 애 옷을 여유롭게 구비해놓지 않으면 나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빨래만 돌리다 정신 못 차려. 옷을 입히는 것도, 빨래하는 것도 내 몫이니까 알아서 좀 하게 둬!"
참았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엄마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는 빨래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평일 빨래는 엄마가 다 해주시고, 나는 주말만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루에 몇 벌씩 옷을 갈아입어도 빨랫감을 이틀동안 모았다가 주말이 끝날 때 빨면 그 다음 주말에 또 입을 수 있다. 월화수목금 아이에게 옷을 빨아입혀야 하는 엄마와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그런 건 생각도 않은 채 옷이 많네, 신발이 많네 떠들어대던 게 부끄러웠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때, 친구가 했던 조언이 생각났다. 친구는 엄마가 애를 죽이는 게 아니면 입 다물고 있으라고, 그게 육아를 맡긴 자의 도리라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엄마에게 옷 좀 그만 사라고 잔소리 하지 않는다. 엄마가 많이 사는 대신 내가 안 산다. 엄마가 사는 옷만으로도 충분히 딸을 입힐 수 있으니 옷은 엄마가 다 사시게 둔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에게 옷값을 따로 챙겨 드린다. 전에는 아이 옷을 사오면서 내 눈치를 살피던 엄마가 이제는 계절옷을 바꿀 때마다 내게 예쁘지 않냐며 뿌듯한 얼굴을 한다. 생각을 달리 해보면 옷값이 좀 많이 나간다는 걸 빼면 나쁠 게 없다. 쇼핑에 소질 없는 나 대신 계절마다 아이의 옷을 마련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내게도 좋은 일이다.
할머니 덕에 예쁜 옷을 많이 입어본 내 딸의 패션센스는 이미 나를 뛰어넘은지 오래다. 할머니 환갑잔치에 래시가드를 입고 가거나 한겨울에 발레치마를 입고 등원해서 부모들의 속을 뒤집는 유아기의 파괴적인 드레스코드는 우리 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원피스부터 양말 색깔까지 자기 취향이 있는데, 원하는 대로 입혀보면 제법 예쁘다. 한때 패션 테러리스트였던 나를 닮지 않을 모양이니 그것 또한 잘 된 일이다. 나 하나 입을 다물자 모두가 행복한 걸 보면 그동안 빌런은 나였나보다.
그렇다고 딸의 물건이 적당하게 느껴지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계절 옷을 정리할 때면 끝도 없이 쏟아지는 딸의 옷에 매번 새롭게 놀란다. 그 옷들을 버리고, 정리하고, 다음 계절의 옷을 꺼내는 날은 진이 빠져서 저녁엔 배달음식을 시켜야한다. 분명 사두었는데 보이지 않는 물건이 있으면 예상치 못한 곳에 숨어있을 수 있으니 온 집을 꼼꼼히 잘 뒤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 쯤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아이의 물건이 넉넉해서 나의 엄마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육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혹시라도 엄마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지나 잘하지 웃기고 있네."하며 코웃음을 칠 것 같다. 엄마가 물건을 너무 많이 들여서 괴롭다며 깔끔한 척을 하는 나의 집과 엄마의 집을 비교해봤을때, 누가 봐도 깔끔한 건 엄마의 집이기 때문이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가족과 함께 살면서,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물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클레이로 만든 티니핑이나 아이가 친구에게 받아온 소중한 색종이들은 시시때때로 늘어나 순식간에 온 거실을 잠식한다. 게다가 어떤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은 물건이 생기면? 이미 꽉 차 있는 수납장에 뭔가를 또 넣어야 하면? 기존에 있던 물건을 덜어내고, 정리하고, 새로 자리가 마련될 때까지 나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작은 방이나 베란다에 물건을 늘어놓는다. 정리를 완벽하게 하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집이 너저분한 것이다. 대신 엄마는 물건을 많이 들여도 일단 눈에 안 보이게 깔끔하게 정리한다. 그래서 과자 서랍에서 샴푸가 발견되고, 책장 사이에 감기약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엄마의 집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과연 누가 더 나은 것일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