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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09. 2020

5_ 소개팅의 적: 운명이란 환상



"진정한 사랑은 별빛처럼 황금빛(golden)이에요. 사라지거나 닳지 않죠.

하지만 제가 최근에 빠지고 빠져나온 사랑은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었어요. 무엇보다 그 사랑은 붉은색(red)예요.“     



팝아티스트 테일러스위프트가 자신의 앨범 red를 발매하며 진행한 인터뷰이다. 테일러는 현재의 연인인 조알윈을 만나기 전에는 불같고 짧은 연애사로 유명했다.

그러나 올해 발표한 lover 앨범에서 ”I once believed love would be Burning red. But it's golden“의 가사가 담긴 ‘daylight’를 마지막 트랙에 배치했다.      



과거의 나 역시, 그리고 최근까지도, 뜨겁고 운명적인 사랑만을 진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잔잔히 빛나며, 닳지 않는 형태의 사랑을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진지한 얘기를 써보려 한다.      



지난 봄여름 사이에 있었던 짧은 소개팅 성공과 연애, 그리고 이별. 하나의 red love story다.     



당시 난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고, 외모와 종교, 사는 동네까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상상한 사람과 소개팅을 하게 됐다. 소개팅을 해보니 그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둘 다 비슷한 취향의 옷 차림을 했고, 알고 보니 대학 동문이었으며, 시원시원한 성격도 같았다. 그의 대시 방법 역시 직진이어서 우린 빠른 시간에 연인이 됐다.

     


그와 나는 서로를 운명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우린 매일 만나도 아쉬웠고, 서로가 운명이라는 분위기에 도취됐으며, 운명이니 미래를 함께하게 될 거라고 자신들을 세뇌했다.     



하지만 지내보니 그와 나는 객관적 지표인 지역, 종교, 대학 말곤 딱히 닮은 구석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결,이라는 부분에서 크게 달랐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그의 가치는 자주 부딪혔고, 서로의 상식이 달랐으며, 그러하니 쓰는 언어 역시 달랐다. 만나는 동안 서로 다른 가치, 상식, 언어로 상처주기 일쑤였다. 한 여름날 캠프파이어의 불씨가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다.

       


이 러브 스토리를 끝내기 전, 소개팅을 통해 운명적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려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운명을 만났는데 쉽게 헤어질 순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뜨거웠다고, 단순히 객관적 공통점들이 존재한다고 우리가 운명일 순 없었다. 이 연애를 멈춰야 했다.   



소개팅에서 첫 눈에 반하는 일이 어려운 만큼, 첫 눈에 호감이면 운명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있다. 특히 나이, 사회적으로 결혼이란 제도를 염두에 둔 삼십대는 더 그러하다. 이 오만한 단정은 참으로 독약같다.

      


첫 눈에 끌리지 않는다고 그 사람과 자신이 인연이 아닐 거라는 편견, 첫 눈에 호감이라고 해서 상대와 내가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는 오만, 모두 무의미하다. 그저 인연의 흐름을 타고 가보는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사람은 만나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다. 만나보니 더 좋을수도, 더 나쁠수도 있다. 함께 지내보니 좋은 점들이 더 많다면, 그때 운명이란 길로 들어서면 된다.  



소개팅과 연애의 좋은 점은 데이터가 쌓인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내가 red보다는 gold에 가까운 사랑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또 운명적 사랑이 단순히 열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았다. 서로 비슷한 결과 상식을 갖고, 같은 언어를 쓰는 인연. 만나보니 더 좋은 그런 관계. 이 우연한 인연이 운명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다음 소개팅에는 잔잔히, 황금빛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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