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놀 사람이 없어서 혼자 놀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철렁해진 가슴을 붙잡고 아이를 다독였다. 누구나 혼자 노는 날이 있는 거라고, 혼자 놀기 싫으면 친구들한테 먼저 다가가서 놀자고 해보라고 했다. 딸은 고개를 저었다. 놀자고 해봤는데 친구들이 싫다고 했단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만났던 선생님들은 아이가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고 했다. 같은 반에는 어린이집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딸과 짝꿍이 되고 싶다며 여러 아이가 싸우는 바람에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딸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 할거라고는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육아 선배들에게 물으니 아이들은 잠깐만 혼자 놀아도 혼자 놀아서 슬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별일 아닐 거라고 했다. 같은 이야기를 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안 그래도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가 요즘 혼자 있는 날이 많아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단다.
선생님의 관찰과 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랬다. 딸과 단짝이었던 아이가 최근 다른 친구와 함께 줄넘기 학원에 다니면서 그 친구와 부쩍 친해졌다. 그 둘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딸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다른 친구들 무리에 끼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다. 엄마아빠 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고 해보았지만 "네 역할은 없어!"라며 거절당하고, 아무 역할이나 해도 된다고 재차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거절당한 날 이후로, 딸은 친구들과 노는 걸 포기한 것 같았다.
딸이 다니는 유치원은 자유놀이 시간이 많은 곳이었다. 같이 놀 친구가 없으면 그 시간들은 자유가 아니라 지옥처럼 느껴질 터였다. 요즘 자유놀이 시간에 뭐하고 노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본다고 했다. 딸의 유치원 가방에서는 매일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 색종이가 발견됐다.
외동이라 관계 만들기에 서툰 건가. 혹시 아이가 못되게 굴어서 다른 친구들이 싫어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유치원에서부터 벌써 따돌림이 시작되는 건가. 온갖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선생님은 아이가 친구들에게 말도 예쁘게 하고, 친절하다고 했다. 다만 또래집단이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리에서 떨어지게 된 것 같으니, 유치원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좀 마련해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딸의 친구관계가 어려워진 이유를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전부이던 아이들의 인간관계가 요동치고 있었다. 고작 일곱살짜리들에게 무슨 인간관계가 있을까 싶은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볼일보고 뒷처리를 제대로 못 해서 팬티에 똥을 묻히고 다니는 그들에게도 나름의 인간관계가 생겨나고 있었다.
일단 대여섯살 때까지 대부분 유치원과 집만 오가던 아이들의 세상에 학원이 끼어들었다. 태권도학원, 미술학원, 줄넘기학원 등을 함께 다니며 친해진 아이들 무리가 눈에 띄었다. 친해서 학원에 같이 가게 된 건지, 아니면 학원에 같이 다녀서 친해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학원을 하나도 다니지 않는 나의 딸은 맺을 수 없는 연이었다.
유치원은 할머니집에서 다니지만 주말은 엄마, 아빠와 함께 다른 도시에서 지내는 딸의 특수한 상황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단짝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주말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약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를 만나 같이 논다 → 엄마들도 아이들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스크림이라도 같이 먹으러 간다 → 내일 뭐할거냐, 다음 주말에 뭐할거냐를 묻다가 같이 키즈카페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캠핑도 간다. 이 모든 게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쌓여가는 우정의 깊이가 일곱살 친구관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직도 젖내가 나는 것 같은데 친구 문제로 애달파하는 딸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인간관계 그래프에서 최저점을 찍었던 내 인생의 암흑기.
문제의 발단은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이루어진 이사였다. 낯선 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55명이 함께 있는 교실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에 공포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느꼈다. 점심시간이 되자 같은 중학교 출신 아이들끼리 책상을 모으고 도시락 뚜껑을 여는데, 나는 누구랑 먹어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조금 울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열일곱살이나 되었으니 곁에 앉은 친구에게 "나도 같이 먹자."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그때의 나는 지구인의 말을 모르는 외계인이 된 것처럼 밥 먹자는 말도 못 하고 누가 나를 끼워주기만 바랐다.
안 그래도 세상이 곱게 보이지 않는 사춘기였다. 그 시절에 맞닥뜨린 절대 고독의 상황은 나를 고장나게 만들었다. 그 나이까지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쌓아온 우정의 기술을 몽땅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질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가, 조금 친해진 느낌이면 무리해서 잘해주고, 준 만큼 마음이 돌아오지 않으면 상처받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씩 지쳐가면서 친구관계에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 쉬는 시간에 어울릴 사람이 없으면 혼자 앉아 책을 보거나 공부를 했다. 유치원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나의 딸처럼.
대학에 가고 어른이 되면서 친구 관계는 서서히 편안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간신히 만든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해지는 것 같을 때 혼자 한숨쉬던 나. 왁자지껄 신나게 노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나. 딸에게 그 모습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일곱살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친구 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나이였다.
유치원 선생님은 놀이시간에 기질이 순한 아이들 사이에 딸을 자연스럽게 끼워넣어 주겠다고 했다. 나도 아이를 도울 방법을 찾아야했다. 딸에게 혹시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에 가고 싶은지 물었더니 싫다고 했다. 나도 싫었다. 친구 만들려고 학원에 가는 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좀 마련해야 하는데 마땅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등하원을 내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한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말걸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연락할 수 있는 한 사람, 단짝 친구의 엄마에게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가 지금 내 딸과 등을 지고 있었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하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애들 문제로 어른들까지 그러는 거 아니다. 애들은 다 싸우면서 크는 건데, 그럴 때마다 엄마들끼리 마음 상하면 못 써."
그 말이 철벽같던 내 마음에 균열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외로웠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관계에 있어서 좀 방어적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재고,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늘 계산한다.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계산이라는 게 없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일단 잘해주고 본다. 누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부리나케 김치와 반찬을 가져다준다. 고마운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본인이 직접 뜬 수세미를 선물한다. 엄마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엄마표 반찬과 수세미를 받아보지 못 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 엄마는 딸과 등하원을 함께 하는 유치원 엄마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며 벌써 모두에게 수세미를 한 박스씩 돌렸다. 수십 개의 수세미를 만드느라 엄마는 한동안 손가락이 곱을 뻔 했다.
딸의 단짝 엄마는 우리 엄마의 선물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다. 친정이 멀어서 챙겨줄 사람도 없지 않겠냐며 엄마는 그이에게 수시로 반찬과 국을 갖다 줬다. 내가 보기엔 과하다 싶어서 그만 좀 하라 해도 엄마는 국을 많이 끓이면 한 그릇 덜어두고, 김치를 새로 담그면 따로 퍼놨다가 준다. 그래서인지 그이도 우리 엄마에게 잘 한다. 명절이 되면 과일을 사들고 오고, 나이 드신 엄마가 미처 챙기지 못 한 유치원 준비물도 알려준다. 등하원을 함께 하고, 하원 후에 놀이터에 함께 가는 두 사람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은은한 우정이 있다.
엄마는 그 우정을 이용해 딸의 친구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유치원에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단짝 친구네와 함께 놀이터에 다니며 둘이 놀 기회를 만들었다. 매일 잘 노는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모르는 사이처럼 각자 따로 놀기도 했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두 아이의 관계는 서서히 풀어져 갔다. 요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둘이 잘 논다.
혼자 아이를 키우다 이런 문제를 맞닥뜨렸다면 아마 나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 했을 것 같다. 아이가 혼자 놀아서 힘들었다고 울고 난 이후로, 나는 매일 아이에게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를 캐물었다. 그리고 아이가 친구 이름을 대면 안심하고, 머뭇거리면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딸은 내가 누구랑 놀았냐고 물으면 눈을 피하며 대답을 얼버무리는 날이 많았다. 자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자꾸 묻는 게 마음을 더 힘들게 한 모양이었다.
이번 문제를 제대로 풀어낸 사람은 아무래도 엄마인 것 같았다. 연륜이 준 지혜일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퍼주기 좋아하는 엄마의 성격이 만들어낸 해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려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꼭 필요한 태도인 것 같았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넘어져서 다친 무릎을 치료하는 것과 똑같았다. 상처를 알아봐주고 적당한 약을 발라줬다면, 그 다음부터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상처가 치유되고 새 살이 돋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내가 딸의 상처에 발라줄 수 있는 약은 친구들과 놀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일련의 사태 때문에 혼자 샐쭉해졌던 마음을 풀어내고 단짝 엄마에게 연락했다.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불러달라고 청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유치원 친구들과 캠핑을 다녀온 딸은 최고의 하루였다며 좋아했다.
딸의 '혼자 놀았어' 사태는 여러 어른들의 노력으로 잘 마무리 되었다. 선생님이 애를 많이 써주신 덕분인지 유치원에서의 친구관계도 제법 확장되었다. 단짝이 다른 아이와 놀거나 유치원에 오지 않는 날도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논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딸이 우정의 기술을 하나쯤 획득했을까. 나이 마흔이 넘은 나도 여전히 친구 문제로 고민할 때가 있으니, 딸은 앞으로도 종종 친구 때문에 눈물콧물 빼면서 자라갈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도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겠지. 하지만 그럴 때, 딸이 혼자 그림을 그리는 걸 선택하지 않도록 잘 도와주고 싶다. 가끔은 자존심이 상하고, 먼저 손내미는 게 어색해도 딸이 친구와 함께 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그건 너무 좋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