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남자들이 자꾸만 막 따라와!
19살에 대학생이 되었잖아?
엄마가 입학 선물로 아이보리색 랜드로버 하고 가방을 세트로 사주셨고. 친척들이 주신 축하 용돈으로는 브랜드 옷을 좀 사 입었지. 그때 유행한 브랜드가 톰보이, 빼빼로네, 그린 에이지, 움베르토 세베리와 논노, 페페, 리바이스와 죠다쉬 등의 블루진 브랜드 등도 있었어.
난 지금도 미니스커트를 무지 좋아하지만, 그땐 그냥 그게 교복이다 시피 했지. 내가 특히 좋아했던 미니스커트는 빼빼로네의 빨간색 스트라이프 진 미니스커트와 리바이스 청 스커트였어! 그때 우리 학교 패셔니스타 3대 천왕이 있었는데, 그중 여왕은 나 혼자였어! 왜? 잘난척해서 불편해? 금방 익숙해질 거야! 싫음 말고. 하지만 그냥 그게 내 천성이야! 아님 전생에 진짜 왕족이었던가. 하하하하
지금도 미니스커트에 벨트를 해서 단정하게 차려입고 아침 7시 전에 학교에 도착해서 혼자 빈 강의실에서 무료하게 역사책을 들추고 있을 때의 창쾌한 아침 공기가 느껴져. 삶의 많은 순간 중에도 아주 디테일한 감각들이 세포에 각인되는 순간들이 있지. 어쩌면 그런 순간에 난 충만해지고 행복한 존재 그 자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중략하고, 그래서 대학생이 되니까 남자들이 자꾸만 막 따라오는 거야! 얼마나 예뻤겠어? 조그만 신입생이 깜찍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통통거리며 다니니까 말이지. 어떤 날은 한 번에 두 명씩이나 같이 찾아왔더라? 정말 이 이야기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금은형 연애기에 기록될 만한 날이잖아? 드디어 같은 날, 한 번에 두 명씩 남자들이 막 쫓아왔으니까 말이야.
서양사 수업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금은형을 누가 찾아왔다는 거야.
우리 과 남자애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막 휘파람 불고 난리를 내더라? 어떤 애는 어이없게도 날 비난까지 하는 거야! 내가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 없다고 앙큼을 떨었다는 거야! 남자애들이 날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야유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얼떨떨했어. 특히 올챙이의 태도와 눈빛은 나를 정말 약 오르게 만들었어! 그 친구는 평소에 내 눈이 개구리처럼 크다고 나를 ‘개구리’ 또는 ‘와룡 여사’라고 부르는 친구였어! 나도 화가 나서 그 친구를 ‘올챙이’라고 불렀지. 그런데 그 친구는 키도 크고 몸집도 아주 다부진 상남자 스타일의 아이였어. 사실 올챙이란 별명은 어울리지 않았지. 어쨌든 나는 나를 찾는 남자애들을 만나러 강의실 복도로 나갔지. 남자애들이 두 명이 있더라고. 몇 학년인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
“제가 김은형인데, 누구세요? 무슨 일로? ”
조금 키가 작은 남자애가 먼저 말했어.
“나 기억나지 않아요?”
“네,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진짜? 어제 사범대학 앞 잔디밭에서 누워있었죠?”
“아! 네.. 책 읽고 있었어요.”
“ 내가 그 옆을 지나갔는데, 기억나지 않는다고?”
“ 네, 그런데요?”
“ 어떻게 여자가 잔디밭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가 있죠?”
“ 잔디밭에 누워서 책을 읽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 여자가 아무 데나 누워있으면 안 된다는 것 모르나?”
“ 그런데 몇 학년이세요? 선배라도 처음 보는 사이니까 존대를 했으면 좋겠어요.”
“ 여자가 치마 입고 학교 잔디밭에 누워서 책 읽었으면서?”
그때 올챙이를 비롯한 우리 과 남자애들이 복도로 몰려나와서 나하고 두 남학생을 둘러싸더라? 특히 나를 맨날 개구리라고 놀리던 천하에 싸가지 올챙이 진이가 말했어.
“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 여자는 잔디밭에 누워서 책 읽으면 감옥 가야 하나? ”
“ 그건 아니지만, 여자가 어떻게 스커트를 입고 잔디밭에 훌렁훌렁 누워요? 우리 학교 명예에 먹칠하는 거지.”
싸가지 올챙이 진이가 또 나서며 내게 물었다.
“ 금 은형! 너 어제 치마 입었었어? 테니스 수업 때문에 반바지 입고 왔다고 했잖아?”
“ 응! 치마 반바지 맞아! ”
“ 우리 과 여학생한테 신경 써주고 학교 명예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좀 잘 보고 다니면 좋겠네. 뭐 더 할 말 있어요? ”
어휴... 저 올챙이처럼 뺀질뺀질하던 진이가 웬일로 내 편을 다 들어주지? 맨날 교수님들한테 질문 많이 해서 수업 늦게 끝나게 한다고 눈에 가시라고 공격했으면서? 이제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개구리 되려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함께 온 키 큰 남학생도 끼어들었어.
“ 아 그것뿐이 아니라고요. ”
“ 제가 또 뭘 잘못했나요?”
“ 야! 금 은형! 넌 빠져있어! 또 뭔데? 금은형이 또 뭘 잘못했지?”
약간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느낌? 정의롭고 단순한 영이도 숨이 거칠어지는 것이 보이고, 무조건 화가 올라온다는 분노조절 장애 정배의 찰랑거리는 앞 단발 뒷 단발머리도 파도처럼 찰랑찰랑 출렁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어.
“ 아니, 여학생이 학생회관 의자에 올라가서 짜장면을 먹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거예요? 그것도 스커트 입고? ”
아~~~~~~~ 짜장면....
우리의 점심은 대체로 학생회관에서 수타면으로 뽑아내는 한 그룻에 250원짜리 짜장면이었어. 그런데 그것도 꽤 호사스러운 점심이었지. 함께 다니는 친구들 중 점심을 그냥 굶는 친구들도 많았고 짜장면을 한 그릇 사서 둘이 나눠먹는 일쯤은 다반사였어 그땐 다들 어려웠잖아? 특히 나는 단짝 친구와 늘 짜장 한 그릇을 나눠 먹었어. 그런데 수타 짜장은 길어도 너무 길었어. 한 가닥이 거의 반 그릇 정도는 되는 길이라고 할까? 그다지 깔끔한 성격은 아닌 나였지만, 내입에 들어갔던 짜장면 가닥이 다시 짜장면 그릇으로 놓이고 그것이 다시 친구 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만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서서 먹으면 짜장면 한 가닥 길이 정도는 한 번에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날은 유독 짜장면이 길고 굵었어. 그래서 일어선 김에 짜장면을 젓가락에 쥔 상태로 신발을 벗고 의자 위로 올라서서 선채로 먹었던 거야. 난 짜장면을 그렇게 먹는 것이 죄가 되거나 응징을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아마도 날 찾아온 남자애들은 내가 학생회관에서 짜장면 먹는 장면을 봤던 것이 틀림없었어. 점심시간이면 몇 백 명이 모이는 곳이니까. 그때 의자에서 내려올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긴 했었지.
“ 금 은형 너 진짜 의자 위에 올라가서 짜장면 먹었어?”
“ 응. 짜장면이 너무 길어서 ”
“ 그런데 이제 보니 우리 과 여학생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 나? ”
“ 금 은형 넌 좀 가만히 좀 있어! ”
“ 왜? 나보고 뭐라고 하러 온 거잖아!”
“ 야! 개구리! 와룡 여사! 넌 좀 가만히 좀 있으라고! 이 사람들이 너 좋아한다고 하잖아!”
그때 우리 과 남자애들이 모르는 남자애들 두 명을 좀 더 가까이 에워싸기 시작했어. 분노조절 장애 정배의 단발머리는 더 심하게 출렁거리며 달의 표면처럼 울퉁불퉁한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기 시작했고, 영이의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패턴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 그때 올챙이 진이가 말했어.
“ 그냥 갈래? 아님 한판 뛸래? ”
갑자기 올챙이 진이의 덩치가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처럼 커져 보이더라? 정배도 덩달아 흰색 배꼽 바지를 추켜올리더니
“ 형씨들! 우리 과 여학생 괴롭히지 말고 가시지! 곱게 좋아한다고 말하던가?”
그때 나는 갑자기 그 남자애들 둘에게 “ 진짜 우리 과 남자애들 말처럼 나를 좋아해요? ” 라고 묻고 싶어지더라? 호기심이 폭발하는거야! 왜냐면 남자가 날 쫓아왔다고 미루어 짐작되는 상황이 처음이었거든.
그런데 올챙이 진이가 틈을 주지 않더라.
“ 금 은형은 나하고 과커플. CC 된 지 한 달 됐으니까 신경 끄고 가시지. ”
아니... 저런 싸가지가? 내가 언제 저하고 커플이 되었다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어쨌든 두 남학생은 갑자기 무지 당황하며 말했어.
“ 아.. 죄송합니다. 암튼 여자 친구 단속 잘하세요. ”
“ 야! 금 은형! 너도 이 사람들한테 사과해! 스커트 입고 잔디에 눕거나 의자에 올라가지 말고”
“ 뭐라고? 내가 왜? 그리고 올챙이 너는 또 뭐야? 네가 내 보호자야? 그리고 우리가 과 커플이라고? 도대체 언제부터? ”
“ 사람들 앞에서 뽀뽀라도 해야 해? 내가 너 주려고 오늘 양산도 사 왔단 말이야! ”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더라. 암튼 나를 교육시키러 왔던 다른 과 남자애들은 우리 과 남자애들의 서슬에 눌려 돌아갔고, 우리 과 남자애들은 다시 나를 놀리기 시작하는 거야!
“ 야~~ 금 은형! 눈에 가시가 남자도 찾아오네? 올챙이 여자 친구 개구리? 과커플? 하하하하”
난 정말 억울해서 울기 직전이었어. 하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그럴 수도 없더라?
“ 올챙이 너! 나한테 선물하려고 레이스 양산 사 왔다며? 내놔봐! ”
“ 야! 그건 영희 주려고 사 온 거야! 영희랑 나랑 지난주 축제 전야제부터 사귀기 시작했거든. 과커플 몰라?”
“ 뭐라고? ”
“ 암튼 그 놈들 쫓아줬잖아! 네가 오늘 튀김 하고 라면 사야겠다. 또 다른 놈들이 괴롭히면 이야기해! 우리가 처리해줄게”
어이없어서 숨이 차올랐어. 하지만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저 얄미운 올챙이 진이의 입을 다물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야! 너나 나 좀 괴롭히지 마! 이 올챙이야! 와룡 여사라고도 부르지 말고. 기분나빠 죽을 것 같아.”
“ 그러게. 누가 너보고 개구리처럼 그렇게 눈이 크라고 했어? 나는 영희처럼 적당히 큰 눈이 좋아. 사람 말도 못 알아듣고 큰 눈만 끔뻑이는 개구리는 싫다고. ”
그때 당시 내가 열 받아서 숨 막혀 죽지 않은 것은, 아마도 부모님들이 내 심장의 대동맥과 폐동맥은 물론 좌심실 우심실 설계를 튼튼하게 해서 낳아주신 덕분일 거야!
그런데 졸업하고 3년 후인가? 싸가지 올챙이 진이가 연락을 했더라?
대전에 일이 있어서 왔는데 만나자는 것이었어! 무척 반가웠지만 마침 나는 선약이 있어서 만날 수가 없었지. 그리고 며칠 후에 직장으로 올챙이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어. 양산이었어. 그것도 아이보리색 레이스 양산!
“ 금은형! 우리 대학생 때 너에게 주고 싶어서 샀던 양산이었는데, 그날 너 치마 입고 짜장면 의자 위에서 먹었다고 쫓아온 남자애들 때문에 너무 질투 나고 약 올라서 영희 선물이라고 거짓말 했어. 이미 알다시피 영희하고는 축제 때 우연히 뽀뽀는 했지만, 사귄 것은 아니야. 몇 년 동안 내 책상 속에 넣어두었던 양산이야! 너한테 꼭 주고 싶었어! 늦었지만.....”
비닐 포장이 누렇게 낡아있었지만, 벗기고 나니 여전히 참한 아이보리색 레이스가 환하게 펼쳐졌어.
아~~~~ 그랬구나! 사람 말도 못 알아듣는 개구리란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그때야 비로소 올챙이 진이는 항상 나를 놀리거나 나의 호위무사처럼 굴었던 것이 생각났어.
MT 가서 내가 벌에 쏘였을 때 손바닥에서 벌침을 뽑아준 것도 올챙이 진이었고, 나에게 달려오는 수탉 날개를 잡아 던진 것도 올챙이 진이었어. 새벽 열차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졸다가 눈을 떴을 때도 나는 올챙이 진이의 어깨에 침을 흘리고 있었지. 그런데도 진이는 환하게 펼쳐진 레이스 양산처럼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
19살, 대학생이 되어서 남자들이 자꾸만 막 따라오면 뭐하겠어? 왕눈이 개구리처럼 큰 눈만 끔뻑거리고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말이지. 결국 올챙이 진이는 나에게 레이스 양산만 남기고 하룻밤만에 사람 말을 금방 알아들었던 하숙집 주인 딸과 연인이 되었대.
수많은 남자들이 자꾸만 막 따라와도 눈만 크면 별 수 없다는 걸, 이젠 너도 알겠지?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