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쯤 내가 했던 말이다. 지금은 다르다. 종교는 같으면 좋고, 달라도 존중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소개팅에서 주선자들이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는 종교다. 특히 나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그 남자 성당 다닌단다,하면서 소개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실제로 같은 천주교인과 소개팅을 하면 말할 거리도 많아서 즐거웠고, 전남친과 전전남친 모두 성당을 다녔다.
그런데 소개팅에서, 연인 관계에서 그토록 종교가 중요하다면 나는 왜 그들과 헤어지고 아직도 소개팅에 관한 글을 쓴단 말인가. 답은 종교에 있진 않다.
알랭 드 보통은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은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종교는 연인, 부부가 같은 가치관으로 끈끈히 결합하느냐, 서로 다른 가치관을충분히 견뎌내느냐의 한척도로서 중요하다.
인간은 저마다 여러 가지로 다르다. 종교 외에도 학벌, 집안, 외모, 가치관, 자산 등 서로 다른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가 관계 시작과 유지의 관건이다. 종교를 강요해서 또는 강요당해서 헤어진 관계는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지지 못해서 끝나게 된 것이다.
나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내가 종교적인 부분에 해탈(?)한 데에는 기도에 대한 부작용도 있다. 지난 날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너무 열심히 한 탓에 같은 종교의 남자들을 만나기만 하면 운명이라여겼다. 그때 친한 신부님은 그런 기도는 그만두라 하셨다. 나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는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다분히 성직자스러운 말씀이었지만,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뒤로 종교, 배우자 기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관계 그 자체를 바라보려 한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종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산다. 친한 성당 친구는 교회 다니는 여자와 결혼해서 역시 잘 산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당에 자매님들은 매우 많고, 형제님들은 엄청 적다.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한다. 그러니 나도 소개팅에서 기독교인, 불교인, 무교인을 만나더라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잘 살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