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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Nov 24. 2020

9_ 겨울, 하트시그널2가 떠올라요



하트시그널2를 처음 본 건 올해 초였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누워 여러 영상을 보다 접하게 됐다. 몇 년 전 회사 워크샵에서 여직원들이 TV 앞에 모여앉아 핱시2 마지막 방송을 시청하던 날이 떠올랐다. 아마 나도 그때 핱시2를 접했더라면 분명 함께 몰입했을 것이다. 하트시그널 시즌 중에서 2는 모든 출연자들이 사랑에 있어 적극적이고, 용감하고, 솔직했기 때문에 희대의 명작이 됐다. 그럼에도, 그렇게 했음에도 다 이루어지는 건 로맨스가 아니기에 하트시그널2은 겨울마다 회자된다.           



친구와 추워진 겨울 날씨 얘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하트시그널2 이야기 나다. 친구 남편은 지금도 출연자 임현주의 명대사 “오빠 붕어빵 팥 좋아해요, 슈크림 좋아해요?” “나도 팥, 팥, 팥, 팥”을 흉내 낸다고 한다. 남편이 김현우가 아닌 임현주를 따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런 부부의 삶도 정말 재밌겠다 싶다. 나중에 친구네 붕어빵을 사들고 놀러가 친구 남편에게 “오빠 저도 팥, 팥, 팥, 팥”이라고 인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전엔 소개팅을 마치고 고민상담을 하는 남사친에게 “너, 오영주같아”라고 말했다. 썸을 썸대로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에서 왠지 오영주와, 과거의 내가 교차됐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설레고 좋은 마음과 동시에, 둘 사이를 확인하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일종의 확인사살.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생각하는지, 우리가 계속 함께 갈 수 있는지. 실은 이 고민은 커플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설렘과 사랑의 감정보다 불안과 불신의 생각들이 커지면 관계는 삐거덕대기 시작한다.           



하트시그널 시작부터 김현우의 시선은 오영주 향해 있었다. 영주는 그 점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자신이 확실한지, 자기뿐인지 자꾸 확인하려 했다. 반면 현주는 다른 이에게 향했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왔고, 그 시선이 다시 넘어갔을 때는 침착하게 물러섰다. 그리고 본인에게 다시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임현주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하고 사겼다고 했는데, 그래서 후천적으로 표현하고 기다리는 법을 습득했을지 모른다. 나도 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왔는데, 막상 행동은 현주보다는 영주에 가까웠다. 내가 먼저 좋아해놓고 상대를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았고, 오랜 연인에겐 마음이 식은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불신했다. 아마 그래서 그때 운명이었던 그 인연들을 떠나보냈는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여전히 내가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금은 나도 현주처럼 표현하고 기다려보려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면서.





하트시그널2 방영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영주 편에 서서 임현주를 비난했는데, 요즘 댓글에는 자아가 단단한 현주를 칭찬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댓글 중에 ‘아마 과거에 우리가 영주에게 더 큰 감정이입을 했던 것은 누구나 사랑을 할 때, 대부분 영주의 모습을 하기 때문’이란 내용이 참 와닿았다. 아마 우리가 성장한 만큼 영주도 더 단단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하트시그널 한편 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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