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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Oct 16. 2024

육아에 대한 고찰 : 팀 플레이의 관점에서

    육아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과제를 수행하는 팀 플레이다. 어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먹고, 놀고, 자고, 싸는 등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모든 돌봄활동을 섭렵해야 하며, 정신적인 성장과 행복까지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과제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게다가 매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각 팀원의 과제수행능력과 팀원간의 협동심이 매우 중요하다.


    육아를 함께 하는 팀은 최소 1명부터 최대 6~7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된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 두 명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이 기본 유닛이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 너무 바쁘거나, 육아에 무심하거나, 여타의 사정으로 육아를 함께 할 수 없는 경우 1인 팀으로 활동하게 되기도 한다. 이 경우를 특별히 '독박 육아'라고 지칭하는데, 육아를 단독으로 수행하는 팀원이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고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학시절 조모임과 마찬가지로 육아에서도 무임승차자의 존재는 과제수행의 방해요소이다.


    육아는 팀원들의 사정과 상관없이 1년 365일 내내 진행되는 과제여서 종종 팀원들을 위기에 빠뜨리거나 번아웃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양이 손을 빌릴 수는 없으므로 육아를 도와줄 다른 팀원을 영입하게 된다. 주로 베이비시터나 등하원 도우미, 양가 조부모들이 이에 해당하며, 가끔 이모나 고모, 삼촌, 아이 친구의 엄마 등이 스페셜 멤버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중 조부모는 아이의 부모에게 위기상황(Ex. 질병, 갑작스런 야근...)이 발생할 때 1순위로 투입되는 멤버이다. 아이의 부모가 맞벌이를 할 경우 조부모는 팀의 고정 멤버가 되기도 한다. 고정으로 활동하는 조부모는 보통 할머니가 많지만 최근에는 등하원을 담당하거나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할아버지들도 자주 볼 수 있다.


    팀으로 돌아가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육아의 팀 플레이에서도 리더가 중요하다. 부부로 이루어진 팀에서는 보통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엄마가 리더를 맡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비해 아빠들의 육아 참여 비율이 월등하게 높아졌지만, 육아에 수반되는 의사결정 등에서는 여전히 엄마의 지분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조부모가 있을 경우 리더가 누구인지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이미 자녀를 성공적으로 길러낸 경험이 있으며, 현재 손주 육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모의 의사결정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명의 리더가 존재할 경우, 육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종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딸이 15개월때부터 만6세인 지금까지 네 사람이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 집의 사례를 살펴보자. 육아를 위해 모인 사람은 아이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아이가 평일은 조부모집, 주말은 부모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평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이렇게 3인 유닛이 활동하고, 주말에는 엄마, 아빠 2인 유닛이 활동하는 특이한 팀이다. 4인이 모두 모여 완전체로 활동하는 경우는 명절이나 여행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육아에서 남성 멤버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성 멤버들에 비해 낮다. 아빠는 먹이기, 놀아주기, 씻기기 육아의 전반적인 과제를 수행할 능력과 성실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나 주말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평일 육아 활동에서 아예 제외된다. 반면 평일을 함께 보내는 할아버지는 먹이기, 씻기기 등의 돌봄활동을 수행해본 경험이 없기에 번외 선수 같은 존재이다. 육아의 주요 수행자들이 바쁠 때 잠시 아이와 놀아주거나 외출 중 아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릴 때 안아주기, 고장난 장난감 고쳐주기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 팀의 육아 전반을 맡고 있는 두 여성멤버는 보통 사이좋게 역할분담을 해서 아이를 돌본다. 아이의 엄마가 출근해서 일하는 동안 할머니가 등하원과 아이 돌보기를 담당한다. 저녁에 엄마가 퇴근하면 할머니는 집안일을 시작하고, 엄마가 아이를 돌본다. 모녀관계인 두 사람은 서로를 배려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대체로 평화롭게 육아를 수행하지만, 종종 서로 감정이 상해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 둘 중 누가 육아의 리더인지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면 해결되기까지 진통이 좀 있는 편이다.


    아이의 엄마는 평일과 주말로 나뉘어 활동하는 이 팀에서 양쪽 모두에 포함되어 있는 유일한 멤버이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육아를 수행하는 유일한 멤버이기 때문에 육아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아이 양육의 중심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육아서에서 읽은 후로 본인이 리더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육아의 경험이 전무해서 육아를 책과 인터넷으로 배운 탓에 자식 둘을 낳고 키운 할머니에 비해 경험치가 몹시 딸린다. 게다가 또래의 성인 여성들에 비해 몹시 저조한 체력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퇴근 후에는 대부분 방전된 상태라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신력이나 기세 역시 할머니에게 밀리는 편이기 때문에 육아를 둘러싼 의사결정과정에서 쉽게 패배하곤 한다.


    할머니는 본인이 리더라고 주장하지 않지만, 실질적인 팀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평일에 등하원과 방과후 놀이터 가기, 먹이기, 씻기기, 입히기 등 육아의 전반을 관장하고 있으며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다. 요리와 청소, 빨래 등 돌봄활동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다른 팀원들에 비해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행능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부모들에 비해 아이에게 너그럽게 대하기 때문에 아이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지닌 육아정보가 대략 3,40년 전의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육아정보로 무장한 아이의 엄마와 종종 갈등을 빚곤 한다.


    본인이 리더라고 생각하는 엄마와 실질적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할머니. 두 사람 사이에는 크고 작은 논쟁이 여러 차례 있어왔다. 굵직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태열 논쟁 - 엄마 승

     조리원에서 나오고 며칠 후부터 아이의 얼굴에 빨갛게 태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본 엄마는 아이를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며 속싸개를 벗기길 원했지만, 할머니는 신생아는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며 이에 반대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아무리 발라줘도 태열은 가라앉지 않았고, 이를 보다 못한 엄마가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속싸개를 벗겨버렸다. 에어컨으로 실내온도를 낮춰주고, 속싸개를 벗기자 태열은 금세 진정되었다. 며칠 후, 아이의 매끈해진 얼굴을 본 할머니는 더 이상 속싸개를 해주지 않았다.


    2) 식사량 논쟁 - 할머니 승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뭘 먹이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손이 커서 한번 음식을 하면 뭐든 한 솥씩 하는 사람이다. 아이에게 밥을 고봉으로 퍼서 먹이고, 간식도 배가 뽈록해질 때까지 준다. 3.0kg의 표준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는 할머니와 몇 해를 보낸 후, 영유아검진에서 심한 과체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이의 엄마는 소아비만을 걱정하며 식사량을 줄여야한다고 주장하지만, 할머니는 "다 키로 간다!"며 아이 엄마의 말을 일축하곤 했다. 그리고 만5세를 넘길 무렵부터 아이의 키가 거짓말처럼 쑥 자라는 동시에 날씬해짐으로써 할머니의 말이 사실로 증명됐다.


    이외에도 보일러 온도는 몇 도가 적절한가, 야쿠르트의 적정 섭취량은 얼마인가,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에 관련되는 자잘한 논쟁이 있어왔다. 엄마의 정보력이 할머니를 설득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기세가 논쟁을 단번에 종료시키기도 한다. 요즘에는 '환절기에 아이의 옷은 얼마나 두껍게 입힐 것인가'와 관련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엄마 생각엔 할머니가 아이에게 옷을 너무 덥게 입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아침에 아이의 옷을 입히고 등원을 시키는 사람은 할머니이기 때문에 할머니가 이기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사실 이 팀의 리더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이의 엄마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육아의 주인공인 아이가 평일과 주말에 엄마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누가 대장인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말에 엄마, 아빠와 셋이 있을 때면 아이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다. 뭔가 속상한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달려와 안기고 "엄마, 엄마."하면서 운다. 하지만 평일에 조부모의 집으로 오면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리고 울 일이 생기면 할머니 품으로 달려가서 "할미, 할미" 하면서 운다.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의 이런 태세 전환이 종종 서운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할머니와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어서 아이를 두고 출근하거나 볼일을 보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대략 5년동안 함께 해 온 이 팀의 4인체제는 곧 종료될 예정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면 부모 두 사람이 온전히 아이를 돌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평일과 주말에 두 집을 왔다갔다하며 네 사람이 육아를 하느라 어려운 점도 많았고, 팀원들 사이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부부 두 사람의 힘만으로 아이를 키우다보면 분명히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특히 할머니의 도움으로 육아의 많은 부분을 해결했던 아이의 엄마는 네 명이 함께 하던 이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자주 할 것 같다. 아직 완전체 활동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 벌써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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