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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Oct 26. 2024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딸들을 위한 팁 10가지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이 많았다. 원래는 '조부모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자식들을 위한 꿀팁'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친정부모님이 아니라 시부모님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 같고, 맡긴 사람이 나처럼 딸이 아니라 아들일 경우는 또 다를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말하는 게 꿀팁이 아니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고...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 글은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딸들을 위한 팁'이 되었다. 어떤 것들은 모든 조손육아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나, 어떤 것들은 모녀관계에만 적용될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우리 엄마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5년 반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엄마와 육아를 함께 하면서 이런 건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것들이 많았기에 한데 모아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엄마가 하는 게 다 맞다고 생각하는 게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

    살면서 제일 열받는 것 중 하나가 뭘 하는데 옆에서 감놔라 배놔라 입으로만 참견하는 것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봐달라고 맡겼으면서 옷은 왜 그렇게 입혔냐, 과자를 왜 이렇게 많이 주냐, 밥은 먹여주지 말고 스스로 먹게 해라 등등의 잔소리를 쏟아내면 엄마도 짜증난다. 세상이 뒤집혀도 이건 안 돼, 하는 게 아니면 일단은 엄마를 믿고 입을 다물자. 엄마는 나보다 육아경험이 긴 육아 선배님이시다.


    2. 육아에 대한 수고비는 꼭 챙겨드린다.

    돈 문제는 처음부터 명확히 하는 게 서로 편한 것 같다. 엄마가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챙겨드리는 게 좋다. 아이를 돌보다보면 은근히 자잘자잘하게 돈이 드는데 어른들은 그 돈을 달라는 말씀을 못 하신다. 게다가 육아는 공짜로 해내기에 너무 고단한 일이다. 나는 얼마를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보고 결정했다. 참고로 2022년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손주를 돌보는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받고 싶은 돈의 평균 금액은 한 달에 75만원이었다. (나라면 이 돈 받고 아이를 돌보느니 다른 데 가서 알바를 하고 말겠지만, 이게 자식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인 것 같다.)

    

    3. 엄마는 노인이고, 나보다 약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엄마 앞에서는 아이처럼 굴고 싶다. 그래서 "피곤할텐데 쉬어라."하면 쉬고 싶고 "내가 할테니 앉아있어라."하면 앉아있고 싶다. 하지만 고작 40대인 지금도 이렇게 피곤한데 나보다 최소 이십년 이상을 더 산 엄마는 얼마나 피곤할지를 상상해보면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일이 아니다. 엄마는 이제 독감예방주사도 나라에서 공짜로 맞혀주는 국가공인 노인이다. 체력도, 면역력도, 근력도 나보다 약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딱 드러누워서 자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도, 그걸 이겨내고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엄마가 덜 힘들다.


    4. 가끔은 여행에 모시고 간다.

    우리 가족은 일년에 서너번쯤 여행을 가는데 그 중 한두번은 부모님과도 함께 한다. 평소에 육아는 맡기면서 여행 갈 때는 우리 가족끼리만 다니는 게 좀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이 따로 어딜 다니시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 가족과 함께 바람쐬는 것을 몹시 좋아하셨다. 다만, 아이가 여행에서도 할머니에게 달라붙으면 힘들수도 있으니 아이를 안고 다니는 등 힘든 일은 꼭! 부모가 해야 한다. 엄마의 한 친구분은 딸 가족의 여행에 따라갔다가 아이가 할머니만 찾는 바람에 여행 내내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 죽을 뻔 했다고, 다시는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5. 육아가 수월해지는 아이템을 많이 마련해드린다.

    아이를 돌보다보면 시간을 보내는 게 고역일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 가고 하루종일 집에서 놀아줘야 할 때는 아이도, 아이를 돌보는 어른도 하루가 너무 길다. 나는 그런 날 쓰시라고 아이가 좋아하는 놀잇감, 책 등을 쟁여두었다. 엄마는 아이가 심심해서 미칠 때 그런 걸 하나씩 꺼내주면 또 한두시간은 수월하게 흘러간다고 했다. 나의 딸은 미술을 좋아해서 물감놀이나 스티커북을 주면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었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란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6. 아이의 준비물 등은 신경써서 미리 챙겨놓는다.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시다보면 자칫 부모인 내가 육아에서 한발 떨어진 사람처럼 행동하기 쉽다. 준비물이나 숙제 등을 알려주는 유치원 문자를 보고도 직장에서 일하다가 까맣게 잊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넘겨버리면 등원을 시켜야 하는 아침에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사람은 엄마다. 지난 방학이 끝날 무렵, 유치원에서 아이의 칫솔, 치약, 여벌옷 등 상비용품들을 챙겨보내달라는 안내가 왔었는데 '저녁에 챙겨야지.' 생각만 하고 잊어버리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에 엄마가 발을 동동 굴렀다. 수시로 아이의 유치원 가방을 들여다보고 숙제나 준비물을 챙기는 습관이 필요하다. (저녁마다 알림장을 보고 책가방을 챙겨야한다는 초등학생의 다짐 같지만 정말 중요한 습관이다.)


    7. 아이를 챙기는 만큼 엄마도 챙겨야 한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솔직히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아이다. 아이가 하루종일 잘 놀았는지, 유치원에서 누구랑 뭘하고 놀았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세 가지를 물을 때, 엄마의 안부도 한두가지는 물어야 엄마도 서운하지 않다. 내가 예전에 혼자서 아이를 키울 때,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아이 안부만 물으면 그렇게 서운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엄마에게 밥은 드셨는지 묻는다. 대부분 입맛이 없어서 대충 먹었다는 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엄마가 드실 것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흰 우유를 살 때는 커피 우유를, 아이의 식빵을 살 때는 엄마가 좋아하는 옥수수빵을 꼭 산다.


    8. 엄마는 아이를 돌봐주는 거지, 나까지 돌보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한다.

    나는 엄마의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바람에 아이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 밥을 먹고 사는 축복을 누렸다. 하지만 엄마의 컨디션이 안 좋아보일 때는 내가 뭘 만들든, 배달을 시키든, 외식을 하든 해서 엄마를 식사 준비에서 벗어나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삼시세끼 밥을 차려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매 끼니마다 밥을 하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엄마는 가끔 놀이터에서 본인처럼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그 중 한 할머니는 퇴근하고 돌아온 딸이 저녁밥까지 먹고 집에 가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셨단다. 엄마에게 봐달라고 부탁하는 건 딱 아이까지만이다. 성인이 된 자식까지 돌봐주는 건 엄마도 힘들다.


    9.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린다.

    엄마는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신발도 벗기 전에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주로 아이가 아침에 유치원차를 누구랑 탔는지, 놀이터에서 어떻게 놀았는지, 어떤 간식을 어떻게 잘 먹었는지 등등에 관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옷도 못 갈아입고 한참을 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뭔지는 너무 잘 알기에 왠만하면 잘 들어드리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육아휴직을 했을 때, 하루종일 아이와 둘이 있다 남편이 돌아오면 어른과의 대화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엄마도 말 통하는 대화상대가 온 게 반가워서 그러는 거다.


    10. '미안해, 고마워'는 모든 상황에서 그렇듯 마법의 단어이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다 보면 미안하고 고마운 일들 천지다. 아이가 아파도 걱정없이 출근할 수 있는 것, 가끔은 친구랑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것, 유치원에서 뭔 일이 나도 나 대신 뛰어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헤아려보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k-장녀라서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이 모양이라서 그런지 엄마에게 살가운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어색하고 쑥스럽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정다감한 딸들처럼 엄마를 끌어안고 사랑하네 어쩌네 하는 건 한번도 해보지 못 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은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진심으로 엄마에게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기 때문이다.


    위에 늘어놓은 열 가지는 대부분 내가 머리로는 생각했으면서 잘 지키지 못 한 일들이다. 내가 잘 지킨 건 매달 정해진 날짜에 엄마에게 돈을 보내드린 것 한 가지 뿐인 것 같다. 엄마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기, 엄마보다 많이 움직이기, 아이를 챙기는 것만큼 엄마도 챙기기... 등은 내가 제대로 하지 못 해서 엄마가 서운함을 표현했던 일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처럼 아이를 맡긴 딸들에게 도움이 되는 팁에 대해 쓰겠다고 시작했던 이 글은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내가 제대로 하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한 반성문이 되어버렸다. 이 글이 반성문이라면 마무리는 앞으로는 잘 하겠다는 다짐이 되어야 할텐데, 이제 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도 거의 끝나가니 그런 다짐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언제나 깨달음은 한 박자 늦는 게 문제다. 그래서 엄마가 나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하고, 오래도록 감사하는 다짐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나를 키워준 것도 모자라 나의 아이까지 키워주신 은혜는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갚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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