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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존재 앞에서

페르소나 뒤 나의 진짜 모습은?

by 요술램프 예미 May 14. 2016

생에 대한 욕구와 열망이 강하다는 건 그 만큼 사람을 고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려, 때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모습의 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마 눈에 담지도 못 할 몰골이 되고 말기도 한다. 


요즘 진정한 나를 찾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이 애초에 있기는 있었는지 의심스러워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가 마치 하나의 구조물을 살피 듯 여기 저기서 나 자신을 살펴나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뭔가 사춘기 때나 해 봄직한 질문이었다. 사실, 사춘기 때에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같은 건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보다 더 혹독한 방황을 겪으며 지금은 그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나를 남성적이라고 하는데, 또 한 편에서는 천상 여자라고 하기도 하고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감정의 바람에 흩날리는 종이조각이 되어 여기 저기 날라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저 사람들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연구하며 그들처럼 되고자 하고... 누구와 있을 땐 한 없이 조용하다가 또 누구와 있을 땐 한 없이 명랑하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나의 그것은 나의 정체성마저 뒤흔들어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조차 없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글을 쓰면서 부작용 하나가 생겼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의 속엣 것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속엣 것을 마주했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것이었고, 꽤나 그럴 듯 해 보였던 강한 모습이라고는 사라져 버린지 이미 오래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것들을 덮고 있던 것들을 다시 덮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처라는 건 덮어버렸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상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다시 들추어냈을 땐 상처에 고름이 나고 피가 흐르고 있는 걸 곧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차라리 그걸 덮어버리고 나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상처를 다시 들추어내서 이겨보겠다고, 상처를 치유해 보겠다고, 인간은 자가치유력이 있어서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냥 오판이고 오만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었던 나의 모습, 새롭게 써 나갈 나의 모습들까지... 그 모든 모습들에서 일치점을 찾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모두가 내 모습이라고 말하기엔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 안에 사랑스러운 모습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또 하나의 원망만 원망 위에 덧칠해질 뿐. 존재가 흔들린다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과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종국에 모든 고민과 고독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지...'사랑받고 싶다'...로...


나는 누구일까요? 무엇일까요?


내게서 뻗어나온 길...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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