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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16. 2019

39. 카페사장에게 행복을 주는 손님들

<카페사장에게 행복을 주는 손님들>


추우니까, 미세먼지가 많으니까, 비 오니까, 바람 부니까- 날씨를 핑계로 손님이 없는 상황을 이해해본다. 여전히 비어있는 옆 상가를 바라보며, 조금만 걸어 나가도 넘쳐나는 '임대' 플랜카드를 바라본다. 나도 임대계약 2년,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해봐야겠다. 회사 사람들에게 나 잘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괜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꿔본다. 한참을 혼자 있다가 내가 끄적거려놓은 메모를 발견한다. 그동안 카페에 온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를 기록해놓은 메모다.



1. 날씨가 궁금한 손님

50대 중후반의 웃음이 매력적인 손님 네 분. 


손님들은 요새의 기술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한다.

그러다 한 분이 휴대폰을 꺼내고 큰 소리로 말한다.

"내일의 날씨가 어떻게 되나요?"

휴대폰은 상냥하지만 조금은 딱딱한 기계음으로 말해준다.

"구름이 조금 끼고 비가 올 예정입니다. 우산 잊지 마세요"

손님은 화창한 창 밖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더한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런데 잠시 뒤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기계음이 들린다.

"저는 진실만을 말하는 걸요."

카페 안 여기저기서 피식,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그날 결국 병아리 눈물만큼의 비가 왔다.




2. 걷는 소리가 안 들리는 손님(feat. 다크템플러)

20대 중후반의 바닐라라떼를 좋아하는 손님 한 분.


나는 조용한 카페를 둘러보다 냉장고 정리를 시작한다.

재료들 유통기한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냉장고에 성에가 꼈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냉장고 청소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뒤에서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으아아악!"

손님의 면전을 대고 소리를 지르고,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입구에서 '딸랑' 소리도 안 들렸는데! 기척도 없었는데! 발걸음 소리도 안 들렸는데!

손님은 이런 나를 보고 빵 터져버린다. 나도 민망하면서도, 웃긴 이 상황에 웃어버린다. 빵!

손님한테 행주를 안 던져서 참 다행이다.




3. 태풍을 함께 이겨낸 손님들

처음 와본 카페에서 노동을 한 손님 세 분.


비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구름이 가득 끼어있었다.

오후 2시밖에 안됐는데도 밖이 어두워서, 조명이 밝게 느껴졌다.

마른하늘에 번개가 번쩍번쩍 치더니, 무지막지하게 바람이 분다.

바람으로 카페의 유리문이 쾅! 하고 열렸다.

유리창에 자잘한 돌멩이들이 팍! 하고 부딪힌다.

손님 셋, 그리고 나. 우리는 다같이 소리쳤다. "어마맛!!!!"

엄청난 양의 모래, 나뭇가지, 어딘가 나뒹굴었던 쓰레기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다들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날리고 있다. 나는 뒷머리를 질끈 묶어서 앞머리만 바람에 팔랑팔랑 거렸다.

손님 두 분은 앞문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나는 밖에 내놓은 배너를 가게 안으로 들고 온다.

다른 한 손님은 내가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문을 잠근다.

양쪽문을 다 잠그고 나서, 우리는 서로를 번갈아본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 통한 것처럼 미친 듯이 웃는다.

온갖 쓰레기들이 들어와서 카페는 엉망진창이 됐지만, 그냥 마냥 웃긴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회사로,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던 일상. 그런 일상에서 이제는 손님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손님들도 매일 달랐고, 손님들이 이야기하는 주제도 매번 달랐다. 똑같다는 안정감에서, 다르다는 불안정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똑같지 않은 하루, 매번 다른 하루에서 전에 없던 '재미'가 있다. 삶을 살아가는 진짜 '재미'가!


오늘도 애매한 인간의 카페를 방문해주신 손님 여러분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도 행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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