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서울 아파트 구매 후기를 위한 기초작업
아파트 구매 후기 <아파트에 살면 뭐가 그렇게 좋나요?>를 위한 빌드업입니다. 여러가지 층위의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댓글로 알려주시면 지도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시집을 보면 작가의 이름 밑에 출생년도와 고향이 나온다. '시집'이나 '고향'을 말하다니 나이를 알만도 하다. 지금은 '고향'이라는 말이 사어가 되가는지 모르겠다. '단지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도시의 구획명이 얼마나 내게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구요'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균질한 시간에 받아들이는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한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고향은 그의 유년을 이룬 대개의 해나, 바람이나, 먹을거리를 짐작해낼 수 있는 귀중한 단서다. 더 옛날에는 '학교'까지 작가의 소개에 적히는 것도 그런 연유였을 것이다. 요새는 그런것을 포괄하고도 남는 여러가지 링크가 있겠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아나마나한 개인정보를 아는 것이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생년월일과 고향은 그가 선택할 수 없던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선천성으로, 그를 이뤘을 물성을 짐작해보는 단어다. 요새의 말로 바꾸자면 일종의 mbti라고 할수 있을까. 대강의 기질과 삶의 기반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떤 것.
고향을 말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것 같다. 유년을 어떤 기억을 가졌느냐에 따라 사람은 많이 달라지니까. 집에 대한 기억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아주 작은 동네에서 자랐다. 점촌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사람이 적은 촌이었다. 마을 인구는 대충 100명이 안되었고(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고), 가장 가까운 집이 우리집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네 방향의 창문과 사방으로 해가 들어오는 집에 살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잘 살아서가 아니라 누구나 4방향의 창문은 확보할 수 있었다(이것으로 내 고향이 북쪽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누구나 창문을 사방에 두었다. 막혀야 할 곳도 없고 이유도 없으니 모두 트여놓는 것이다.
이웃집은 어린이의 걸음으로 10분쯤 가야 만날 수 있었다. 집과 집 사이는 서로의 땅이나 밭이었으므로, 함부로 들어가 걸을 수 없었다. 그곳에 경작물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이웃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도 우리는 굽이굽이 땅의 가장자리로 걸어다니는 법을 배웠다. 풀어진 동네의 개만이 그 사이를 뛰어다녔다.
여기까지의 단서로 나는 산이 없는 동네, 농사를 짓는 동네, 북쪽이 아닌 동네에 살았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이웃과의 소음이라는 게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는 생활이었다. 이웃을 불쑥 만날 수 있어도 집 앞에서 대강의 서성이는 시간으로 준비를 하고도 남았다. 서로 어떻게 사는지 알 알았지만, 구체적인 삶의 소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큰 소리가 나서 주위가 시끄러워지는 일도 적었다. 얼마나 큰 소리를 내야 주위가 안단 말인가? 그런 것이 당연한 곳에서 나고 자랐다. 길에서 이웃을 만나면 어디사는 누군이지 아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그들을 몰라도 그들은 내 이름, 집, 부모님을 다 알고 있었으므로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알게 모르게 나를 키운 고향의 모습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자 내가 사는 곳에 '집'이라는 말이 붙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그동안 '방'에 살았다. 이제 이웃간의 거리는 2m 안쪽으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20살 전에는 모든 것을 소상히 알았으나 삶의 노이즈만은 숨길 수 있었던 이웃이 있는 동네에서 살았다. 그 이후는 모든 것을 '몰르기'로 하지만 소음만은 숨길 수 없는 이웃을 만나게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너무 많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아파트에 살면 뭐가 그렇게 좋나요?>를 제목으로 정해놓고 쓰기 시작했는데 좋다는 얘기는 아직 하나도 없다.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 서울에 아파트를 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의 삶은 4방위를 확보한 집에서 다시 4방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으나 많아봐야 2방향으로 그쳤으며, 앞으로도 도시에 산다면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이고, 원룸에서 살다가 3룸까지 넓혀봤지만 '집'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런 순간을 지나왔다는 것이다.
그런 유년에 나고 자랐다. '뛰지마'라는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시끄럽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모두가 내 이름을 알았던 동네. 나를 알아봐주었던 동네. 교과서에서 보던 농촌의 해체로 말미암아 도시로 이동한 사람의 행렬이 아직도 일어난다는 것일까? 그렇다.. 어느정도는. 내 생년과 고향이 어쩔 수 없이 도농간의 이동이 얼마간 아직도 진행중임을 고지한다는 얘기이다. 당신의 나이는 무엇인가. 당신은 어디에서 자랐나. 지금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나. 3가지로 당신의 심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나는 아직도 네 방향에 창문이 없는 집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 주변의 감나무와 목련나무, 앞마당의 딸기밭과, 그런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