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숨을 쉬고 있는데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요
“바람도 없는 도심 속인데 맑은 공기를 가득 쐬고 가는 느낌이에요.”
고독지기가 만난 두번째 고독러는 마케터로 7년째 일하고 있는 연이님. 일에서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 사이로 나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배어나올 때, 고독을 찾아왔다. 고독 속에 느낀 것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어 스스로를 돌보는 하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독과 처음 마주한 순간
고독스테이에 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순간이었어요?
저는 처음 입장할 때가 제일 강하게 떠올라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이요. 설레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어요. 머리 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막상 문을 딱 열었을 때 너무 아늑한 공간이 있었을 때 아늑함과 안도감이 한 번에 밀려 들어왔어요. 사실 저는 원래 호텔 같은 공간을 상상했었거든요. 근데 호텔 같은 곳은 예쁘고 깔끔하긴 한데 완전히 편하거나 내 공간 같은 느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고독스테이는 처음 들어 섰을 때부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공간인데도 편안하다는 감정이 들었어요. 순간 마음이 확 풀렸던 그때의 감정과 기분이 지금도 생생해요.
낯선 공간이 나의 공간으로 바뀌는 편안함, 그 전환되는 지점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군요.
공간과 프로그램 안내에서 세심함과 동시에 친절함이 느껴졌어요. 공간에 적응하고 프로그램 안내를 보면서 아, 여기는 내가 마음 편히 머물다 가도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이 뒤에 누군가 친절한 존재가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고 이 공간은 지금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더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들어가서 익숙해진 다음에는 누워 있기도 하고 내 공간처럼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 공간을 나섰을 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문을 닫고 나올 때 굉장히 개운했어요. 한 며칠 안 씻고 사우나에 온 사람처럼 마음에 묵은 때를 다 벗겨내서인지 개운하고 뿌듯했어요.'이 곳에 있었던 시간이 짧지만 굉장히 꽉꽉 차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굉장히 신기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사실 여기서 하는 것이 엄청 많지는 않잖아요. 미션에 따라서 몇 가지 액션을 했을 뿐인데 그 안에서 제가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고, 스스로에게 몰두했길래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했어요.
“오늘 내가 나랑 더 친해졌구나. 내가 오늘 나를 더 알아줬구나.”
나를 챙기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나를 챙기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나 스스로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장치나 계기 없이 나를 돌보는 시간을 스스로 갖기가 힘들잖아요.
평소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세요?
네 나와 나의 관계도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랑 관계를 잘 만들고 친해지려면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듯이 나도 나랑 관계를 잘 맺으려면 그런 노력이 꾸준히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고 보통 많이 생각하는데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저는 내가 나를 제일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지만 이런 시간을 가지면서 한꺼풀 한꺼풀 벗어내고 그 안에 진짜 숨겨진 나를 발견해나가는 것 같아요.
혼자의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보통 어떻게 보내고, 그 시간을 어떻게 느끼는 편이세요?
저는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강박적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이 시간을 통해 무엇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영화 하나를 보든, 여행을 가든 편하게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뭐 하나라도 얻어내야겠다는 마음인 거에요.
그런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관계를 읽는 시간' 이라는 책에서 '오티움' 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어요. 나를 편하게 해주는 여가시간이 필요하다는 건데요. 그걸 읽으면서 내가 쉴 때조차 나를 너무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스스로를 도구처럼 썼다는 자각을 하고 나서는 당장 효용이 없더라도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어요. 기타를 배우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요리하는 것에도 재미를 들였어요. 스스로 나를 챙기는 느낌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이렇게 강박을 비우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Q. 고독은 어떻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셨나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하는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이 흐름을 계속해서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디지털 기기나 인터넷에 늘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 어느 순간부터는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이 시간을 잘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생경한 곳에서 나 혼자 오롯이 남았을때 감정을 마주하면 어떨까 궁금했어요.
부모님, 친구들이랑 있는 시간은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운데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잘 즐기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독스테이를 신청하게 됐어요. 나 스스로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지 이런 것들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어요.
극복의 시간
어떤 계기로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거에요?
가장 힘들 때 고독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최근 1년 동안 야근이 많았어요. 마케팅 예산을 많이 집행하게 되면서 업무 내용도 달라지고 성과에 대한 압박도 커지더라고요. 외부에서 압박을 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자괴감을 많이 느끼는 스타일이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이별도 겪고 갑자기 허리 디스크도 터져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도 쉽지 않았어요. 짧은 시간 안에 몸과 마음의 건강이 무너져 내렸던 시기였어요.
그동안 나를 너무 돌보지 않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게 된 거에요. 그러면서 요가랑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야근하다가 새벽에 들어와도 요가나 명상을 하고 씻고 잠이 들었어요. 반복적이지만 나를 돌보는 일상을 보내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에 힘이 생기더라고요. 내 스스로 나를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존감을 만들어줬어요.
어느 날은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기분이 그냥 너무 좋은 거에요. 그래서 혼자 스튜디오를 예약해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 사진을 보면 그날의 기분이 생생해요. 내가 이렇게 나를 계속 지켜줄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부적 같아요. 언제든 나는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고 당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예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내 모습'이 너무 좋아요.
스스로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지를 하시고 그런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도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은 좀 괜찮아지셨지만 아직도 병원에 계시거든요.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아직 어렸던 동생한테는 충격을 받을까봐 2년 가까이 비밀로 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큰 슬픔을 혼자 감당하려다 보니 우울증이 온 거에요. 제가 주변에 도움 요청을 잘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이 감정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혼자 술을 마시고 잠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정말 혼자서는 정상적인 사고가 안되는 때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다행히 주변에 저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됐고, 술에 의존하기 보다 건강하게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날씨와 같다면
주변에 연이님을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도 이제는 연이님 스스로도 자신을 챙길 수 있는 힘이 생기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이걸 몇 번째 겪게 되니까 어떻게 해야할 지 좀 더 갈피가 잡히기도 했고요. 주변에 도움을 잘 청하는 법도 배웠어요. 지금도 불과 몇 개월 전에는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눈 뜨는 것도 싫었어요. 오늘은 얼마나 슬플까, 오늘은 얼마나 울까.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 싶어요. 지금은 한 책을 다 쓰고 다른 책을 쓰고 있는 느낌이에요. 또 그런 시간이 찾아오겠죠. 그래도 이제 더 빨리,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럴 때 정말 마음이 날씨 같다는 생각을 해요. 방금 전까지 폭우가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 화창하게 햇살이 내리잖아요.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몰아세우는 건 쉽게 하게 되는데, 나를 위로해주고 잘 돌봐주는 건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동굴 끝까지 파고 들어봐야 그렇게 다시 올라올 계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다시, 고독의 시간
요즘은 충분히 고독하신가요?
네 요즘은 고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도 했어요. 인간은 같이 있어도, 혼자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치환시키는 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거부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외롭지 않고 싶어서 그 생각에 매달리게 되면 오히려 늪처럼 외로움에 더 잠식당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지금 외롭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외로움을 대하게 되면 그것을 고독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나서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고독이라는 것이 형체가 없으면서도 느껴지는 것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연이님이 느끼는 고독의 모양은 어떤가요?
저는 고독이 어떤 형체라기보다는 '맛'인 것 같아요. 어떤 맛이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컨대 외로움은 떫은 맛인 거죠. 근데 고독은 다크 초콜릿 같아요. 처음에는 쓴것 같은데 씹고 씹으면 씹을수록 계속 단맛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씹다보면 나중에는 그 끝맛까지 오래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 것도 많이 맛봐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단어를 쓸 때도 외로움에는 '사무친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 감정에 잠식당하는 거죠. 그런데 고독은 '씹는다'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내가 이걸 '음미하겠다'는 능동적인 태도를 가지면 다른 맛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즐길 수 있다는 의미 같아요.
영어에도 외로움은 lonleyness, 고독은 solitude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외로움에는 약간 슬픈 늬앙스가 있지만 고독에는 긍정적인 늬앙스가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집단주의가 워낙 강하다보니까 고독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감정에 대해서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감정과 반응 사이에도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그 사이에 공간이 없으면 내가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반응하고, 슬프면 슬픈 대로 반응해버리는 거죠. 그런데 싫거나 화나는 감정이 내 뇌에 머무르는 시간이 5초가 안 된대요. 그러니까 결국 감정대로 반응을 하는 것은 내가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인 거죠. 그런데 반응과 감정 사이에 공간을 얼마나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나의 행동과 태도가 달라질수 있어요. 외로움을 느껴도 이것을 고독으로 치환해야지, 하면 그런 감정도 즐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감정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넓혀 나가겠다는 생각을 요새 하고 있어요.
명상에서도 이걸 굉장히 중요하게 이야기하잖아요. 감정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 같아요. 비어 있는 시간의 틈을 우선 만들어야 뭐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옛날 말에도 화가 나면 3초만 참으라고 하잖아요. 감정이 머무르는 시간이 5초밖에 안된다고 하니까요. 이런 걸 옛날 사람들은 정말 알고 있었나봐요.
연이님은 스스로 나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분이신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스테이를 찾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요즘에는 비교대상이 너무 많잖아요. 인스타그램에도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고요. 조바심이 생겨서 찾아보다가 지치기도 하고요.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고독스테이에 들어가면 휴대폰도 안 보고 나 스스로만 바라보니까 그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었는데 고독스테이를 다녀와서는 조금 확신이 생겼어요.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하고 내 안을 탐구하다보니까 나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정답이 없잖아요.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혼자 생각하면서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좋았던 순간 중에 기억나는 순간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원래는 출근하면서부터 무슨 트렌드가 있는지 뉴스를 읽고 검색하면서바쁘게 정보들을 챙겼어요. 그런데 요새는 노래도 안 듣고 그냥 버스에 앉으면 창밖을 보면서 가요.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기분이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무드를 즐기고요. 집 주변 산책을 하면서 꽃 피는 모습을 보면서 사소한 것에 놀라고, 그 놀람을 즐겨요. 가끔은 혼자 울컥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것에 경외를 느끼는 것이 뇌에 좋은 자극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감정에도 좋은 방향의 자극을 주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얘기를 책에서 읽었어요.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서도 눈을 뜨자마자 한시간, 잠에 들기 전 한시간 만이라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과 정보로부터 멀어져도 하루의 인상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연이님이 사실 지금 굉장히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계시기도 한데, 만약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기타치고 싶어요.
어려운 질문일줄 알았는데 답변이 굉장히 바로 나오네요. (웃음)
사실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았어요. 최근을 떠올려보니 내가 제일 기분이 좋았을 때는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를 때더라고요. 명상도, 요가도 사실 그 순간 자체보다도 이 시간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된다는 감각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기타치고 노래하는 건 그냥 그 순간 자체가, 그 순간의 내가 좋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없고요. 나이 들어서도 그냥 이렇게 할 수만 있어도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질문이 너무 좋았어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질문이었어요.
나의 소중한 아날로그 시간
이렇게 한 시간이 그냥 주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행복한데, 그 시간을 나에게 주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꾸준함에 대한 부채감이 있어요. 내가 꾸준히 무언가를 못했을 때 느끼는 찝찝함이 싫어서 피곤해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서 명상이든 요가든 조금이라도 하고 잠들 거든요. 그리고 좀 내려놓는 연습도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있고요. 혼자 살다보니까 집안일도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요가나 명상도 거르면 찝찝하니까 매일 하다보면 기타 치는 시간을 결국 빼먹게 되는 거예요. 내가 기타 치는 시간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러면 다른 걸 좀 줄여서라도 일을 하고 난 빈 시간 동안의 우선순위에 이걸 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연이님의 행복을 방해하는 건 디지털 기기도 인터넷도 아니네요.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너무 성실한 나 (웃음)
참 이런 걸 보면 나랑 친해지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하는 건데 막상 돌아보면 아닌 것 같거든요.
연이님한테는 일을 빼고 보면 디지털 기기 없이도 할 거리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진짜 하루를 통째로 디지털 기기 없이 보낸다고 하면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그런 하루가 너무 기대돼요. 제가 원래 섬에서 왔잖아요. 저는 컴퓨터란 것을 중학교 때 처음 써봤거든요. 그런데 IT의 중심인 판교같은 곳에 제가 와 있을 줄 몰랐죠. 디지털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속도가 빠른 곳에서 매일매일 버티고 있다보니 오버페이스를 하는 느낌이 있죠. 극단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삶에 너무 지쳤어요. 트렌드를 알기 위해 sns를 보고 커뮤니티도 가고 그렇게 스마트폰을 내내 붙들고 트렌드에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놓으면 너무 홀가분할 것 같아요. 제가 직업이 마케터만 아니라면 휴대폰도 진작 피처폰으로 바꿨을 거에요. 무엇보다 일단은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아주 느린 매체잖아요.
마지막으로 묻게 되네요. 연이님을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사랑, 컬러, 달리기
요새 사랑에 관심이 많아요. 남녀간의 사랑이라기 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요. 예전에는 나밖에 몰랐는데 요즘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사랑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남자친구랑 헤어질 때도 처음에는 그 사람을 탓했어요. 그런데 곱씹어 생각할 수록 나도 잘못한 점이 많았다는걸 깨달았어요. 부족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잘 지내려면 서로 배려와 존중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다시 배우고 있어요.
두번째는 컬러에요. 컬러풀하다는 게 다채롭다는 뜻이잖아요. 요새 제가 되게 많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 사람의 내가 아니라 다양한 나의 모습이 있는데 이 많은 나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나갈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그리고 또 각자의 색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도 어떻게 잘 어울려서 지낼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요.
세번째는 달리기에요.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계속해서 달리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잘해내고 싶은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런 키워드들이 요즘의 저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옛날보다 요즘에는 비교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이 더 생겨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좀 더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몸을 쓰는 활동을 더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는 현대무용도 배우러 갔었는데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몸을 유연하게 쓸 수 있으면 마음도 유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에너지를 분출해야 오히려 더 건강하게 채워 넣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축구도 하고 러닝도 하고 몸을 움직여서 에너지를 분출해요.
공식질문입니다. 연이님이 느끼는 고독스테이란?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정답을 찾는 곳
내가 스스로 단단하게 내 결심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이렇게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을 가진 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저는 혼자 살지만 너무 익숙하고 내 삶과 직결된 공간이라서 오히려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낯설지만 친근한 공간에서 휴대폰을 들지 않고 있으니까 좋았어요. 그냥 나랑 놀다 오는 거잖아요. 들어가서 다시 한 번 내안에서 답을 찾고 확신하고 나를 격려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