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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Aug 01. 2022

장비가 너희를 이롭게 하리라


햇살이 가장 잘 들어오는 나의 침실, 통창을 마주 보는 위치에는 나무로 된 선반이 줄지어 있다. 선반 위에는 크고 작은 크기의 화분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중 습도에 유난히 민감한 칼라데아들과 안스리움은 선반 안에 비치된 온실 안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중이다. 한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선풍기도, 광합성을 도와줄 식물 전용 LED등과 가습기도 군데군데 놓여있다. 언뜻 이렇게만 써놓고 봐도 나의 침실엔 뭐가 참 많다. 


처음 식물을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때만 해도 이렇게 무언가로 꽉꽉 들어찬 침실을 상상했던 건 아니었다. 한때는 미니멀한 삶을 동경했었다. 적어도 예전의 나는 미니멀까진 아니더라도 괜히 쓸데없는 짐은 늘리지 말자는 주의여서 인테리어용 액자나 장식품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끽해야 화분 몇 개 더 놓는 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방심했던 탓이었을까? 미니멀한 삶은 놓은 지 오래, 화분은 그 수 가 빠르게 늘어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화분만 많아진 것도 아니었다. 막상 식물을 키우니 필요한 것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들 식물만 많아진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식물을 키우는데는 은근히 고려할 사항들이 많아진다. 관엽 식물의 경우 공중습도를 맞춰주는 게 좋다. 적당량의 빛도 필요로 한다. 실내에서 키우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 장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금은 잠잠했던 미세먼지가 다시 기승을 부리니 창문을 열기가 꺼림칙해 서큘레이터를 꺼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서큘레이터 바람을 맞은 식물들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파리가 조금 더 쌩쌩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건조한 날에 사용할 가습기를 들여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베고니아 옆에 찰싹 붙여놓았다. 장마철 내내 날이 흐리자 햇빛을 대체해 줄 식물등을 들여놓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그랬다. 어른의 취미는 장비빨이라고. 


식물을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저 물만 주면 알아서 잘 자라겠거니 생각했지만 웬걸, 식물을 키우는 취미 또한 필요에 따라 장비가 필요하다. 점점 동거하는 식물들이 늘어 가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맞춰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요한 장비들도 점점 늘어만 간다. 가전제품에도 식기 세척기, 로봇청소기, 건조기라는 3대 이모님이 있듯, 식물 생활에도 서큘레이터, 가습기. 식물등은 3대 이모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번 생에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긴 어려울 것 같다.

식물등…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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