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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14. 2019

15. 물 알레르기

어쩔 수 없음에서 느껴지는 생명력

<물 알레르기>


나는 손을 더럽게 쓰는 편이다. 하루 종일 먼지 쌓이고 더러운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리고 그 손으로 탕비실에 가서 과자를 주섬 주섬 주워 먹었다. 먹기 전에는 고민이 많다. '아 손 더러운데..' 그것도 몇 초뿐. 그대로 과자를 집어 입으로 직행한다. 씻으러 화장실 가기도 귀찮고, 가는 시간도 아깝다. 그나마 깨끗하게 먹으려고 물티슈로 가끔 손을 닦기는 하는데, 정작 물티슈도 깨끗한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는 매일 손이 쓰리다. 카페는 청결이 중요하다 보니 손을 자주 씻게 된다. 커피 내리기 전, 커피를 내리고 나서, 뭐 물건을 하나 집고 나서도 꼭 손을 씻는다. 물로 씻고, 세정제로 씻고, 하루에 몇 번이고 씻는다. 손은 매일 건조하다. 자기 전 핸드크림, 비싼 수분크림을 듬뿍 발라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간호사 친구도 손이 아프다고 했던 것 같다.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봐야겠다.


"그거 답 없어. 나는 물 알레르기까지 생겼어."


물 알레르기? 난생처음 들어본다. 새우, 오이 알레르기 같은 건 들어봐도 물 알레르기라니? 간호사는 직업 특성상 알코올로 손을 계속 닦는다고 한다. 몇 번이고 알코올로 손을 닦고, 또 닦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은 가장 건조하고, 가장 쓰라린 부위가 됐다. 눈가 주름을 펴주는 아이크림, 비싼 달팽이 크림 다 손에 발라봤지만 소용이 없었단다. 어느 날은 너무 쓰라리고 피부가 따끔거려서 보니 물 알레르기가 올라왔다고- 현재는 약도 먹고 있다고 한다. 친구는 '그래도 어쩔 수 없지'라고 덧붙였다. 나는 왜 저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가 뭉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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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을 위해 매 순간 손을 씻고, 하루에도 수십 번 설거지를 하다 보니 거칠해진 손을 본다. 새삼 내가 하는 일이 바뀌었구나 체감한다. 예전에는 손목, 두 번째 손가락, 그리고 허리가 가장 아팠다. 키보드를 두들기는데 손목의 힘이 은근히 들어가더라. 마우스를 클릭하는 두 번째 손가락도 참 고생 많았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나를 지탱해주던 허리도 고생했다. 그런데 이제는 쓰는 부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최근에는 제법 팔뚝에 근육이 붙었다. 장비를 옮기고, 식재료를 나르고 옮기다 보니 힘이 세졌나 보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익숙해졌다. 서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발바닥도 단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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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라는 한 마디가 뭉클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어쩔 수 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동력이 되어있음을 느낀다.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이 빨리 흐르길 기다리는, 죽어있던 내가 아니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느라 배불뚝이 외계인 체형이 된 나, 그런 나를 자책하는 내가 아니다.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일어나는 신체적인 변화가 새롭다. 나에게서 생명력이 느껴진다.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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