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가 인기리에 종영했고, 나는 갓 이별한 상태였다. 서로 아무 관련 없는 두개의 카테고리인 드라마 WWW와 이별의 심리 상태가 함께 뒤엉켜, 나는 불나방 모드로 소개팅 전선에 뛰어들었다.
드라마 WWW가 주었던 자극은 ‘포탈 업계 사람이 멋져보이니 만나야겠다’라는 상당히 1차원적인 것이었다. 주인공 배타미의 욕망엔 계기가 없지만, 내 욕망에는 이전 남자친구보다 더 멋진 사람을 만나고야 말리라는, 그리고 어쩌면 그 남자는 회사 위치도 가까운, 포탈 업종 사람일 수 있겠단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친구 남편(특이사항 N사 엔지니어)으로부터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소개팅 장소를 정할 때 매너 있었고, 일에 대해 자신감 넘쳤고, 구남친과다른 여러 장점들을 많이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외모마저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구릿빛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나는 빨리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들끓는 불나방이었던 나와 달리 그는 침착하고 낮은 분위기였다. 3번을 만나는 동안, 늘 그가 먼저 일어나자고 했던 걸 보면, 그는 내게 반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3번 만났는데 읽씹 잠수가 웬말이냐’며 친구들과 함께 분노했다.
그가 내게 반하지 않았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연애 텐션이 꺼지지 않은 나의 적극적인 언행들, 과도한 이모티콘 남발 등이 부담일 수 있었겠다.
이별한 것도, 그 뒤 맘에 들었던 소개팅이 망한 것도 서러운데, 친한 언니는 ‘이제 회사 직급도 대리니, 대리처럼 연애해’라고 했다. 대리처럼 연애한다는 게 뭐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리처럼 하는 연애,란 없었다.
나의 패착은 내가 사원처럼 열정만 갖고 달려들어서가 아니라,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견디지 않고 재빨리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 점이다.
그렇게 나는 지난 사랑에 대해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가져야 다음 연애를 할 수 있단 결론을 내렸다.
애도 기간을 무사히 보내며 불나방 모드에서 벗어날 무렵, 친구는 ‘그 오빠가 너 호감이긴 했는데, 그때 집에 큰 일이 있었나봐’라는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