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돌봄에 값을 매긴다면 적당한 가격은 얼마일까.
부모님께 육아를 부탁한 사람들에게 매달 얼마씩 돈을 드리냐 물었더니 한달에 30만원부터 200만원까지 다양한 답이 돌아왔다. 30만원은 너무 적어보였고 200만원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래 고민한 끝에 내가 엄마에게 드리는 돈은 한달에 100만원이다. 엄마가 딸을 돌봐주시는 시간의 총량으로 나누어보면 최저임금 근처에도 못 미치는 돈이지만, 그보다 더 무리를 하면 내가 굳이 아이를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의미가 없었다.
딸이 두 살일 때, 처음 육아를 부탁하며 드리던 100만원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그동안 최저임금이 8350원에서 9860원으로 20% 정도 올랐고, 물가도 가파르게 치솟았다. 내가 엄마에게 드리는 100만원의 가치는 80만원쯤으로 하락한 셈이다.
엄마는 그 돈을 거의 다 아이에게 쓰시는 것 같다. 옷과 장난감을 사고, 아이에게 먹일 과일과 고기와 우유를 산다. 고기반찬을 좋아하고, 과자보다 과일을 많이 먹는 아이를 키우다보니 특히 고기값과 과일값이 만만치않게 든다. 폭염과 수해가 번갈아가며 찾아온 지난 몇 해는 대부분의 과일이 금값이 되었으나, 엄마는 아이에게 먹일 것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드리는 100만원이 부모님 두 분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 아이의 육아를 엄마가 맡아주시던 해,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고 규모가 작은 회사로 옮기면서 임금이 삭감되었다. 그래서 내가 드리는 돈이 그 부족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부분이 나에게 되돌아왔다. 엄마 덕분에 나는 아이에게 들어가는 지출을 줄이고, 남은 돈으로 적금을 붓는다. 엄마의 노년을 담보로 나의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몸과 마음을 갈아넣어 제공하는 돌봄의 질은 말도 못하게 훌륭하다. 주부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없는 음식들을 해서 아이에게 먹이고, 진심을 다해 아이와 놀아준다. 아이는 할머니가 곁에 있으면 엄마는 찾지도 않는다. 그 덕에 나는 육아에서 숨쉴 구멍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아이의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분명 한 달에 백만원이라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코로나가 온 세계를 초토화시키고 있던 때, 우리의 육아시스템도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면역력이 약한 엄마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한밤중에 열이 40도를 넘어가 응급실마다 전화를 돌리는데 코로나 환자라서 받아줄 수 없다는 응답만 앵무새처럼 돌아오던 그때, 나는 엄마를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상황이 너무 안 좋던 일주일 동안은 내가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봤다. 하지만 일주일의 휴가가 끝난 후에는 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엄마에게 딸을 맡기고 출근할 수 밖에 없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한테 애를 맡기고 출근하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너무 마음이 무거워 진지하게 휴직을 고민했다. 다행히 엄마가 정신력으로 버티며 아이를 돌봐주신 덕에 그 고비는 어찌저찌 넘겼다. 하지만 돌봄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이 아이를 돌본다는 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다.
엄마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딸의 육아를 모두 외주화시켰다면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국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봄서비스는 2024년 기준으로 시간당 11,630원이다. 엄마가 해주시는 것처럼 아이를 돌보는 것과 관련된 가사노동까지 해주는 경우에는 시간당 15,110원을 지불해야 한다. 법정 감염병 및 유행성 질병에 감염된 경우에는 시간당 13,950원에 질병감염아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마스크를 벗은 후 폭풍처럼 유행성 질병을 앓아대는 통에 허구헌날 유치원을 못 갔던 딸은 질병감염아동지원 서비스도 수시로 받아야 했을 것이다. 한달에 내가 출근하는 날을 22일로 잡고, 그 중 일주일쯤은 아이가 아프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아이돌봄을 위해 써야 하는 돈은 한달에 이백만원을 훌쩍 넘는다. 정말로 저 돈을 다 주고 아이를 돌봐야했다면 아마 나는 진즉에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부모 수당'과 관련된 정책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몹시 반가웠다. 아이를 위해 수고하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지자체 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36개월이나 48개월 미만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나의 딸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니 신청서도 써볼 수 없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그래서 얼마나 주는데?'하고 찾아보니 서울의 경우는 한달에 30만원씩 12개월동안 지원된단다. 한달에 30만원이라니, 적어도 너무 적다. 그런데 금액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면도 있었다. 조부모 수당을 너무 높이 책정할 경우, 조부모의 돌봄을 당연시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돈도 많이 나오는데 좀 돌봐주세요, 하며 자식이 손주 육아를 떠맡기면 울며 겨자먹기로 육아에 끌려오는 조부모들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조부모 수당은 양육수당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여러 해동안 표류하다가 최근 여기저기서 시행되기 시작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수가 증가함과 함께 아이를 돌보는 조부모들의 숫자 역시 늘어나고 있으니 이와 관련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건 다들 공감하는 모양이다. 2018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조부모들 중 절반 이상이 아무런 대가 없이 손주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돈을 받는다하더라도 자녀들의 부담을 걱정해 적은 돈을 받아서인지, 조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받는 돈은 월평균 62만원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베이비시터들이 150~2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하니, 그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 너무 달라서 거기에 돈을 대입시키는 게 참 어렵다. 혈연이라는 게 끼어들면 더더욱 그렇다. 세상의 많은 조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돈을 받지 않거나, 받는다하더라도 적은 돈을 받고 손주들을 돌봐주는 것 역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자식들이 얼른 돈을 벌어 자리잡길 바라며, 혹은 자식이 육아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 손주를 돌보는 마음을 돈으로 치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육아는 다른 어떤 노동 못지 않게 힘든 일이다. 어린 아이를 돌보는 데 수반되는 수많은 노동들은 결코 무보수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 수고에 걸맞는 경제적 대가가 있다면, 자녀들의 육아를 대신해주는 조부모들의 고단함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것 같다.
어제저녁부터 딸이 콧물을 흘리나 싶더니, 밤새 열이 펄펄 나서 또 유치원에 못 갔다. 아이도 걱정되고, 혼자 아픈 아이를 돌볼 엄마도 걱정되서 직장에서 일찍 돌아왔더니 엄마가 해바라기처럼 웃었다. "엄마 오니까 할미가 너무 좋네!" 하면서 아이에게서 물러난 엄마는 거실 한켠에 길게 눕더니 곧 잠이 들었다. 불면증이 있는 양반이 순식간에 잠든 걸 보니 종일 아픈 아이와 함께 하는 게 고단하긴 하셨나보다. 엄마가 낮게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 수고로움에 적당한 가격은 얼마일까. 그에 적당한 값을 지불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