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외롭게 글을 쓸 때
가장 살아 있다고 느꼈다.
인생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든다. 한 아이의 아버지(어머니)가 되는 경험은 가히 감정의 혁명이었고, 나는 어린이면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상처와 고통을 내 몫만큼 받아들였다. 인간관계의 단절,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나의 시행착오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늘어나는 질병의 가짓수 등이 그런 것들이다. 점점 나는 내가 취약한 상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유익하다. 한층 깊은 내면에 있는 억압된 영역으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17)
- 데이비드 브룩스, <사람을 안다는 것>
오래전에 몽테뉴가 통찰했듯이, 다른 사람의 지식으로는 박식해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지혜로는 지혜로워질 수 없다. 이해하려면 경험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공감 능력을 높이려면 그저 인생의 온갖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 내가 아는, 진실로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시련에 부서지지 않았다. 그들은 인생의 시련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목적으로 심리적 방어기제를 강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대하게 방어기제를 모두 내팽개쳤다. 그들은 자기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어서 인생의 시련이 더욱 활개 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고통의 순간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또 그들과 연결되었다.
- 데이비드 브룩스, <사람을 안다는 것>
내가 참되게 알고 싶어 하게 된 신과 인간이라는 존재의 원천, 그 기원에 대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 경이로운 이유에 대하여.
홀로 있어도 충만할 수 있는 까닭을 알게 되고,
그것을 내가 믿어 가게 됨에 대하여.
대답은 간단해졌다. 마치 몇십 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붙들고 울듯이, 어쩌면 그것보다 더 간절히 그리워하며 내 밖에서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으나 잊은 줄만 알았던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나 자신. 사람은 신의 모상을 닮게 만들어졌으니 그 나 자신 속에 사랑의 원천인 신의 모습이 들어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그리움이 있을까.
- 공지영,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Amo: Volo ut sis."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에 적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훗날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다시 적은 그 말, 사랑은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기를 원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이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내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 ...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 신형철, <인생의 역사>
글을 쓰며 깨달았다.
글은 내가 쓰지만, 때로는 내가 쓴 이 글이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끌림과 열린 길을 이제 나는 두려움 없이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을.
그 길이 더 깊고 더 좁은 삶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