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1967년 3월 2일생들의 사랑
“ 1967년 3월 2일생, 21세! 나하고 같은 날 태어난 우리학교 여학생한테 함부로 하지 마! ”
라고 외치는 남자애가 불쑥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움이자 일종의 신묘함이었어! 나와 똑같은 날 태어난 남자애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썼다는 이유로 조용히 경찰에게 취조 받던 아이가 강력계 형사들 책상 위에 뛰어 올라 우렁차게 외쳐대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었어! 알고 보니 우리 대학 신문사 학생기자인데, 나처럼 경찰서에 강제 연행되어 온 학생 중 한 명이었어. 도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던 걸까? 말해줘! 사실을 말해줘! 하필이면 잡범들이 모여드는 경찰서 강력계 유치장에서 이런 놀라운 만남을 주선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1987년, 전두환 집권 이후 정권타도를 외치는 학생들이 수시로 사라졌다 돌아오고 돌아왔다 사라지곤 하던 시절이었어. 나는 총장실을 점거해서 농성하던 친구들 도시락을 싸다주고 새벽에 하숙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경찰서에 연행되어 전주 경찰서 강력계 유치장에 갇혔는데, 총장실 점거 시 교수님 한분이 학생들과의 몸싸움 중 각목에 머리를 맞아서 부상을 입었기에 폭력사태의 주범들이라 강력 형사계로 연행한다는 것이었어.
우리가 갇힌 유치장엔 먼저 체포된 성폭행 범도 함께 있었는데, 그 붉고 커다란 입술과 강렬한 회색 눈빛은 모든 순간 내 얼굴에 집중되어 있어 나를 얼음처럼 굳게 만들면서 내가 그의 사냥감임을 아주 명확히 말해주고 있었지. 내 일생 중 남성?에게 그토록 강렬하고 몰입도 높은 눈길을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야! 나는 구석에 앉아서 구토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몇 번씩이나 참아야했어. 심지어 양은 도시락에 담긴 꽁보리밥에 노랑 단무지를 먹을 때에도 그 사람은 절대로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 나는 지금도 그 사람처럼 잘생긴 얼굴에 입술이 크고 두껍고 붉은 남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구토감이 올라오는데 아마도 그때 느꼈던 두려움과 불편한 감정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 일거야.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나봐? 출장에서 돌아온 강력계 형사과장님이 유치장에 갇힌 흉악범들 사이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위태로운 나를 발견하곤 소리쳤어!
“ 야! 니들 다 미쳤어? 저런 어린 여자애를 저런 흉악범들하고 같이 쳐 넣으면 어떡해? 강력계 유치장에서 사고 났다는 신문기사 나는 꼴 보고 싶어? 잠도 못자고 일하고 다 짤리고 싶냐고? 당장 저 여학생 꺼내서 내 옆자리에 의자에 앉혀! 그리고 넌 조그만 여자애가 왜 거기 들어가 있어? 데모 좀 작작해! 너 이름이 뭐야? 금은형? 야야 금은형! 나도 너만 한 딸이 있는데,.. 부모님들 속 좀 작작 썩여라. 얼른 나와! 얼른!”
알고 보니 형사 과장님 딸도 대학생이었더라고. 나를 보니 마치 자신의 딸 같은 어린애가 악질 성폭행 범 앞에 먹잇감으로 있는 것 같아서 화가 더 났었다고 하시더라구. 덕분에 나는 밤을 꼬박 세우고 경찰서에 잡혀 와서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형사과장님 책상에 엎드리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버렸어.
취조를 위해 부르는 형사님의 목소리에 깨어 이형사님 책상 앞에 앉으니 맞은편에서 조용해 보이는 남학생이 다른 형사님에게 취조를 받고 있는 것이 보이더라고. 우린 각각 다른 형사들에게 취조 받는 과정에서 몇 번인가 의미 없는 눈길이 마주치곤 했어. 다비드 같은 곱슬머리에 호리호리하고 큰 키에 요즘 아이돌 가수처럼 미소년의 느낌을 가진 친구였어. 형사님의 다그치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학교에 저렇게 잘생긴 친구도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어. 형사님과 대화 내용을 언뜻 들어보니 그 친구는 강력계 단골손님이더라고. 휴교령이 내려질 정도로 우리 학교는 학내 시위가 전국에서 가장 심한 학교였는데, 그때마다 경찰에 연행 되어 와서 형사들과 맞장을 뜨는 용감하거나 무모하거나... 암튼 자기 철학과 시국관이 분명한 학생이었더라고. 그래서였을까? 형사님이 엄청 거칠게 그 친구를 다루더라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시국에 취조 중 형사님 말씀이
“ 너 제2의 박종철 되고 싶어? 박종철처럼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뉴스에 나오고 싶냐고 ?”
완전 어이가 없어 죽을 뻔했어. 그 시대 최고의 핫 토픽이었음은 물론 역사를 바꾸는 사건이 된 엄중한 죽엄을 그렇게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때 시국이야말로 박종철의 고문사에 대해 전국에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곧 이어 이한열까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 중이었는데 정말 어이없는 말이었지. 그래서 내가 취조를 받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그 형사를 향해 외쳤어.
“ 차라리 욕을 하고 싶으면 개새○ 씨팔○이라고 하세요. 제 2의 박종철이라뇨? ”
순간 10여명의 형사가 10여명의 범죄자를 취조하며 지르는 고함과 범죄자들의 거친 항변으로 시장판보다 더 시끄럽던 형사계 사무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면서 일시에 멈췄지. 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어.
“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것도 세상의 악을 바로잡는다는 형사님이 자기 목숨 걸고 민주화를 위해 투신한 학생에게 고문치사를 이야기해요? 제2의 박종철이라니요? 말씀 당장 취소하고 우리학교 그 남학생에게 사과하세요. ”
그때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용ㅎ고 아이돌처럼 생긴 남학생이 취조용 타자기가 놓인 책상 위로 몸을 날리면서 외쳤다.
“ 1967년 3월 2일생, 21세! 나하고 같은 날 태어난 우리학교 여학생한테 함부로 하지 마! 차라리 나한테 더 심하게 대하라구. 저 여학생은 데모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어. 그냥 친구들을 도운 것뿐이라고. 저 여학생은 데모하는 광장에는 맨날 나오지만 데모 서클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다고, 총장실 점거할 때도 저 여학생은 없었고 나중에 우리 배고플까봐 도시락만 싸가지고 왔다고. 그러니까 내보내! 나랑 생일이 같으니까 내가 저 여학생 몫까지 살면 될 거 아냐? 저 여학생은 소설 쓰는 학생작가지 데모대가 아니라구 ”
헉~~~ 쟤는 처음부터 내 취조 내용을 모두 듣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나를 알고 있구나.... 그런데 내가 작가라고? 어머나~~~~ 학보사에 ‘봄바람’이란 단편소설을 기고한 사실을 어찌 알았지? 심지어 내가 매일 학교 천마광장에 나가 얼쩡거리는 것 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나는 강력계 형사에게 취조 받는 피고인에서 마치 약간의 핑크빛 따듯함으로 가득한 낭만적인 연애를 시작한 아가씨처럼 설레임 모드가 되었고 훈방 조치되기까지 3박4일 동안 동년동일생 학보사 기자는 마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굴었다.
홍등가 살인사건으로 강력계 사무실에 참고인으로 조사받으러 온 불과 중학생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매춘녀들에게 욕설로 일관하는 형사님들을 향해
“ 나한테도 저들과 똑같이 개같은○ 씨발○이라고 하세요. 왜 나한테는 금은형이라고 부르고 저들한테는 이름 아닌 욕설로 부르죠? 그들이 살인을 했나요? 어린애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포주를 잡아서 심문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나한테도 저들과 똑같이 개 같은○이라고 해봐요. 이 추위에 얇은 점퍼 하나 입고 떨고 있는 애들이 딱하지도 않냐구요. ”
“ 우리학교 여학생 말 안 들려? 이래서 내가 형사님들한테 반말하는 거야. 당신들이 존대 받고 싶으면 학생과 저 사람들 먼저 존중하면 나도 존댓말 쓸거라구. 똑같은 사람이니까 존중해달라구 ”
1967년 3월 2일 동년동일생 어린 현장범들이 기고만장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강력계 형사들은 점점 더 양순한 말투로 변해갔음은 물론 석방되어 나올 즈음 나를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돌봐주신 형사과장님이 말씀하셨어.
“ 금은형! 4일 동안 이곳에서 배운 것이 많지? 이제 데모대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로 나가서 세상을 바꿔봐. 데모해서 이런 곳에 자주 잡혀오면 사회에서 힘을 쓸 수가 없게 된다구. 내말 알아들었냐? 그리고 내가 금은형 자네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딱 한 가지만 말할께! 학보사 기자하고는 절대 연애하지 마! 결혼해서도 수틀리면 식탁위에 올라가서 땡깡부린다. 알겠지? 저 놈 말고는 다 괜찮아. 아니면 좀 철들면 길 좀 들여서 연애 하던가. 남자 키 크고 얼굴 잘생긴 것만 보면 않되. 알겠지? 내가 금은형 자네 딸 같아서 하는 말이야. ”
바로 그때 동년동일생 남학생이 형사과장님 책상을 향해서 마치 우리보고 들으라는 듯 말했다.
“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더니... 내가 뭐가 어때서 그래요? 저두 예의 차릴 때는 매너있는 사람이에요. 형사님들이 나름 애쓰는 학생들을 죄인 취급만 하니까 그러는거지. 나도 족보있는 집 자손이라구요. ”
그때 오빠가 나를 데리러 왔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동년동일생 남학생의 이름도 묻지 못한 채 오빠의 2톤 트럭 조수석에 앉아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갈 때까지 깊고 어두운 터널에 빠지듯 잠이 들고 말았어. 눈을 뜨니 핑크빛 설레임도 신기루 같은 따듯함도 모두 사라지고 부모님의 엄한 꾸중과 족쇄령이 내려져서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길고 긴 겨울을 집에 갇힌 채 우울하게 보내야만 했어. 새해가 밝고, 개나리가 피고 광장에 학생들이 모여들어도 두 번 다시 나는 동년동일생 남학생을 볼 수가 없었지.
삶의 용기란 아마도 그런 때 필요한 것인지도 몰라.
“이름이 뭐에요?” 라고 물을 용기...
그래서 내게 따뜻한 사람과 함께 삶을 영위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