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걸었다

도심에서 많이 지쳐있었던 나는, 시골로 내려온 후 열심히 걸었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눈이 많이 내렸고 적설량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또 걸었다.


모든 생활을 정리하기 전, 나는 꽤 열심히 살았다. 사업가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 열심히 일했던 때도 있었다. 물론,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조롭고 띄엄띄엄했던 업무 환경에 속해 있을 때는 직장 생활에 권태를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다른 쪽에 열정을 바쳤다. 문화 생활, 때떄로 사랑에.


서울 생활의 일단락을 다짐하게 만든 직장은, 내게 권태를 안겨준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직장(과 소속인들)의 문제는 아니다. 나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갔다면 충분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열정을 바칠 만한 직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을 몇 년 동안 오갔던 것이다. 진취적인 삶을 바랐지만, 편한 생활도 좋았다. 게으름과 간사함이라는 놈은 늘 떠나갈 생각을 않더라. 편하게 일 하고, 적당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 그때 당시엔 장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권태는 답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서른이 되기 전 그곳을 나온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그때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나는 그곳에서 무기력하게, 큰 뜻 없이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욕망 가득한 인간인데 말이다.


열아홉살 이후로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집안 형편이 계속좋지 않았던 터라,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방학 때면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파트타이머가 아닌 단기 직원으로 근무해 월급을 벌었다. 부지런히 벌어 학기 중 용돈을 마련했고, 학과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에 대한 욕심보다는 부모에게 부담을 줄 수 없어 목숨 걸고 학점 따내기에 충실했다.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기에 1등의 장학금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학자금대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열정은 사회에 나오면서 더 커졌다. 생계 유지는 물론, 돈을 모아야 했으니까. 서울의 월세는 너무나 비쌌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들을 알아봐야 했다. SKY대학교를 나오지 못해, 대기업에 들어가고자 하는 꿈은 일찌감치 접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 직장을 결정할 때는 돈보다는 내가 원하는 직업과 직무에 기준을 뒀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직업은 기자였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사람을 만나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했기에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직장은 나의 관심사가 아닌 다른 파트에 나를 배치시켰고, 그로 하여금 상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쌓여갔다. 그렇게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기자직은 접었다.


하지만 지금도 온라인 매체에 기고하는 일은 여전히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 따위의 리뷰를 하고 있다. 블로그와 브런치 등의 매체를 활용해 미셀러니 형태의 글도 적고 있다. 나의 경험을 허공에 날려버리지 않기 위한 필사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10년 후 꿈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해오는데, 사실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다. 10년이 아니라, 기력이 닿는 한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 목표다. 다른 거창한 꿈은 바라지도, 정해두지도 않았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장 내일의 상황도 가정할 수 없는 것이 일생일진대, 거창한 목표를 세워 거기에 연연해하고 싶지 않다. 그저 매일, 매 순간 하고 싶은, 혹은 주어지는 경험을 하고 그것을 소중히 기록해나가는 것. 그 실천만이 나의 단기 목표이다.


글이 다른 방향으로 셌는데, 어찌됐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물론, 나의 기준에서). 직장에서의 권태를 느낄 때면, 퇴보되는 것이 싫어 문화 생활을 하고 글쓰기를 하며 결핍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일순간,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물 아홉의 마지막 날, 나는 직장을 관두고 부모가 있는 본가로 거처를 옮겼다.

휴식기를 갖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한동안은 잠만 잤다. 내킬 때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났다. 밥을 먹고 심심하면 TV를 켰다. 서울에서는 TV를 잘 보지 않았는데, 쉬는 동안에는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을 1화부터 최신편까지 다 챙겨봤던 것 같다. 백수의 삶을 제대로 즐겼다.


하지만, 이런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편하긴 했다. 하지만 나의 본성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이곳이 내 고향은 아니었기에, 모든 지리가 낯설었다. 아파트 밖을 나가면 논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건물들이 많지 않아 길이 헷갈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빽빽하게 늘어 선 차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걸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눈보라가 휘날릴 때면, 마스크와 장갑, 패딩으로 무장하고 걸었다. 동산, 무덤가도 올랐다. 그러면서 잠깐의 나태함에서 벗어나 활력을 찾았다.


두 달 간 주어진 백수 생활 동안 내가 한 것이라고는 먹고 걷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와의 관게도 서먹해졌다. 하지만 틈틈이 책은 읽었는데, 그때 한창 경도됐던 소재는 '단순한 삶'이었다.


'심플 라이프'가 한창 유행이던 때였다. 단순한 삶을 위해 불필요한 소비는 물론, 너무 많은 일, 과식 등을 줄이라는 식의 책을 많이 읽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니어링 부부의 책들을 자주 찾았다. 그렇게 나는 욕망에서 벗어난 삶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소소하게 먹고 많이 걸었다. 온전히 내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걷기에 매진했다. 덕분에, 집 근처는 물론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웬만한 지리는 꿰뚫어보게 됐다. 혼자 버스를 타고 먼 곳을 찾아 걷기도 했고,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마을 전역을 돌기도 했다. 많이 걸었던 만큼, 살갗이 많이 타기도 했었다.


걷기의 장점은 복잡한 생각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것과, 신체 건강에도 좋다는 것. 물론, 이 때의 나는 심적 스트레스가 없었기에 걷기 그 자체를 즐겼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며 걷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다음 편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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