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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06. 2019

31. 자신을 축소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다.

<자신을 축소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다.>


1. 외장하드보다 못한 애매한 인간

회사동기 중 '정PD님'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정PD님은 음악과 영화에 아주 미친 사람이다. 점심시간마다 특유의 감각으로 음악을 선곡해서 들려주곤 했다. 10곡이고 20곡이고 좋다고 대답할 때까지 들려준다. 정PD님이 추천한 곡들은 하나같이 난해해서 따라가기 어렵다. 좋은 곡이 한 번씩 있긴 했는데 어쩌다 하나였다. 하여튼 정PD님이 추천해주신 주옥같은 노래가 많은 도움이 됐다. 카페에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신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정PD님은 동기 중 유일하게 나의 브런치를 보는 구독자다. 어쩌다가 글 하나를 공유한 적 있는데, 브런치 속 내 정체를 들켜서 꾸준히 봐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 정PD님이 이상한 말을 하신다. "난 너를 정말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네가 쓴 글들을 보니까 현실의 너보다 더 못나고, 낮은 사람으로 묘사한 것 같아. 생각해보면 다들 생각만 하지 실행에 못 옮기는 것들 다 했잖아. 공공기관 다녀서 직장생활도 해보고, 석사에 박사도 해보고, 다들 로망이라는 카페도 차려보고. 남들은 하나씩만 하기도 벅찬데 넌 다했잖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너 스스로를 낮추지 마."


정말 그런가? 예전의 나는 분명 달랐다. 회사 다니면서 난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나 아니면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괜히 불안했다. 모든 업무를 다 내가 맡아서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특히 인사이동으로 인해 내가 팀에서 가장 오래 남은 팀원이 되자 증상이 더 심해졌다. 모든 업무 히스토리나 문서들을 장악하려고 했다. 팀원들이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와서 물어보길 바랬다. 갑작스럽게 퇴사를 결정할 때도 팀원들이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애매한 씨 없으면 어떻게 해요." 팀원들이 나에게 의지한다는 것, 나 없으면 안 되겠다는 말들이 기분 좋게 들렸다. 막상 퇴사하고 나니 걱정도 됐다. 이제 처리 못하고 남아있는 일들은 어떻게 하나 불안해서 잠이 안 왔다. 혼자 걱정하며 상상도 해본다.


'나 없으면 다들 허둥대겠지. 나한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물어보겠지. 과감하게 핸드폰은 꺼둬야지.'


그러나 휴대폰은 잠잠했다. 이메일도 고요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비어있는 메일함을 계속 들락날락하며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없어도 회사는 전과 똑같이 굴러갔다. 내가 남겨놓고 간 외장하드. 그 외장하드는 나의 모든 것을 대체했다. 나보다 그 외장하드가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카페를 오픈했다. 주변에서는 내게 '카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주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게재하고 나서는 '작가님'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겉만 요란한 빈 수레 같았다. 카페 사장님이라고 해서 장사가 잘되는 대박집 사장님도 아니었고, 글을 쓰고는 있지만 그저 일기 끄적이듯이 쓰는 나부랭이 었다. 겉으로는 씩씩해 보여도 속은 소심하고, 모나고, 이기적이고도 초라한 작은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런 내 마음이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나 보다. 정PD님의 말에 괜히 내 실체를 들킨 것 같아 더 부끄러워졌다. 



2. 자신을 축소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카페 휴무일에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가보니 책 제목들만 봐도 눈물 난다. '당신의 마음을 안아줄게요', '걱정 많은 당신이 씩씩하게 사는 법',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나 자신을 사랑해줘',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등등- 다 내 이야기 같다. 다 읽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자존감', '나를 사랑하는 법'을 다룬 책 두어 권을 샀다. 책을 읽고 나면 초라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다 읽고 나면 나 자신을 잘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오로지 나만을 위한 책을 샀다. 


하지만 의외의 책에서 위로받았다. 집구석 어딘가에서 굴러다녔던 책 하나, 알랭 드 보통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 2015년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기념으로 나온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이 공예작품들을 보며 감상평을 짤막하게 적은 책이다. 어디서 선물을 받았었나, 언젠가 출장길에 샀던가, 아니면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을 꼭 한 번은 읽어보라고 해서 사뒀던가 기억이 안 난다. 표지가 예쁘고 책 안에도 공예작품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나와있어 좋다. 사진을 훑어보고, 알랭 드 보통이 남긴 작품에 대한 감상평도 찬찬히 읽어본다. 사실 반쯤 넘긴 게 더 많지만.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만한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지금의 내가 볼걸 알고 쓴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기억에 남을만한 문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우리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세계관으로는 매우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극히 미미하고, 완전히 사라져도 무탈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없어도 세계는 전과 똑같이 굴러갈 것이다.

때로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바라보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된다.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히,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절박하고 불안한(그리고 매우 정상적인) 느낌이 진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을 축소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이는 사랑의 행위다. 
-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 / 알랭 드 보통 -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대단히,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에 나만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뭐라도 돼야 하는 사람이라 이것저것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통받고 있었다. 빨리 뭐라도 돼야 한다는 절박하고 불안한 느낌, 스트레스, 압박감. 스스로 먼저 내려놓았다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내려놓지 못해서 퇴사 후가 더 힘들었다. 나보다 외장하드를 먼저 찾는 사람들을 보자 슬펐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한심했다.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말해준다. 자신을 축소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이것은 자신을 향한 사랑의 행위라고. 스스로 낮춰서 보니 이전에 시달리던 '뭐라도 돼야 한다'는 절박하고 불안한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스스로 낮춰서 보니 이전에 안보이던 내 모습들이 보인다. 외면은 가꿨을지 모르나 내면은 철딱서니 없는 내 모습. 그 모습에서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나를 바꾸어준다. 나에게 개선의 여지를 준다. 이것저것 화려한 껍데기로 가려진 나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던 나와 실제의 나의 괴리감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난 이런 사람이다. 이게 원래 나다. 그러니 창피하지 않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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