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는 사랑, 사랑을 밥먹듯 하는 사람의 고독
인터뷰보다 대화에 가까웠던 시간. 선선님은 고독스테이에 찾아와 밤을 보낸 첫번째 게스트였다. 공유된 정보가 거의 없는 의문투성이의 몇몇 글만을 보고도 선뜻 발걸음을 해준 게스트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퇴실 때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덧 대화가 되어 5시간 가까이 지나가 있었다. 고독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무언가 연결장치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긴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직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궁금한 이야기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기획하고 있던 매거진의 첫번째 인터뷰이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Q. 혼자 있을 때 시간을 보내는 패턴이 있으세요?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하고 공부를 해요. 이직 준비를 하고 있어서 직무 관련 공부를 해요. 그리고 난 다음에는 포트폴리오 정리를 한다든지 잠깐 쉬었다가 소셜 클럽에 참여하거나 정해진 과제들을 해요. 그리고 밥을 두 시간 정도 천천히 먹어요.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딴짓도 하고요. 혼자 있지만 흐트러지는게 싫었거든요. 아침에 할 일을 해두고 나면 저녁에 가족들하고 떳떳하고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더라구요.
Q. 고독스테이에 다녀온 후에 혼자 보내는 시간에 차이가 있었나요?
집중하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방해금지 모드나 비행기 모드를 해두고 서랍에다 넣어두거나 꺼놓기도 하는데요. 그러면 정말 혼자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sns를 많이 하는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휴대폰을 떼어두면 모니터로는 딴짓을 안하는 편이에요. 일단 모바일로 알람이 오면 주기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자꾸 생기니까 그걸 방지하는 거죠. 휴대폰 알림 모드를 바꿔두는 건 종종 하는데 아예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시도는 고독스테이를 다녀온 후에 하게 되었어요.
Q. 고독의 정의 자체를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충분히 고독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약간 그 경계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만족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Q. 그럼 고독의 경계에 있는 선선님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발견되고 싶다는 욕구인 것 같아요. 누가 나한테 연락을 해주면 그게 좋아서 자꾸만 나오는 거예요. 솔직히 혼자 방에서 글 쓰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저는 꼭 누군가와 공유하는 자리에 그걸 들고 가고 싶어 해요. 내가 고독한 상태에서 쓴 글이라도 골방에서 나와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요. 고독을 즐기려고 고독스테이에 갔어도 나와서는 ‘거기서 내가 이런 걸 했다’ 하고 동네방네 소리치고 다니는 거죠.
GoDok: 저도 그래요 항상 그 경계에 있는 느낌이에요. 고독한 시간이 얼마나 좋은 지도 알지만 또 그게 얼마나 좋은지를 소리쳐서 외쳐야하는 사람이죠.
근데 저 같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또 이곳에 데리고 오는 것을 잘하는 것 같아요.
‘거기 돌아다니시는 분, 이리와 보실래요?’
‘거기 방에 앉아계신 분, 잠깐 나와보실래요?
이렇게 연결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경계에 있지만 제가 고독의 순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걸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Q. 선선님은 좋아하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아요. SNS 활동도 굉장히 활발하게 하시는데요. 제가 뭔가를 좋아하게 될 때는 나랑 결이 맞는다고 느끼거나 닮고 싶은 점이 있을 때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거든요. 선선님은 어떤가요?
제가 팔로우하는 계정이 1800개나 되는데요. 그걸 다 제대로 볼 수는 없고 사실 제 것만 봐요. 제 기록을 제일 재밌게 보게 되더라고요. 과거의 기록을 보면 다른 사람 같아요. 많은 계정들을 팔로우하는 건 그냥 연결되어 있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저를 계속 확장시키는 걸 되게 좋아하고 포용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확장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찢어지겠죠. 그러니까 신축성 있게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서 내 형태를 찾아야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한참 연결되어 있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는 아침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요. 엄마, 아빠와 셋이 함께 사는데 출근하고 나시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돼요. 그럴 때 풍족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Q. 혼자 있을 때의 느낌은 어떤가요? 연결될 때도 풍족한 느낌을 느낀다고 했는데 그때와는 어떻게 달라요?
달라요. 코로나 시대라 더 그 차이를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은데 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그 시간은 화면을 끄면 끝나잖아요. 그럼 저는 다시 제 본연의 템포로 돌아오는 거죠. 아무리 제가 외향인이어도 혼자 있을 때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다르거든요. 이전에는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주곤 했어요. 내 시간이 공짜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거절을 잘 못했죠. 조금이라도 흥미로운 것들이 벌어진다고 하면 아무리 멀어도 가는 거예요. 그때는 시간이 막 넘쳐났던 거죠.
Q. 선선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기객관화가 잘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통해서 저의 강점이나 장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었거든요. 주변 분들로부터 의외로 제 강점이 자기객관화가 잘되는 점이라는 답장이 오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자기 객관화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저는 서울 사람이고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남대문을 불타고 난 다음에야 처음으로 봤거든요. 그 정도로 나고 자란 동네에서만 머물렀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면서 좀 자유로워지다 보니까 일단 막 돌아다녀본 거 같아요. 제가 지금 이십대 중반인데 이십대 초반까지는 계속 확장시키는 것만 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해보고 먹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 취향이나 나의 모양 같은게 좀 잡혀가는 느낌을 받아요.
Q. 자기객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자체가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선선님의 모습과 그런 노력 자체가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선선님은 언제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껴요?
저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때 자유를 느껴요. 그게 뭐냐면 내가 자기표현을 했을 때 ‘너 그거는 안돼.’ 이렇게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공간에 있을 때 자유롭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 활동을 했을 때도 지켜야 할 규칙을 말해주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관계 속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같아요.
Q. 선선님은 글쓰기 모임도 다양하게 하고 계신데 굉장히 내밀한 자기표현이나 감정에 대한 서술에도 거침이 없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어떤 이야기든 세상 어딘가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면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없겠죠. 하지만 내 이야기는 나한테 밖에 없고 또 그런 맥락의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서 저는 나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표현하는 것을 즐겨요. 글 쓸 때는 그래서 많은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돼요. 제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체성 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빼놓고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수가 없어요.
Q.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을 계속 감자뿌리 같이 캐내고 발굴을 하고 있잖아요. 혼자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 발견되는 것들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요즘 주목하고 있는 것들은 감정인 것 같아요. 모든 건 사랑에서 시작해요.
‘사랑을 하는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나는 왜 이렇게 사랑을 하는 것을 좋아할까.’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는 것에 이렇게나 열정적인 나 자신에게로 다시 포커스가 돌아오는 것 같아요.
선선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가 생각났어요. 그 가사에 나오는 여성 화자가 떠올라요. 비지엠으로 깔아주고 싶어요.
꼭 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의 형태가 참 많잖아요. 그게 저를, 제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계속 감정에 대해서 더 끄집어내서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의 저는 사랑받고 싶고, 소속되고 싶어서 조바심이 많이 났거든요. 그 이후로 제가 해온 사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나를 더 진하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마음들을 글로 쓰면서 스스로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내밀한 감정에 대해서 쓴 글이라고 해도 그걸 꺼내놓으면 어디선가 응답이 와요. 제가 쓴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로부터 ‘나도 그런 결핍이 있었어’ 이런 화답이 와요.
Q. 그런 응답이 올 때는 어떤 감정을 느껴요?
그걸 다시 자유와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했잖아요. 그런 화답이 올 때 제가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가 하나 더 생기는 것 같아서 다시 자유로워져요. ‘지금 나의 이 감각이 이상한 것이 아니야’ 같은 위로와 확신을 받는 거죠.
내가 앞으로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겨요.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내가 얼마든지 용감해질 수 있는 안전하고 든든한 울타리를 스스로 만드는 일 같아요. 그 안에서 이야기가 더 깊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더 데리고 올 수도 있는 거예요.
Q. 선아님이 사랑을 할 때는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을 상대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관찰하기도 할테고 반대로 그 투영을 통해서 나를 예민하게 감각하게 되기도 하잖아요. 사랑을 통해서 발견한 선아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결핍과 불안인 것 같아요. 결핍이라는게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텐데요. 저는 불안함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게 제 약점이기도 해요. 사랑을 할 때 제 안의 불안함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그걸로 인해 하루가 좌지우지되고 무기력해지기도 해요. 불안하다는 건 결국 저한테 주도권이 없는 것 같아요. 주도권을 남한테 내어주고 전전긍긍하는 거잖아요. 상대방이 하자는 대로 하다보면 하루가 저답지 않게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요.
어린이들이 다니는 동네 수영장에 가보면, 레일 출발 지점에 플라스틱 발판이 설치되어 있어요. 거기서 발을 딛고 앞으로 헤엄쳐 가야 하는데, 저는 늘 발판의 경계에서만 둥둥 떠있는 편이에요. 누가 옆에서 출발하는 물살 때문에 발판 밖으로 밀려 나갔다가 화들짝 놀라서 다시 돌아오고요. 무서워하면서도 그걸 즐기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사랑이 그런 것 같아요. 커다란 파도를 보면 왠지 모르게 도망가야 할 것 같은데 결국 거기에 저를 내맡기게 돼요.
Q. 나보다 큰 파도가 올 때는 오히려 나를 좀 내맡겨야 더 안전하잖아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늘 파도 치는 곳에 서있었던 거죠. 이 마음이 해소되려면 소리를 지르면서 옷을 찢고 운동장을 구르기라도 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엄청 충격을 받는 거예요. 본인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친구의 말이 제게는 충격적이었어요. 그건 대체 어떤 삶일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정신과에 방문하고, 진료를 받았었어요.
그 후에도 저는 여전히 자주 불안해지는 사람이었고, 그런 탓에 사랑은 제게 그야말로 파도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파도에 자신을 내맡긴 저의 선택 덕분에 전보다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파도 타기가 좋은 줄 알게 되니까 파도를 타는 그 순간 자체도 좀 더 즐기고 싶어졌어요. 불안과 조급함으로 소모되는 건 아까우니까요. 그래서 최근에는 심리상담도 시작했어요. 더 나아지고 싶어서.
선선님이 고독을 뚜렷하게 느꼈던 순간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 선선님이 달리기를 주로 하는 보라매 공원으로 함께 향했습니다. 함께 걸으며 대화같은 인터뷰를 이어서 진행했어요.
Q. 달리기 모임은 만나서 같이 하는 건가요?
원래 학교 운동장에 모여 달리던 모임이 발전되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코로나 시대의 달리기 모임이니만큼 각자 생활하는 곳에서 따로, 또 같이 달리고 있어요.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고 줌으로 모여 앞으로 어떻게 달려볼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진행하고 있는 달리기 모임에서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어요?
달리기를 하다보면 나 자신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호흡을 신경 쓰면서 달리다 보니까 명상하고도 닮은 점이 많더라고요. 달리는 동안에는 제 자신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사실 그 생각이 달리는 저를 맹렬하게 쫓아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깨달은 것이지만요. 바로 직전에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부터 몇 년 전에 했던 생각들까지도 불쑥 떠올라서 저를 쫓아오더라고요. 대부분은 저를 탓하는 생각이에요.
‘그때 왜 그렇게 말했지, 아 그거 하지 말 걸...’
하지만 숨이 차오르는 게 경보음 같아요.
‘아이고 힘들어. 호흡에나 제대로 집중하자.’ 이렇게 돌아오게 돼요. 생각은 계속 저를 쫓아오고 저는 거기서 달려 나가고, 또 생각이 저를 다시 따라잡고... 그걸 계속 반복하는 것 같아요.
원래도 달리기는 혼자 하는 거잖아요. 개별적으로 경험한 것을 비대면으로 나눌 때 달라지는 점이 있나요?
저는 혼자 못하겠어서 같이 달리는 거예요. 혼자 하는 달리기와 같이 하는 달리기를 구분 짓는 것은 결국 연대감인 것 같아요. 저희는 막 거대한 목표 같은 건 없어요.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하프마라톤을 나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지만 같이 하는 달리기에서는 그저 ‘포기하지만 말자.’ 그런 점이 안전지대 같아요. 실패해도 된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Q. 달리면서 느꼈던 것 중에 감각적으로 가장 기억나는 것이나 순간들이 있을까요?
하루는 밤을 꼴딱 새우고 잠이 너무 안 오는 거에요. 새벽 6시에. 그래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 보라매 공원으로 나간 날이 있었어요. 그때가 딱 6월 중순 정도 였는데 날씨도 좋고 아침이라 쾌적한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달려 나갔죠. 그런데 호수 주변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예뻤어요. 길에는 백합이 피어있고 화단에도 꽃들이 잔잔하게 피어있었는데 너무 예쁘더라구요. 그날 그게 너무 예뻐서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어서 sns에 올렸거든요.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그 이후로도 보라매 공원을 계속 가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 모네가 수련만 계속 그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질리지도 않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저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철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달리면서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Q. 디지털 기기로 계속 바르게 바뀌는 화면을 볼 때도 사실 어찌보면 내 눈앞의 풍경이 계속 바뀌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유입되는 정보에는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런 꽃 같은 풍경이 나를 압도할 때는 굉장히 좋잖아요. ‘그런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에서는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많잖아요. 모두가 내가 원하는 것만 보여주지도 않고 그런 내용들을 습관처럼 그냥 ‘보고’ 있는 것 같아요. 흡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가듯이 ‘보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꽃을 보고 어디로 달릴지, 내 발걸음이 어디로 가는 지는 제가 선택을 하잖아요. 같은 트랙만 돌더라도 360도로 보는 거고요. 트랙이 아니라 호수 근처를 돌고 싶다고 하면 거길 달리는 거고요. 두런두런 클럽에서 달릴 때 어떤 루트로 달리는 것이 좋은지 이야기를 해보면 선호하는 루트가 다 다르더라고요.
Q.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하루를 온종일 달릴 수도 없잖아요. 모든 순간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어찌 보면 피곤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나 알고리즘 없이 나의 선택으로 나의 하루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책 읽고 글 쓰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손 글씨보다는 자판으로 쓰는 걸 더 선호하기는 해요. 고독스테이에서 자명종으로 일어났는데 저한테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거든요. 그렇게 아침에 디지털 기기 없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책 읽고 쓰는 것도 예전에는 하나의 꾸러미처럼 바라봤는데요. 이제는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고독과 고독스테이를 선선님의 말로 설명해준다면?
제가 옳은 용어를 사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구심점을 찾아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연결 짓고 확장시키는 것을 좋아하고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데요. 다시 돌아와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좀 더 깊게 들어와서 볼 수 있는 것이 고독이 저한테 주는 가치인 것 같아요. 고독스테이는 저한테는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전환점이 제 손 닿을 거리의 접근 가능한 곳에 있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제가 원하는 풍족한 나를 다시 채우고, 나를 나에게 제대로 흡수시키는 것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고독스테이에서 연습한 것들을 일상에 돌아와서도 잘 활용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