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결 기꺼운 마음으로 비현실에 내 삶을 던졌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내 브런치를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명해지고는 싶지만, 지인들이 나로 인해 마음 아픈 건 보고 싶지 않다. 남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F기질이 강해서일까.
죽음은 한낮의 그림자 같아서, 아무리 멀어져 봐야 내 키의 10cm 이상 반경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 종특이라는 죽겠다란 말을 평소에 남발하지 않는다. 배고파 죽겠어. 힘들어 죽겠어. 보고 싶어 죽겠어. 대신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형용사로 대체할 뿐이다. 씨발 존⃫나⃫ 힘드네. 뱃가죽이 등에 붙었어.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내가 죽음을 말할 때는 딱 두 가지뿐이다. 정말 목숨이 끊어질 것 같을 때, 아니면 문자 그대로 죽고 싶을 때.
사주를 봤다. 내 주변에 사주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추천을 해 줄 때면 종종 보는 편이다. 굉장히 잘 맞추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저냥 흥미롭게 듣고 오는 때도 다반사다. 이번에도 그냥 심심해서, 그리고 마침 진로를 바꾸려던 참에 친구가 최근에 용하단 사주를 보고 온 얘기를 해줬다. 들어보니 꽤나 잘 맞췄다는 이야기. 본인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묻지 않고도 그동안 해왔던 일과 성향, 성격,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 정확히 알려 주었다고 한다. 여태까지 내 성격과 과거를 맞춘 사주는 많았지만 내가 가진 사주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말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강한 흥미를 느꼈다. 반신반의하며 예약을 하고 항상 그랬듯 재미 삼아 방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앉자마자 나에 대한 얘기를 마구 풀어냈다. 여기까진 읽기에 별 흥미가 없을 수도 있다. 나도 사주를 꽤나 봤기 때문에 내 사주에 어떤 운이 들어와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대략 말하자면 화가 엄청 많고 금과 수, 목, 토가 거의 없다. (팔자가 온통 불덩어리다) 물론 이곳에서도 같은 말을 하긴 했다. 다만 한 가지, 처음 듣는 얘기가 있었다. 비현실을 살 팔자란다. 비현실이라는 키워드가 너무 센 나머지 현실이 내 삶에 끼어들면 견딜 수 없을 스타일이란다. 이미 사주에서부터 밤낮이 바뀌어 있다고 했다. 현실적이란 9 to 6 의 출퇴근, 정적인 사무적 일, 그리고 남들이 다 하는 일반적인 생활, 결혼, 출산, 육아, 시부모 봉양 등이 해당된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였다. 인문계 시스템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어 자퇴를 하겠다고 한동안 난리를 칠 때가 있었다. 내 예민하고 지랄 맞은 성격이 감당 안됐던 엄마는 크리스천인데도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가 하는 말이 ‘나는 이 나라 제도권에서는 살 수 없는 아이이니,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그 사실을 꽁꽁 숨기고 내가 수능을 보고 대학까지 가고 나서야 그 사실을 털어놨다. 이번 사주를 들으며, 잊고 지냈던 15년 전 점괘가 플래시백 됐다.
다시 이번 사주로 돌아와서, 현실이 없는 팔자이니 결혼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을 것이며 회사도 한 곳을 오래는 못 다녔을 거라 했다. 회사 운은 있지만 동료 운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쨌든 회사 운은 있기 때문에 이 운을 쓰려면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받아와 집중해서 확 불살라버리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프리랜서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사주는 온통 불덩어리인데, 화의 성질은 불길이 번지듯 무언가를 퍼트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은 영상, 광고, 엔터, 마케팅 일을 했을 거라고 했다. (내 커리어 패스와 정확히 일치했다.)
언급했듯이 나는 화가 많다. 아기운이 있는 것도 맞고, 학업운이 있는 것도 맞다. 다른 곳에서는 아기운을 자식복으로 해석했다. 당황스러웠다. 저는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자식복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혹스러운 티를 내며 묻자 언젠가는 그 마음 자체가 바뀔 시기가 올 거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학업운. 대부분은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시험 준비를 하면 잘 풀릴 거라고 했다. 나는 학사 수료를 통해 정사서 2급 자격증이 있고, 시험만 보면 사서공무원이 될 수 있지만 공부가 싫어 전공을 살리지 않았다. 그래서 학업운이 있으니 공부하란 말은 그저 흘려들었다. 어쩌면 내가 사주를 거슬러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책감 1g 정도 안고서.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사주에 아기가 있다고 해서 자식복이 있다고 하거나 공부운 있다고 해서 공부를 하라고 하는 사람은 다 돌팔이야, 그게 왜 그런지 뜻을 알려 줘야지. 그가 말했다. 나를 딱 때렸던 한마디가 있었다. 그동안은 내가 가진 불덩어리와 아기, 학업운을 정확히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던 거다. 화는 불의 성질이자 활활 타오르는 형상으로 빗대어 보면 화려하다. 재미, 공상, 자극적, 번짐, 비현실 등이 해당된다. 수의 기운이 정적이라면 불의 기운은 동적이라고 했다. 또한 공부 운이란 말 그대로 공부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몸은 편하지만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는 일이 공부운의 진짜 의미라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회사의 제품이나 무언가를 알리려고 했다면, 지금은 너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들어왔을 거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말했던 학업운이 들어왔다는 걸 이렇게 해석한 듯했다.)
그리고 아기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내가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존재, 그리고 두 번째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존재. 나에게는 두 번째가 해당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넌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아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뜸, 엄마의 존재를 언급하며 널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고 챙겨줄 엄마 같은 사람이 옆에 있어야 내가 다른 잡생각 없이 일에만 안정적으로 몰두해 생산성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네 옆엔 그런 절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며, 다시 한번 힘을 주어 강조했다. 순간 왈칵 차오르는 눈물을 집어삼켰다. 그동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이리도 불안정했던 걸까. 이제 겨우 남자 친구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한동안 내 결핍과 공허의 이유가 이 때문이었을까.
합쳐 보면 지금 내가 작가 준비를 하고 있는 방향이 사주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앞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주를 맹신하거나 미신을 믿지는 않는다. 다만 사주는 통계학이고 내 사주는 어딜 가서 보든 정해져 있다. 정해진 사주팔자를 각 도사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실력이 갈린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가야 할 길 - 자리에 앉아서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고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 그리고 나의 맹목적인 추종자, 즉 팬을 만들어야 한다는 - 얘기를 듣자 작가라는 길을 선택한 건 사실은 내가 아니라 사주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내가 만든 소설 속 세계관에 갇혀 살고 있다. 명백한 비현실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온통 화가 나거나 우울한 일뿐이다. 약을 먹어야만 버틸 수 있다. 결국 사람은 제 팔자대로 사는 걸까.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이번 사주를 보고 나와서 한동안 맘이 복잡했다.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고, 한편으론 왜 그렇게 내가 이 세상의 제도들을 혐오하는 건지 납득도 됐다.
그래서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비현실에 내 삶을 던졌다.
내 사주가 그 길을 택했든 내 운명이 그런 것이든,
나는 내가 만든 비현실 안에서
기꺼이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