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그와 나의 존재가 기똥차게 하나로 뒤엉켰다고 해야 할까
심장이 멈춘다는 것. 온몸이 얼어붙는다는 것. 우주가 멈춘다는 것.
표현은 모두 달라도 영육에 지진과 분열이 일어나면서 섬광이 튀고 불꽃이 타오르며 죽을 것 같은 갈망과 그리움의 시작을 예고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표현이야!
정말 죽을 뻔했어.
왜?
너무 좋아서.
아니, 너무 너무 그리워서.
아마도 나는 나를 찾자마자 다시 우주 너머로 잃어버렸던 걸거야.
6월의 오대산은 신록이 가득했어. 7월 장마가 이미 계곡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싱싱한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까? 나의 스무 살도 상원사를 오르며 입었던 파란색 라코스떼 피케 셔츠보다 더 푸르게 피어나고 있었지.
20살, 대학 2학년 여름도 3대의 버스가 나란히 유적답사를 위해 대관령으로 달려가고 있었어. 오대산을 가는 중이었어. 오대산엔 월정사와 상원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두 개나 있지.
대학 2학년쯤 되니까 유적답사도 내 스타일이 생기더라고, 나는 특히 사찰의 천정 양식과 장식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고, 소규모 전통 건축물을 좋아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나는 서로 다른 코스로 유적지를 돌아다녔지. 그런데 오대산 상원사를 갔던 날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어. 마침 그날 내가 입었던 코발트블루 T셔츠가 너무 눈에 띈 거지. 상원사의 조그만 전통 화장실을 구경하다가 교수님한테 먼저 잡혀서 강의를 들어야 했어.
상원사는 아주 재미있는 세조 관련 전설이 많이 담긴 곳이야. 세조의 유물도 많이 남아있고.
그날 주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상원사 문수동자상 전설은 정말 재미있었어.
“ 제군들! 저기 보이는 문수보살 옆에 앉은 동자상 보이지? 저게 바로 문수동자인데,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자신이 왕이 되고 나서 피부병을 앓기 시작했는데, 백약이 소용없었어.
결국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러 상원사까지 오게 되었는데, 가마 안에서 너무 덥고 땀이 나서 계곡물소리를 듣자 씻고 싶어 졌지. 그래서 신하들을 모두 물러나게 한 뒤 계곡물에 들어가니 등을 밀고 싶은 거야!
그때 저쪽 계곡 위에서 꼬마 아이가 통통통 튀어 오는 거야, 그래서 아이에게 자신의 등을 좀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아이가 임금님 몸이 피부병 투성임을 소문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대는 짐의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 했더니 아이도
‘그대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 하더니 아이가 펑하고 사라졌대.
바로 상원사로 올라갔더니,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었던 거지. 그래서 세조가 문수 동자를 모시도록 했다는 이야기야. 지금도 여기 상원사엔 세조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어. 자 다들 빨리 둘러보고 버스로 내려와! 특히 금은형 자네는 다른 곳 가지 말고 반드시 대웅전 문수동자와 문수보살을 보고 오도록. “
그 말씀을 들으니 별로 관심도 없었던 문수보살과 문수동자가 궁금해지잖아? 그래서 법당으로 올라갔지.
문수동자가 정말 머리를 양 갈래로 말아 올리고 너무너무 귀엽게 문수보살 옆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법당에 아무도 없더라고. 그래서 대웅전 천정 양식을 보려고 신발을 벗지 않고 무릎으로 기어서 법당에 몸을 반쯤 집어넣는데 뭔가 번쩍하는 거야! 너무 놀라서 잽싸게 몸을 빼서 바라보니, 정말 기절할 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스님이 고개를 들면서 반질반질한 머리가 햇빛에 번쩍하고 빛났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그토록 아름다워도 되는 거야?
그토록 잘생기고 그윽해도 되는 거냐고?
법당 안에 스님이 한분 머리를 숙이고 일을 하시다가, 내가 기어들어가니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 것인데......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아직까지 그토록 잘생기고 그윽한 분위기의 남자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어!
박진영을 좋아하는 것도 팩트고, 정우성을 좋아하는 것도 팩트이지만, 그것은 단지 깝죽거리고 노는 것에 불과해!
난 완전히 얼어붙었어! 심장이 멈췄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정지해 버렸다고!
내가 어두운 법당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에게 놀라서 헉! 하고 소리치자
스님도 내 반응에 놀라서 헉! 하고 놀랐어.
그리고 다시 내가 스님이 너무 잘생겨서 헉! 하고 놀라자
스님도 또 내 반응에 놀라서 헉! 하고 놀랐지.
그 반응에 내가 다시 헉! 하고 놀라자
스님도 또 헉! 하고 놀랐고
다시 내가 헉! 하고 되받아 놀라자 그때서야 스님은 정신이 든 듯,
아님 내가 놀라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씽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거야.
스님과 서로 놀람을 주고받는 동안 우린 단 한 번도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어.
아마 시간이 좀 더 길었더라면, 내가 머리를 삭발했던가, 스님이 승복을 벗었겠지.
그 아름다운 스님의 그윽한 강렬함은 아직도 내 세포를 떨게 해!
그건 일반적인 설렘과는 또 다른 경지야!
그냥 그는 나였고, 나는 그였어!
내가 그냥 그 아름다운 스님의 그윽함 속에 빨려 들어가 흡수되어 버렸다고.
아니 그와 나의 존재가 하나로 뒤엉켰다고 해야 할까?
단 한순간에 그와 나는 완벽하게 교감을 나눴어!
서로의 우주 속을 유영하며 아주 명확하게 서로를 직시하고 느꼈어!
우린 그냥 서로의 존재였어.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우린 바로 그것, 그 자체였어!
움직일 수 없었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몸이 꼼짝없이 얼어붙어 있었어.
매트릭스 영화에서 총알을 잡는 순간의 멈춤 알지? 바로 그런 거야! 양자역학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단지 그 한순간의 엉킴만으로도 초여름 더위에도 사람은 얼음이 될 수 있음을 처음 알았어.
마음이 우리 삶에 어떤 마술을 부릴 수 있는지를...
스님이 고개를 숙이자 나도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난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어. 마음속에서 기쁨과 환희가 저절로 차올라오면서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지닌 존재로 변형된 거야! 바로 그때 누가 내 코발트블루 T셔츠를 잡아당겼어!
“ 금은형! 자네 때문에 버스가 출발을 못하고 있잖아. 월정사도 들려서 가려면 늦는다고!”
스님 법명이라도 여쭤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학과장 교수님에게 끌려서 버스로 강제 탑승해야 했어. 정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했지.
내 삶엔 어쩌면 장미의 이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게 문제야! 이름조차도 모르면서 스치고 지나온 사람들 덕분에 나의 연애기가 이토록 길어지는 것이지.
어쨌든 이름도 모르는 스님의 얼굴을 잊지 않고 나만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눈을 감고 내 머리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어.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바람둥이 성희의 큰 목소리가 들리더라?
“야! 그 스님 너무너무 잘생기지 않았냐? 진짜 처음 봤어. 그렇게 잘생긴 남자는. 내가 쳐다봤더니 스님이 나한테 웃어주더라? 진짜 진짜 잘 생겼더라. 내 남자 친구는 찌질해.”
썩을 것! 정말 어이없다. 네가 우주적 사랑의 차원을 알아? 단 한 번에 그와 교감하고 서로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느냐고? 맨날 미팅만 다니고 연애질이나 하는 너란 애가 감히 스님을 잘생겼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불경스러워! 진짜 얄미워 죽을 것 같다. 감히 네가 스님을 봤고, 스님이 너에게 웃어줬다고? 정말 나는 너를 진심 때려주고 싶다. 욕해주고 싶다. 닥치라고 말하고 싶다. 제발 입 좀 닥칠래?
성희 때문에 갑자기 스님과 나의 완벽했던 사랑의 우주적 결정체에 금이 가는 느낌이랄까? 핑크빛이 약간 바래는 느낌이랄까? 암튼
“고약하고 나쁜 지집애!”
하지만 월정사에 내려와서도 나는 혼자 충만한 기쁨에 히죽거리며 교수님에게 들키지 않도록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앉아있는 곳에 몸을 숨기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어.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옆에 앉아있던 아줌마들이 그런다?
“ 상원사는 갔다 왔어?”
“ 그럼! 새벽에 먼저 다녀왔지. 아휴~ 상원사에 그 인물 좋은 스님 있잖아! 볼수록 너무 인물이 좋아! 스님 되기엔 너무 아까워. 인물이 좀 좋아? 그런데 사연을 들어보니 참 짠하더라고.”
“왜? 뭐가 짠해? “
“고등학교 때 선생 때문에 출가했대. ”
“ 엉? 왜? 아이고... 선생이 악질이었나?”
“ 아니 그게 아니고, 스님이 인물이 너무 출중하니까 아마 여자 선생이 짝사랑을 했나 봐. 자기 가정도 있는 유부녀였는데, 그냥 폭 빠졌었나 봐. 그런데 그때 당시 어린 스님이 꿈쩍을 하지 않으니까 그냥 자살했다지? 그래서 스님이 그 길로 절로 들어왔다나 봐. ”
“ 엉? 아이고... 별일이 다 있네.. 어디서 들었어? ”
“ 스님이 인물이 워낙 좋으니까 여자 신도들도 들썩들썩했을 거 아냐? 그래서 주지 스님이 여자 신도들 불러서 앉혀 놓고 이야기했대. 스님 정진하는데 삿된 짓들 하지 말라고. 스님은 여자를 가장 큰 마장으로 보고 수행정진하신다며....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 어린애가? 유부녀 선생이 어린 자기한테 상사병이 걸려 들이대다 죽기까지 했으니... ”
“ 팔자가 사나운 거지. 여자도 남자도 인물이 너무 반반하면 그래서 복 박아지가 없다니까. ”
“ 맞아! 그냥 우리처럼 평범한 것이 최고야! 우린 신랑들이 그런 걸로 속을 썩이진 않잖아?”
“ 호호호호 그런가? 우리 아들이 그런 꼴 당해서 중이 된다면 진짜 못 볼 것 같아.”
“ 아휴.... 아빠 닮았으면 그런 걱정할 일 없어! 홍홍홍 ”
아줌마들 때문에 갑자기 스님과 나의 완벽했던 사랑의 우주적 결정체에 금이 가는 느낌이랄까? 핑크빛이 약간 바래는 느낌이랄까? 암튼
“ 고약하고 나쁜 아줌마들(지집애들)!”
스님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 어린 소년이 감당해야만 했을 감정의 소용돌이와 감당할 수 없었던 현실의 비극! 그는 스님으로 변형된 존재가 되어 어떤 경계를 넘고 있었을까?
오대산을 떠난 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스님이 그리웠고, 일기장에서 그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하지만 상원사로 그를 찾아가지는 않았어.
왜냐고? 아름답고 어린 소년의 삶의 무게에 너무 깊이 공감했던 걸까?
아님 스님과 다시 우주적 교감을 나눌 확률에 자신이 없었던 걸까?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때 당시 나는 차비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어!
부모님한테 잘생긴 스님에게 고백하러 간다고 말할 용기까지는 없더라고.
스님이 차라리 원빈처럼 탤런트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정우성도 한 수 배워가야 할 그윽한 분위기의 얼굴인데......
그래서 나는 그리움을 어떻게 견뎠냐고?
간신히 간신히 서정주의 <신록>이란 시를 암송하며 버텼지.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 중략 -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기찬’이란 단어에서 오는 사랑의 파워와 기똥찬 포착이 상원사 스님과 내가 나눈
그 순간의 완벽한 교감을 제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어!
마치 스님과 나의 사랑의 고리를 이어주는 범 우주적 연기론적 염불 같았다고나 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래서? 어쩔 건데? 하하하
진짜야!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니까!
(그 아름다운 얼굴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