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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aumazein Jul 15. 2024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은 것이 나 자신

낯선 도시에서 홀로 길을 잃었는데

막상 너무도 자유롭고 홀가분했던 경험이 있나요?

나는 그걸 한번 겪어본 뒤로 단비같은 여행에 대한 갈망이 늘 있다.


상에는 아름다운 나라 너무 많고

꿈꾸는 여행지가 내게 아직 많은데,

그중에서도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성찰, 여행, 그저 걷기, 순례의 길로 많이 다녀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길이 그곳이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서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하나는,

길을 걸으며 세계 각국에서 오는 사람들과 편견 없이 만나고,

서로의 나라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를 함께 나누며 축제처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걷다 보면 나를 짓누르고 있던 허욕을 버리게 되고 결국은 진짜 '나'를 만난다고 하는 이유에서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일까,

과연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모든 이미지들을 빼고 나면 무엇이 진짜 나일까.

과연 순도 100프로 나라는 것이 존재할까.'


이 같은 고민은 별 생각없이 살다가도

내 안에 남아 문득 때때로 피어났고,

이 글의 연재도 그런 닭과 사유에서 출발하였다.

내 안에 지독한 모순과 위선과 대견과 의연까지

모두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싶은 욕구에서.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처음 걸을 때 바리바리 쌌던 짐을 하나씩 둘씩 버리게 된다고 한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이 정도는 가져가야지'하고 짊어졌던 짐도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결국은 버리고

러다 보면 길의 끝에서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은 것만이 나 자신'이라고 하는데

하나씩 둘씩 버리고 씻어내게 되는 것은

실제적인 짐과 물리적인 체도 있겠지만,

마음과 생각과 영혼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과 너에게 관심이 많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도 충만하고,

왁자지껄 한바탕도 좋아하고,

감정의 동도 즐기는 나이지만,

변함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홀로 고요한 시간이다.


"항상 그랬지.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있고, 네 안에 있어.

그것과 그것이 만나는 그 순간을 나는 좋아해."


BEHOLDING

너무나 바쁘게 시간에 쫓겨사는라 그냥 보고(see)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Be)하며 잠시 붙잡고(Hold) 판단 없이 바라보는 시간.


내게로 집중하는 시간.

괴로움도 기쁨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시간.

어리석음도 모자람도 그대로 바라봐주는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떨치는 시간.

다시 영(0)으로 가는 시간.


내 영혼에 담을 수 있는 것 말고는 모두 내 것이 아닌 것들. 손님처럼, 선물처럼 귀하게 오고, 다시 가는 것들. 

서글프지만 바람같아서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다.



이제는 살다 보면 어떤 일도 생길 수 있악한 인생것을 알게 된 나이이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을 피할 수 없진 세상 알고 있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것 한 가지가 있다.

'괜찮아, 다 잃어도 나에겐 내가 있어.'


그렇게 내가 의지하는 또 다른 나는 사실 실제의 내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때로 나를 짓누르는 두려움에 무너지고 싶지 않은 내가 기대고 싶은 어떤 웅혼한 신적인 존재일 수도 있고,

또는 그저 아주 나쁘게는 끝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삶이 나에게 무참하게 안위를 물어올 때마다 나는 작정 찮다고 나를 포장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늘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파다.

그러다 보면 헐벗은 내 영혼과 마주하게 되고,

결국 게 남아있는 것은  하나였다.


어렸을 땐 그 넘의 '자신감' 가지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고,

커서는 그 넘의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물리도록 들었다.

말한다고 생겨나는 건가, 그것들이. 내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것 역시 요즘 떠오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자기감!'


그저 남과 다른 나만의 나를 내가 아는 것.

달라서 좋고, 달라서 싫기도 하지만 그게 나임을 아는 것.

그리고 그런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되는 것.

내가 나로 사는 것.

그보다 중요하고 행복한 게 있을까.


그 '자기감'은 자신을 더 강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자존감과 자신감까지 키워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어려운 일 후에도 결국 나로 다시 돌아오는 의연함은 확연히 심어준다.



"평소 우리는 수천 가지의 무게에 눌려 있다. 과거, 잃어버린 행복, 실연, 현재 이뤄야 할 것 등.

그리고 무엇보다 자아라는 무게에 눌려 있다.

자아가 무거운 이유는 지금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때문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만든 그것 말이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때문에 자아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정작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나의 여러 이미지와 함께 살고 있다.

시장에서 팔릴만한 상품처럼 나 자신을 포장하겠다는 자아와 결별함으로써 내가 얻는 것이 뭐냐고?

그것은 자유, 무중력, 그리고 영원하다는 것..."

-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자아와 결별하고

수영을 할 때 물 위에 뜨듯이 자아로부터 가볍게 해방되라!

우리는 힘이 세고, 강하고, 무거워야 단단해지고 이긴다 생각하지만,

실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가벼울 때 우리는 승패로부터도,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나는 얼마나 많은, 되고 싶은 나의 이미지들에 갇혀 살았나.

어릴 적엔 남들 눈에 좋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착하게 행동하고

누구 마음에 들려고 없는 나를 끄집어내느라 애쓰기도 했다.


이제는 해도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요.' 하고 물러나게 된다.

나 아닌 나로 호감 받아봤자 얼마 가지도 못하고

그 예쁨은 진짜 내가 아니라서 결국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말고 우리에겐 각자 '서로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결국 내가 나임을 제대로 드러냈을 때 누군가 나를 알아채준다.

그 알아봐줌과 알아채줌이 기쁨이다.

그런 앎을 아는 이들과 행불행나누며 살고 싶다.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에 그 사람이, 그리고 내가 소중한 이유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성과 유한성 때문이다.

사는 동안 그 고유함을 잃지 않으며

우리가 함께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임을 기억하며

너는 너로서, 나는 나로서.

서로 사랑하며 서로 더불어.



짧은 연재글을 쓰면서도 내가 나에게 씌우는 이미지에 갇혀 쓰기 싫어 애쓰고 머물다 보니 오래 걸리었다.

습관처럼 누가 보기에 멋진 글을 남기려고 하고 있진 않나

몇번씩 검열한다.


인생은 항상 좋은 것 하나만 주진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생이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처럼 버겁다 느껴졌을 때,

이대로 말고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때,

하나씩 둘씩 내려놓기 시작했고,

그 덕에 자유를 얻고! 외로움도 얻었다.


그러나 그 또한 뒤집으면 힘이 된다.

고독력.

고독할 용기.

외로움을 잘 견디는 내가 좋기도 하고 때론 싫기도 하다.


때론 감미롭고 때론 처절한 고독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풍요로운 생활도 아니고, 넘쳐나는 인맥도 아니었다.

분명한 건, 이 시간이 나로 하여금 쓰게 하였고,

삶을 더 생생하게 들여다보게 하였고,

그 들여다봄 참 나답게 살게 해주었 것은

분명히 고백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할 수는 없었지만,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지는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 미루야마 겐지


언젠가 서 있을지 모를 빛나는 별 들판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사실 하나씩 둘씩 벗어놓고 진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길이 아니더라도, 어떤 길이라도.

길의 끝에서 만날 마지막의 마지막에 나 자신이 궁금해지고

그 때의 내가 만나는 세계는 또 어떠할지 부풀고 기대된다.

 

내 존재의 원천은
고요와 침잠,
자유와 낯섦에 있다.
언제나 햇빛처럼 행복하고
바다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어코
돈이나 권력, 지식, 혹은 타인을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고
'본래적 자아'를 동력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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