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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Jul 09. 2021

비린 냄새,  허연 연기속 청춘

종로 피맛골


 좁은 골목에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허연 연기가 자욱하다.

특별히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생선 냄새가 옷에 배는 건 아닐까 잠깐 걱정했다.

비린 걸 좋아만 한다면야 냄새 정도야 문제가 되겠냐먄 나는 비린 건 질색하는 부류였다.

하필 모여도 여기서 모이자고 할까.. 그렇다고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만 선호하는 부류도 아니었다.

찾자면 어디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곳이 있을 텐데 하필 생선 냄새가 등천하는 피맛골이라니..

선배는 그래도 유명한 곳이라며 기어이 우리를 데려가 고갈비에 막걸리를 권했다.


술이라곤 주종을 가리지 않고 한두 잔에 고꾸라지는 나는 역시 막걸리도 ‘아니올시다’였다.

그러나 당시 어느 누구도 나의 주량이 겨우 그 정도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정도 채워졌다 싶으면 게워내고 다시 채우면 또 게워내길 반복해 말짱한 얼굴로 마지막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었으니.


그날도 역시 막걸리 두어 잔에 얼굴은 고구마 색으로 변했다.

술기운에 왁자한 분위기에 평소 먹지 않던 생선구이까지 안주로 먹으며 나는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지만 온 몸에 알코올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민폐로 기록될 사건이 발발하기 직전, 뛰쳐나왔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일을 해결할 장소까지 가기엔 너무 임박해서 일어난 것 같다.

생선을 굽는 주인장을 돌아 그나마 한적하다고 믿고 싶은 골목 언저리에 방금 지나간 술자리의 흔적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두어 번을 들락거릴 즈음 자리는 파했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겠다.


당시 모임을 함께 하던 동기들은 세상 고민을 모두 지고 사는 듯 심각했고 선배들은 동기들보다 배는 심각하고 우울해 보였다. 짐작컨대 그날도 아마 별일 없이 심각했을 게다.

그러나 들락거리며 내속의 흔적들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던 나는 대체 왜 그렇게 심각했는지,

다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아! 그럼에도 피맛골은 어딘가 만날 장소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소로 선정됐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 피맛골 골목이 사라진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뉴스가 있었지 하며 다시 한번 깜빡할 즈음 그때 피맛골은 정말 눈에서 사라졌다.

비린내 나는 허연 연기가 오르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속만 쓰렸던 기억이 가득한 골목길이 사라졌다.

그런데 피맛골의 허연 연기 속에 왜 그렇게 심각했는지, 다시 돌아가면 심각하지 않을 수 있을지,

심각하지 않으면 어쩔 건지 질문은 사라지질 않는다.             


옛 기억을 더듬어 떠올린다고 행복해지거나 즐거운 마음만 생기는 건 아니다.

후회와 자책은 무용지물이라지만 난 쉽게도 그때 왜 그랬을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저렇게 했으면 달라졌을 걸 습관처럼 되뇐다.

그렇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도 없을 것 같다.

의지박약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는 게 그렇게 쉽게 방향이 달라지는 일이 아니더라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서.


가끔 예전에 살던 곳, 다니던 학교를 슬금슬금 찾아가 주변 골목길을 돌며 옛 기억을 살려보려 할 때가 있다.

이제 나도 웬만큼 살았는지 예전 기억을 살려줄 길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아니 거의 사라져 찾아가도 어디가 어딘지 헤매다 돌아와야 할 판이다.

무어라도 사라지면 쓸쓸하고 허전하니 남아 있을 때 어느 골목, 어느 길이라도 더 걸어둬야겠다.      


골목 구석구석, 낡은 보도블록 사이사이 내가 남긴 흔적 탓에 불쾌했을 이름 모를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에게 지금이나마 심심한 감사와 죄송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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