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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 후르츠> 후기, 소박한 삶이 전하는 메시지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몇 달 전 생을 마감한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인생 후르츠>는, 일본 노부부의 일상을 좇는 다큐멘터리영화다. 90세 쓰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쓰바타 히데코는 마른 몸과 굽은 등을 하고서도 좋은 재료로 밥을 짓고 건강한 디저트를 만든다. 그들이 살아가는 15평 남짓의 집은 건축가인 슈이치가 직접 지었으며, 정원에는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이 영글어가고 있다.


이들이 함께 살아 온 시간은 65년. 그 긴 세월 동안 부부는 가장 자신들다운 삶을 살아왔다. 자연과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쓰바타 부부의 삶을 철학은 이미 온 몸에 배어있다.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아도 철학적 삶을 몸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감동 그 자체다.



1951년, 도쿄대학 제1공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주택공단에 입사해 고조지 뉴타운 계획으로 일본 도시계획학회 이시카와상을 수상한 슈이치. 하지만 고조지 뉴타운은 그의 설계와는 정반대로 지어졌다. 마을에 숲을 남기고 바람길을 놓으려던 슈이치의 계획과는 달리, 개발에 지우친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청년 슈이치는 비인간적인 터가 되어버린 고조지 뉴타운 인근을 되살리겠다는 다짐으로 1천㎡의 땅을 사들인다. 그 위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집을 짓고 나무와 텃밭을 가꿔나간다.


이후, 50년 동안 슈이치와 히데코는 자연과 사람을 중심에 둔 삶을 실천해나간다. 키가 작았던 묘목이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고, 정성스레 키운 120여 가지의 채소와 과일은 이들의 식재료가 된다. 이로써 부부는 자연과 인간이 이어져 있음을 이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텃밭 한 켠에는 새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수반이 있고, 채소와 과일 앞에는 슈이치가 직접 만든 노란 푯말이 꽂혀있다. 이처럼, 동식물과의 대화에 능숙해 보이는 쓰바타 부부는 사람들에게도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데 익숙해있다. 배달원을 위한 감사 인사가 담긴 명패, 마트에서 좋은 식재료를 구매한 후 '잘 먹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손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이들 부부의 삶 곳곳에는 사랑이 물들어 있다. 특별한 애정 행세를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영화를 접한 관객이라면 고스란히 전해 받았을 것이다. 부부가 동행하는 그림, 얼굴이 새겨진 도장을 파서 여기저기에 낙인 찍는 모습은 그저 사랑스럽다. 단 한 번도 남편의 일에 반대한 적 없고, 단 한 번도 편의점에서 식재료를 구매해 본 적 없다는 히데코의 무심한 말 한 몇 마디만으로도 이들 사랑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신스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히데코의 음식들도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구운 생선과 고로케 등의 감자 요리, 고기 조림 등 영양 만점의 반찬과 스트로베리쇼트케이크, 팬케이크, 잼 등 디저트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그녀의 내공은 <인생 후르츠>라는 제목에 힘을 보탠다.


<인생 후르츠>는 극적인 에피소드 없는 노부부의 일상을 훑지만 확고한 철학을 갖춘 영화다.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철학이 아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가치는 자연과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삶이 타인에게는 철학으로 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힘든 여정을 거친 촬영본 위에, 일본 대표 여배우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으로 하여금 깊이가 더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때마다 울컥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생의 끝까지 배우로서 최선을 다 한 모습이 그려져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심심하고 밋밋하게 보일 수 있는 삶이지만, 이 메시지 하나만은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과 인간은 이어져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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