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못하는 독일 할머니와 한국 아줌마

쾰른의 일상여행자 1화. (2018.1.25.)

by 김은형

쾰른행 기차를 브뤼셀 미디 역에서 탔다. 할머니 한분이 커다란 트렁크와 여행 가방을 들고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와 내게 자신이 올라탄 기차가 맞냐고 묻는다. 맞다. 그런데 시트 넘버가 없다. 할머니는 영어를 못한단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독일어도 못한다. 더군다나 할머니가 한국어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그런데 쉬지 않고 계속 묻는다.

난 그녀의 티켓을 조금 더 찬찬히 계속 훑어본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트 넘버 정보가 없다. 결국 할머니에게 말한다.

“ 그냥 일단 앉으세요. 씻씻 (sit sit ) ”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나한테 또 질문한다.

“ 유어 허스번드 굳? ”

하하하하 “ 노 굳”

그제서야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웃으며

“ 마이 허스번드 노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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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대퇴골에 문제가 생겨서 브뤼셀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할아버지가 함께 와서 돌봐 주지 않았고, 퇴원하는 자신을 데리러 오지도 않았다는 거다. 큰 아들이 내 동갑인데, 손자가 컴퓨터로 기차 티켓을 끊어 보내줘서 기차를 탔다고 했다.


75세의 할머니는 참 유쾌하시다. 자신의 가족들 사진과 친구들 사진까지 꺼내서 열심히 독일어로 말한다. 난 그저 감으로 할머니에게 호응한다.


우린 서로 모국어에 참 능하다. 할머니는 독일어로 말하고, 나는 한국말로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했다. 나는 이미 할머니 가족의 숫자까지 모두 파악했다. 할머니네 집엔 할아버지와 귀여운 한 마리의 커다란 불독과 새끼 두 마리, 애완용 돼지 한마리가 함께 산다.


아들은 독일 은행의 CEO이고, 며느리는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그들 가족의 뉴욕여행은 자랑거리다. 딸도 아름답고 사위도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손주는 너무 귀엽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엔 예쁜 할머니에게 친절했고 사랑이 넘쳤다. 할머니의 자랑인 젊은 시절 흑백사진은 마치 독일의 역사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할머니의 허락을 받아 아이패드의 사진을 다시 찍었다. 할머니는 요즘 노인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이패드는 학교에서 수업용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집과 음식들, 환한 웃음의 가족들이 있는 할머니의 삶은 매우 즐거워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백하신 말...


“ 난 피아니스트였어.”


난 당장에 할머니를 따라 프랑크프르트로 떠나고 싶어진다. 할머니 댁까지 가방도 들어다 드리고, 할머니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할머니가 구운 쿠키와 차를 마시며 느긋한 오후 한나절을 보내고 싶어진다.


할머니와 나는 따듯한 포옹과 비주로 작별을 했다.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하며 나도 따라 눈물이 글썽인다. 어쩌면 우린 언젠가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사람들일까? 서로의 등을 토닥거리며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다시 말씀하신다.

“ 그런데 난 언제, 어디서 내려야할까? ”

승무원에게 할머니 내리는 곳을 알려드리라고 신신당부하고, 할머니 시계로 11시 30분쯤에 기차가 멈추면 내리시면 된다고 다시 꼼꼼히 설명해드리며 난 할머니와 진짜 바이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두 분의 할머니의 안내로 쾰른 역에 도착. 또 새로운 땅, 새로운 도시 쾰른의 땅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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