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트렌드 모니터링으로 시작한다. 오늘 도착한 관계맺음에 대한 트렌드 리포트는 이러하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치가 줄었으며,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소수의 친밀한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그나마 요즘 시대에는 SNS가 관계 유지에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는 점. 코로나 시대에 사람 만나기란 역시 쉽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올 초 코로나 첫 발발기에 SNS로 관계 맺음을 시도한 적이 있다. 바로 소개팅 어플.
소개팅 어플을 추천한 건 유부녀 친구들이었다. 당연히 그녀들은 어플을 써보지 않았고, 괜찮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에 기반해 나에게 추천했다. 여러모로 그녀들에게나 나에게나 나의 괜찮은 새 연애는 늘 화두이니, 그 기대에 부응해보기로 했다. 소개팅 어플도 컨셉에 맞춰서 다양하게 있는데 스카이피플, 튤립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스카이피플은 일명 스카이를 나온, 사회적으로 나름 인증받은 남자들이 사용하는 어플, 튤립은 서로의 가치관을 미리 매칭해보고 만나는 어플이었다. 나는 철학을 전공한 여자니까 후자를 택했다. 튤립.
튤립 어플이 제시하는 가치관에 대한 질문들에 나의 견해를 표시하고 매칭을 기다리거나, 매칭을 돌려본다. 생각보다 나와 가치관이 꽤 맞는 듯한 사람들도 있었고, 맞지 않을 것 같은데 매칭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성사된 소개팅 어플을 통한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 가치관도 꽤나 일치했고, 집도 근처였다. 근처에서 양꼬치를 먹기로 했다.
그런 순간이 있다. 혹시 저 사람이 소개팅남은 아니겠지, 혹시 저 여자가 소개팅 나온 사람은 아니겠지, 하는 순간. 코를 찌르는 향수냄새에 이 분은 아니시겠지, 했는데 그 분이었다. 튤립 어플에 보이는 작은 얼굴 프로필 사진보다 실물이 더 어려보이고 아이 같았다.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러 가치관들이 딱 들어맞는다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의 그 첫 느낌, 0.1초만에 결정되는 호감보다 중요하진 않은 것이다. 그 날 튤립남과 그렇게 재밌지도 재미없지도 않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서로 자연스럽게 어플 채팅을 끊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있지만 나는 첫 술이 별로였다면 다른 술에 기웃거려보는 케이스다. 소개팅 어플은 분명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관계맺음의 방법이기도 하고, 건너건너는 어플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고도 하지만, 왠지 의심도 많고, 지인의 친구라고 들어야 왠지 더 호감이 생기는 내겐 적합한 만남의 방법은 아니었다. 어플에 체크해나간 가치관이 비슷하다 해도, 실제로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서로의 결이 딱 들어맞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일주일간 소개팅 어플 사용기는 삭제로 끝이 났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얼마 전, 친구가 너랑나랑이라는 새로운 어플을 추천했다. 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