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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Dec 03. 2020

10_ 자만추냐 소개팅이냐, 그것이 문제랴



자만추를 한 지는 오래됐다. 이십대에는 아는 사람도 많았고, 갈 곳도 많았고, 호감을 느낄 순간도 많았다. 치기어린 자만추의 시간이 지나고, 삼십대에 접어든 지금은 다르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할 공간과 사람이 없으니, 자만추는 그저 자장면에 만두 추가, 라는 시시한 농담거리가 됐다.



근래의 연애들은 모두 소개팅으로 시작했다. 첫 만남과 몇 번의 애프터, 어느 정도 만났으면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상도덕. 서로에 대한 호감을 베이스로, 더 알아가려 할 때 진지한 만남이 이어진다. 소개팅 이후 세번 이상 만나게 되면 어느 정도 커플에 가까워진다는 공식 아닌 공식에 한 때는 소개팅이 더 편했다. 정해진 패턴과 툴 안에서 마음껏 내 호감을 표시했고, 있는 힘껏 상대의 호감을 받아들였다.



소개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최근 만남 때문이다. 예전에는 소개팅 자체가 즐거웠지만,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보니 소개팅이 갖는 리스크를 생각하게 됐다. 예전의 나는 스펀지처럼 새로운 사람을 충분히 흡수했지만, 지금은 내 주관들쌓인 쿠션이 딱딱해져 모르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두려움이 생겼다. 소개팅의 상도덕을 생각하면, 리스크를 최소화 하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무한정 늘릴 순 없으니 어려움이 있다.



예전에는 썸보다 연애였다. 연애는 확실한 사이를 의미했고, 그래서 더 마음이 놓였고, 더 편하게 서로를 알아갔다. 공식적인 관계가 주는 위안이 있었다. 반면 요즘은 썸을 타보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연애도 확실하지 않고, 마음을 놓을 수 없으며, 편하게 서로를 대하는 순간 무언가 무너져버리기도 한다는 걸 알아서일까. 아니면 치기어린 날에, 기약없이 누렸던 간질거리고 몽글몽글했던 감정이 그리운 걸까. 이래서 자만추를 하나보다.



자만추건 소개팅이건 핵심은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다. 원래 알던 사람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질 때, 소개팅으로 만난 상대방이 더 궁금해질 때 호감은 시작된다. 썸타고 싶은 이유는 그 호기심과 호감을 오래 지켜보고 싶어서다. 늘 급하게 호감의 상대를 운명이라 여기며 돌진한 지난 날에 대한 반성이. 조금은 성숙하게 나 자신과 상대에게 서로를 살필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다.





What's happened, happened.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러니 자만추냐, 소개팅이냐 그것이 문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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