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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Jun 28. 2019

봄밤 감상법

드라마 봄밤을 보는 시간

요즘 너도나도 깐느 영화제 수상 영화의 감상평을 올리는 것이 모두의 출근도장 같은 것이 되어 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요즘 잠잠하게 방송 중인 멜로드라마인 '봄밤'을 열심히 시청 중이다. 모두들 계급의식과 높은 완성도와 해학적 메타포에 심취하고 있지만 왠지 나는 그다지 자극적인 에피소드도 심각한 상징도 없는 (그래서 별반 해석도 필요치 않은) 드라마 봄밤에 심취하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들도 예상하다시피 여기엔 눈꼽만큼의 색다른 파격도 없이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향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도 라면을 끓이다가, 쓸데없는 책상 정리를 하면서 계속 이 드라마에 눈길을 주게 된다. 그냥 나의 심상에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진공상태나 어떤 지평을 계속 존중해 주면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는 듯, 무심한 분위기가 나에겐 오히려 대화에 힘주지 않는 누군가와 만나는 듯해서 불편하지 않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단지 내가 나이를 먹었거나.







새로울 것이 없다고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름 봄밤의 감상법을 나름대로 쥐어 짜내서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럴듯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그만이다.


1 줄곧 등장하는 먹방 씬

 


원래 한국 드라마는 식사 장면이 자주 등장하긴 한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유달스럽게 먹는 장면에 눈길이 더 자주 가고 더 자주 비치는 것 같다. 데이터로 회당 먹는 씬 비율을 산출해 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주인공들이 진지한 핵심 관계를 발전시키는 씬에서는 먹는 장면이 등장하네? 단순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드라마는 먹는 식당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긴 한데, 여기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눈길이나 유달리 따뜻한 분위기는 나만의 주관적인 시점인가? 회사원들의 비즈니스 공간인 일식집, 연인끼리의 결정적 대화를 나누는 식당, 친구들의 회식 식당, 동료와 수험생들이 시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공간에서의 먹방은 아무래도 눈길이 간다. 감독의 이전 작품 제목을 아예 '술 잘 먹는 예쁜 누나'로 바꿔 부르기도 했는데, 이건 어떤 인간적인 관계들이 무르익는 그 역할 공간을 보여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찌질한 남자들과 멋진 여자들



이 극에 나오는 세 자매를 보고 있으면 자기 가치나 세계관이 뚜렷하다.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그러니 주변 환경에서 자신의 주관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남자들은 주인공 지호를 주변 친구 몇을 제외하곤 대체로 소심하고 찌질하고 속물적이다. 또한 소심하기까지 해서 모두들 공감이나 소통보다는 자기의 현실적 목적을 위해 주변을 이용하기만 한다. 또한 높은 사회적 위치에 앉은 남자들의 꼰대적인 사고방식은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기에 보고 있으면 답답해진다. 이분들의 단선적인, 일방향적인 사고방식들은 그 주변을 힘들고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한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유지호에게 '나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고백을 듣고는 문을 열고 뛰쳐나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 이건 뭐 좋은 장면이다.   

   



3. 독특한 구도와 앵글


풀샷과 니샷이 굉장히 많다. 오래된 프랑스 영화 같기도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촬영이 맛깔나게 좋다. 말 그대로 밤이 많이 등장하는데 감도가 좋은 화면에 자극적인 컬러 없이도 분위기가 편안하다. 연출자는 이전에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이라고 한다. 밀회를 보지 않아서 다시 보고 싶어 진다. 먼 거리에서 풀샷이나 다리 위를 주로 전체적으로 비추는 화면이 많아 무언가 관조적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몇 가지 영화가 떠오른다. 끌로드 를리시 감독의 <남과 여>, 양덕창의 < 하나 그리고 둘> 몇몇 일본 영화들 말이다. 이 영화는 적극적인 개입이 아니라 멀리 컷을 많이 나누지 않고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관조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거기다가 어두운 밤거리가 어둡지 않게 한 가지 색조의 톤으로 깔끔하게 담아내어 우리의 공간들이 아주 편안하고 멋있게 다가온다. 조금 제목처럼 복고적이긴 한데, 그게 참 아날로그나 필름의 카메라 앵글이 생각나게 하는 멋진 분위기가 있다.  




5. 음악 과잉


음악이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건 뭐 뮤직비디오를 드라마 내내 틀어 놓은 것과 같다. 그럭저럭 맬로에서 음악이 감정선을 표현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감안하기는 해도 이건 상당히 노골적인 감정과잉을 유도한다. 아마도 연출자가 드라마 특유의 현실 묘사의 분위기를 피해서 '이건 판타 시야~!'라고 자꾸 되뇌는 것 같다. 음악의 빈번한 감정과잉은 그런데도 크게 불쾌하거나 거북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아무리 감정과잉과 비현실성을 마주 하더라도 어떤 완성도와 섬세함으로 우리의 메마른 정서 결핍을  매만져 준다면 다 용서가 되는 것 같다. 연출자는 드라마에서는 의외적인 현실 묘사와 음악 과잉을 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는데, 이건.. 봄밤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  



4. 주인공들의 이쁨

 

이분이 이렇게 이뻤나?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가 꼭 이 분 때문만은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이건 뭐 피해 갈 수 없이 이 드라마의 본질인 것 같다. 정말 정해인과 한지민의 미모는 이 드라마의 90% 이상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했을, 앞으로 해볼 사랑에 대한 로망에 어떤 본질적인 각인을 만들어 준다. 누군가가 아름다움도 재능이라고 하더니. 아름다움을 연기해 버리다니.. 이 분들. 아마 이분들의 패션이 현재 한국 회사원 룩의 기준점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5. 조연들의 연기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일반적인 드라마의 공식처럼 이쁨과 연기력이 잘 만나서 어우러져 있다. 이건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역시 연출자의 캐릭터를 잡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석 역의 김준환의 연기도 상당히 이전에 볼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같다. 딱히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마냥 호감이 가지도 않지만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자기 애착은 강한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동생 역의 주민경, 친구들 등은 억지나 감정과잉 없이 자연스럽게 이 드라마의 사실성을 높여 준다. 이건 역시 연출가의 캐릭터 잡는 실력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6. PPL


어김없이 등장하는 PPL. 뭐 이건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친구들이 만나서 정말 노골적으로 광고 멘트를 날린다. '아, 이건 바로 먹어도 맛있네!' 뭐 이런 광고적인 멘트를 노골적으로 일상 대화에서 날린다! @@ 나는 이걸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 어쩐다 날카롭게 분석할 눈이 없다. 다만 오히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광고를 광고답게 만들어 준다. 차라리 PPL 숨은 광고 찾기 놀이를 해 보는 게 어떨까? 그러니 좀 제작비 충당을 위해서 집어넣은 PPL정도는 관대하게 눈감아 주자. 우리야 말로 실제 현실 생활에서 PPL을 잘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딘지 모르게 일본풍의 영화 장면 같기도 하다. 실제로 이렇게 생긴 약사가 근무한다면..


쓰고 보니 봄밤 입덕을 위해 작정하고 뛰우는 글처럼 보이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이 드라마는 예술이 아니기에 우리 모두의 일상과 판타시와 맞닿아, 우리는 관대한 마음으로 조금은 심심한 소일거리 속에서 이 드라마에 눈길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는 영화들도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또한 이런 통속적 드라마의 완성도도 훌륭하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대상들이 재현됨을 보며 나의 삶을 조금 다시금 관조하고 채색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도 필요하지만 조금 담담한 이런 식의 일상 재현도 필요하다. <봄밤>도 예술작품 못지않게 또 다른 방식으로 재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사랑이 모든 것의 결론은 아닐진대, 그럼에도 우리를 거북하게 하는 것들, 현실적 위계와 경직성 속에서 우리의 관계 속 감정의 봄밤을 되살린 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훈훈하다.




PS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의 착각인지 이상하게 이 드라마는 문예적 드라마로 이름을 날렸던 황인뢰 감독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 가?'의 향취를 계승하고 있는 것 같다. 우연하게도 수십 년 전 가수 활동을 하다가 처음 그 드라마에 등장한 김창완은 황인뢰에 의해서 자기만의 캐릭터의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 <샴푸의 요정>, 80년대 시티팝, 서울 밤, 근대적인 복고문화 등의 한때 비주류였던 아날로그의 문화가 이제는 수준 높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제대로 완성도의 옷을 입고 구현되고 있는 것을 본다. 우리에겐 우리 스스로를 다시금 돌아보는 시선이 아마도 굳이 예술적이라는 용어를 빌리지 않고서도 회복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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