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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Jul 08. 2021

늙음 앞에 무례하지 않길

동네 구석구석 발 닿는 길

      

아파트 단지를 끼고 뒷산을 오른다.

채 10분도 안 돼 꼭대기가 나온다. 정자가 나오고 주변엔 운동기구들이 줄 서 있다.

S는 어디로 갈까 주춤하다 아무도 없는 정자 기둥에 기대고 앉았다. 이미 운동시간을 지나서인가.

산책길을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늘은 정자에 누워 하늘을 보기로 한다.   


S의 친정엄마가 걷기 힘들어진 건 이미 몇 해 전부터였다. 엄마의 걸음걸이는 점점 불안해졌고 식구들은 엄마가 외출이라도 할 때 면 항상 불안했다. 그러던 차, 엄마는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가 쓰러지셨다. 뇌경색이었다.

엄마의 휠체어 생활이 시작됐다.     


S의 아버지는 일상에 어두운 분이셨다. 팔십 평생 차려주는 밥만 드셨던 분이다.

아버지 역시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힘드셨다.

누군가는 엄마와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그런 엄마와 아버지에게 S는 고명딸이었다.

S도 언젠가 닥칠 일이라 생각은 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될 줄은 몰랐다.

하기야 누가 자신의 부모가 쓰러지고 돌봐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살겠는가.

그저 언젠가 그럴 수도 있겠지 정도에서 생각은 멈추기 마련 아닌가,

구체적인 상상 자체가 고역이고 불온이니.        

 

엄마는 기저귀를 찼다.

혼자서 화장실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기저귀를 갈며 만난 늙은 엄마. 아무리 딸이지만 S에게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저귀를 가는 일보단 백배 나은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도 자신의 기저귀를 가는 S에게 어쩔 줄 몰라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맑은 날엔 기저귀를 가는 s에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울먹이셨다.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S는 휴가를 내며 버텼지만 결국 하던 일을 그만뒀다.

돈을 번다해도 간병인에게 쓰는 비용으로 거의 사용되었다. 다행인 건 일을 그만두고도 아쉽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었던 차, 용케 이유가 적당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병든 엄마 곁을 지키는 거라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갔다.

S는 욱신거리는 손목과 허리에 서서히 적응해 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차려주는 밥상을 바라지 않으셨고 스스로 식사를 챙기셨다.

그리고 엄마는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또 비관했다.

더 나아지고 싶어서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엄마 옆에 있는데 모두 불행했다.

그런 S를 두고 보다 주변에서 사람을 들여라 조언했다. 여러 사정을 따져 요양 보호사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S는 하루에 4시간 잠시 쉴 틈이 생겼다.

S는 걷기 시작했다.                        

회사로 가는 길,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장 보러 가는 길. S의 걷기는 항상 이유가 있었고 목적지가 있었다.

그러나 생전 처음 아무런 이유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걷기가 시작됐다.

S는 잠시 쉬어갈 적당한 방법을 몰랐기에 그저 걸었다. 무작정 직진을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가 지나가는데 S는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모든 정신이 빠져나간 듯 그저 기계적으로 발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다행히 멈춰야 할 때는 알아차려 멈췄다 가다 멈췄다 가다 반복을 했다. 등에서 땀이 나고 걷는데 익숙하지 않은 발이 살짝 아픈 것 도 같았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직진만 하다 보니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며칠 걷다 보니 늘어선 가로수가 보이고 주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의 간식거리를 챙겼다.

또 며칠이 지났을 땐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좋을 일이 있는지 서로 장난을 치며 까르륵거리다 지나가는 젊은이들, 한껏 차려입고 외출을 하는 부인,

일이 바쁜지 걸음걸이가 잰 아저씨.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가고 있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S는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는 불안과 울분이 올라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같은 길을 나설 때 S는 문득 휠체어에 앉은 무표정한 엄마의 얼굴과 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의 잔뜩 굽은 등이 떠올랐다. 순간 늙고 병든 부모님이 한없이 불쌍하고 이렇게 살다 죽는 게 인생이라면 허망하고 또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S는 자신의 마음이 지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늙고 병든 부모를 바라보는 일이 결국 자신의 늙음을 바라보는 일이라 힘들었다는 걸.     


두어 달이 지나자 S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래야 집 주변이지만 걸어보지 못한 길이 많았다.

대로에서 뒷골목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 보니 주택들이 나란했다.

개발되지 않은 주택 촌이라 낡았지만 집집마다 앞을 쓸고 가꾸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아파트촌을 둘러 뒷동산으로 올라 동네를 크게 돌 수 있는 산책길도 걸었다.

작은 뒷산이지만 계절은 제대로 찾아와 단풍으로 하는 눈 호강에 감사했다.

그렇게 구경하기에 좋은 곳, 걷기 좋은 곳, 이웃사람들이 보이는 곳, 되는 대로 걸었다.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화가 나고 속이 상해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잠깐이라도 숨통을 트이러 걸었던 동네 길에서 S는 다짐했다.

늙음 앞에 무례하지 않겠다고 서서히 받아들여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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