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유치원에서 졸업앨범을 촬영한다는 안내문이 왔다. 아이의 졸업이 코 앞에 닥쳤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제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면 나도 엄마와의 공동육아를 졸업하게 된다. 엄마에게 육아를 의지하는 것은 유치원때까지만,으로 처음부터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평일에 할머니집, 주말에 엄마아빠집을 오가던 생활을 청산하고 매일을 엄마아빠와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5년하고도 반. 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운 시간을 헤아려보니 66개월이나 된다. 처음 엄마에게 맡길 때 쪽쪽이를 입에 물고 잠이 들던 딸은 이제 유튜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채널의 잠자리동화를 골라들을 만큼 컸다. 딸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보다 잠자리에서까지 신나게 놀아주는 할머니랑 자는 걸 더 좋아하는데. 이제 할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돌보던 날들도 곧 끝이라도 생각하니 그동안의 일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함께 해서 좋았던 날도 많았지만 함께여서 힘든 날도 적지 않았다. 분명 평온하고 행복했던 날들이 훨씬 많을텐데 기억의 강렬함 때문인지 속상하고 괴로웠던 기억들이 먼저 밀려온다.
아이의 키가 채 1m가 되지 않던 과거의 어느날, 나는 아이가 잠든 옆에서 남편과 목소리를 낮춰 싸우고 있다. 남편은 힘들더라도 우리 두 사람이 아이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부모의 도움 없이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고, 우리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고작 서너살밖에 안 된 아이를 여섯시 반에 깨워 일곱시 반에 유치원차에 태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잠도 덜 깬 채 집을 나선 아이는 나와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적어도 열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 난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는 남편 앞에서 고집을 꺾지 않는다. 남편의 서운한 얼굴을 보는 게 편치 않지만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의 나는 엄마와 냉전 중이다. 두 사람 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거실에서 노는 아이만 쳐다보고 있다. 싸움의 시작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내가 말을 밉게 해서 엄마가 서운했을 수도 있고, 엄마의 뭔가가 나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다. 무엇에서 비롯된 싸움이든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속상한 마음과 함께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나랑 싸우고 속이 뒤집어져도 엄마는 나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놀이터에 데려가고, 아이를 위해 밥을 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이유가 뭐가 됐든 무조건 내가 잘못이다. 그래서 엄마와의 싸움은 늘 내가 엄마에게 어색하게 사과를 하는 걸로 끝이 난다.
또 다른 어떤 날엔 엄마, 나, 딸 이렇게 세 모녀가 다같이 앓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은 후, 유치원은 전염성 질환의 축제장처럼 되어버렸는데 면역력이 약한 우리 모녀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세트로 아파서 고생을 한다. 노로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등 아이를 거쳐서 우리 모녀에게까지 닿은 온갖 바이러스들이 아이와 어른 모두를 호되게 아프게 한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건 안 그래도 힘든데, 아이를 돌봐야 할 사람들이 아프기까지 하면서 육아의 난이도가 수직상승한다. 아픈 몸을 일으켜 밥을 하고, 아이와 놀아주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런 날들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함께 딸을 키운 건 잘 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부모 둘이 키울 때보다 사랑해주는 사람도 두 배, 칭찬해주는 사람도 두 배여서인지 딸은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예쁘다는 말,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란 덕에 자기애가 넘쳐난다. "엄마,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지?"하고 우쭐거리는 딸을 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좋아보인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부부가 둘다 돈을 벌면서 살림살이도 조금 나아졌다. 내가 휴직을 하고 남편이 혼자 벌 때는 매달 마이너스를 찍던 통장에 조금씩이나마 돈이 쌓였다. 그 덕에 몇 달 후면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 근처로 이사도 간다. 물론 은행 돈을 엄청나게 많이 빌려야하지만, 어쨌든 아이에게 방 하나를 내줄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건 엄마의 공이 크다.
엄마와 나의 사이가 가까워진 건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부모의 손을 빌려 자식을 키우다보면 육아방식이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수도없이 들었다. 나처럼 엄마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던 한 친구는 엄마와 사이가 틀어져 친정과 연을 끊었다고 했다. 나와 엄마에게도 크고 작은 위기가 여러 차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나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확실히 깊어졌다. 함께 육아의 희로애락을 겪어내면서 나는 엄마를 조금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모녀는 예전보다 더 친해졌다.
엄마 곁을 떠나 남편과 둘이 육아를 하려니 조금 두렵기도 하다. 일단 내년 1년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직을 신청했지만, 그 후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 2학년짜리 아이를 챙겨 학교에 보내고 나도 출근을 하려면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우리를 떠나보낼 엄마도 걱정이 많은 눈치다. 자꾸만 "3학년때까지는 어른 손이 많이 필요할 건데..."하며 말끝을 흐린다. 5년 넘게 끼고 키운 아이를 떨어뜨리려니 벌써부터 서운한가보다.
그래서 엄마 곁으로 이사와서 엄마의 손을 더 빌려볼까 생각도 해봤다. 딸도 할머니 곁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굳이 내가 휴직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생활은 원활히 돌아갈 것이다. 나는 출근시간에 아이를 함께 챙기느라 동동거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학교를 마친 아이는 굳이 방과후수업이나 학원 뺑뺑이를 돌지 않아도 할머니와 함께 여유로운 오후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둘이 같이 벌면 대출을 갚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여러모로 숨이 편하게 쉬어진다.
하지만 홀로 서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엄마를 놓아드리는 게 맞는 것 같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다 키운 이후로 간간히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었는데, 내 딸의 육아를 맡으면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엄마의 친구분들도 다들 손주들을 돌봐주고 있어서 서로 시간 맞추는 게 쉽지가 않단다. 그래도 아직 다리에 힘이 남아있을 때 엄마를 육아에서 해방시켜드려야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가고 싶은 데도 좀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곁에 와서 살면 엄마는 또 아이의 간식 걱정부터 우리가 퇴근 후에 먹을 반찬 걱정까지 온갖 걱정에 매여 살 게 뻔하다.
이제 우리와 떨어져 살게 되면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동안 못한 뜨개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여유롭게 뜨개질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드시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좋다. 온 집안을 정신사납게 만들던 장난감들이 사라진 고즈넉한 공간에서 가끔은 낮잠도 주무셨으면 좋겠다. 스물세살에 나를 낳은 이후로 45년동안 누군가를 돌봐오던 엄마의 시간들이 이제는 본인을 돌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가끔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엄마에게 너무 적적하게 느껴질까봐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손주들을 돌봐주던 어른들 중 아이가 떠나고 난 후에 빈둥지증후군을 느끼는 분들도 종종 있다는데, 우리 엄마는 성격상 딱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가 너무 외로워지지 않도록 종종 나의 새 둥지로 엄마를 초청할 예정이다. 엄마와 오전에 만나 차 한잔 하고 수다를 떨다가, 아이의 수업이 끝날 때쯤 둘이 같이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다. 생각지도 않게 학교 앞에서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아이는 얼마나 반가워할까. "할머니이이이-!"하고 뛰어와 품에 안길 아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