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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Aug 17. 2021

0. 양주 입문한 이유

#양주입문 - 술도 못마시면서

오늘 저녁 야구는 보지 않으려 한다. 흐린 날씨인데도 후덥지근하다. 눅진한 공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다. 더운데 맥주나 마실까? 맥주… 뭔가 맥주도 아니다. 이런 날은 하이볼이다. 이렇게 말하면 술을 잘 아는 사람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과 못 마시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대표적으로 못 마시는 쪽에 속한다. 쉽게 말해 맥주 한두 잔 먹으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는 체질이다. 이런 체질은 아시안인에게 흔한 모양이었다. 외국에 있을 때 다른 피부가 하얀 다른 인종의 친구들은 이걸 아시아인  홍조(Asian flush)라고 불렀다.


아시아인 홍조 (Asian flush)


그나마 아시아인들로 크게 구분해서 부를 때는 나만 약한 게 아니라 이 황인종이 대체로 약한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체구도 다른 인종들에 비해서 좀 작으니까.. 잘 못 마실 수도 있지- 라며 정신승리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나 술 마시는 축에 속했다.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술에 있는 성분 중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소 효소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 효소  (Acetal-dehydedehydrogenase)  가 부족하여  -이렇게 긴데 부족할만하다.- 독성을 해독하지 못하는 그런 체질이라고 한다. 억울해서 그만 열심히 찾아보고 말았다. 요는 그 부족한 소 효소님 덕분에 내 체질은 술을 많이 마실 수 없고, 숙취가 심한 게다가 향후 대장암 위험도 일반인의 6배에 달하는 그런 몸이다.


술을 마시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시간을 오래 즐기고 싶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오면 오늘도 여기서 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산통을 이렇게 빨리 깨나 싶다. 잘 먹고 많이 마실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몸은 그렇게 많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내 체질에 맞는 그런 술이 있나 이것저것 껄떡거려봤다. 천천히 마실 수도 있고, 몸도 빨개지지 않는 적절한 술을 찾아 해 맨 것이다. 일단 소주가 안 되는 건 확실히 알았다. 애플주스, 호로요이, 과일소주, 와인, 일본주, 중국술, 막걸리, 동동주… 등등.


그나마  ‘일본주’는 내가 원할 때 필요한 만큼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했던 건 일본의 술이라서가 아니었다. 한국 소주를 마시는 상황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없었다. 늘 급하고, 당장 마셔야 했다. 첫 잔만 그럴 줄 알았는데 다음 잔도 그다음 잔도 그랬다. 일 할 때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셔야 했고 그게 싫어서 소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일하는 피곤한 상황에 최악의 컨디션에서 3차로 위스키 바를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름도 어려웠다. 위스키는 대체 뭐야. 그냥 양주라고 하면 될 걸 왜 이렇게 으스대며 위스키 거리는가 싶었다. 위스키를 마셔야 하는 자리는 늘 긴장되는 자리였다. 그게 아니면 아주 불편한 자리였다. 영화에 나오는 ‘양주’ 등판 장면도 대체로 그렇다. 악당이 한판 거나하게 치르기 직전 전날. 헐벗은 언니들과 은근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시는 게 양주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국회의원 옆에 한참 굴러다니는 병들이 다 양주병들이 아닌가. 뭔지 몰라도 밉상스러운 술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나와 이 술의  3차 자리에서 만나는 만남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계약 직전에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자리. 클라이언트라는 사람들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회사 사람들도 하나같이 높은 사람들만 따라왔다. 부담스러운 사람들로 그득한 그 자리는 불편함 그 자체였다.


한잔은 비쌌다. 몇십만 원 한다는 병의 1온즈를 마신다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 한잔이 몇만 원은 하겠지. 이 회사보다 100배 잘 버는 회사도 이렇게 낭비하지는 않던데’ 고용주도 고민하지 않던 고민을 하며 마셨다. 고용주보다 잘난 것도 없는데 걱정은 왜 내가 했는지 모르겠다. 고용이란 그런 것인가? 소작농인 나는 벌벌 떨며 4캔 1만 원 카피를 보고 맥주를 사는 사람이다. 고용주는 나보다 10배는 넘게 벌 테니 2,500원에 (바 안에서 소비자 가로) 10배쯤 되는 그 한잔을 마셔도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10배의 낭비를 바라보는 내 심경은 영화 타이타닉을 볼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화려한 선상 무도회를 즐기는 수많은 손님들을 제3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축제에서 나는 구경꾼이었고, 이 배가 가라앉을 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 쓰잘 때기 없는 코스트가 용납되는 회사의 미래는 마치 펑펑 돈을 쓰는 나의 미래와 비슷하게 암울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안된다’는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성을 이긴다.


타이타닉 호의 선상 무도회는 욕망의 정점이다. 사치와 욕망 뒤덮여 있는 예쁜 쓰레기이다. 내 돈을 바다에 깡그리 버리는 한이 있어도 사치를 즐기겠다는 욕망으로 배가 만들어지고 바다로 나왔다.  욕망의 절정은 어쩌면 배에 오를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한없는 부러움을 받았던 그 배. 배에 오르지 못한 이들을 내려다보면서 배에 오르는 기분을 한없이 즐겼던 것 같다. 남들은 타지 못했지만 나는 탔다- 그런 느낌일 테지. 그리고 ‘탄다’를 ‘마신다’로 바꾸면 위스키를 마시는 자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남들은 마시지 못하지만 나는 마신다.” 그래 10배나 낭비해가며 느끼고픈 그런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양주를 사주는 자리와 선상 무도회는 불편한 느낌이 닮아있다. 불편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치를 즐기겠다는 욕망을 숨긴 채 일하는 척, 멋있는 척, 돈 있는 척  온갖 척이란 척은 다 하며 마시는 모양새도 닮아있다.  만취할 수밖에 없는 도수지만 그런 척을 하려면 ‘만취’ 할 수가 없다. 세기도 센데 취할 수도 없다라 도를 넘어서는 불편함이다. 안 취하기 위해 당시엔 그 자리를 버티기 위해 일부러 몰래 토했다. 멀쩡한 정신인 척 버티다가 집에 들어오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모른다.


덕분에 양주는 내 머릿속에선 “취하면 안 되는 자리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끝판 대장” 정도로 취급된다. 너만 쓰러뜨리면 나는 집에 갈 수 있다. 그 마음 하나로 독하게 마시고 버텼다.


나의 동양주 동동주


싫은 놈(들)을 잊기 위해 싫은 술을 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는 양주 빼고 다른 술을 마셨다. 상식적으로 양주. ‘서양주’를 빼고 내가 마실 수 있는 술들은 뭐가 있을까. 그럼 서양을 빼고 동양이 남는데 막걸리거나 동동주를 마셨어야 했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양주인걸 잊어버리고 야구장에서 맥주를 더 많이 마신 것 같지만.


그나마도 다행인 건 내가 그 자리가 불편하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는 거다. 불편한 걸 알려면 그런 자리에 가봐야 한다. 불편함을 눈치챈다는 것은 가봤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그런 자리’ 초대를 잘 받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그런 자리’가 있는 줄을 모른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불편하면 상대방도 불편할 터, 여자인 나에게 초대하지 못하는 숨겨진 자리가 있었다. 그 모든 술자리 중 대부분은 ‘초대’가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은밀한 술자리였다.


회식 이후, 다음날 이상하게 내 기억은 언제나 중간에서 끊겨있었다. 점심을 먹다 보면 내가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해도 먹어보지 못한 메뉴와 술 이름이 나왔다. 자기들끼리 먹은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신나 했다. ‘그게 뭐야?’라고 물어보면 ‘어? 기억 안 나?’라고 되물어봐서 서로가 의문에 빠지곤 했다. 난 집에 갈 때까지 있었는데? 왜 내가 기억이 안 나는 거지?  그러다 남자들은 ‘아차’하는 표정과 은근한 으스대는 표정과 함께 조용히 읊조린다. ‘아, 너는 없었지...’ 하고 그렇게 은근히 “남자들끼리 몰래 마시러 가는 마지막 술자리.”가 있는 걸 알고 싶지 않지만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술 마시는 동안 친한 척 다 했지만 정작 중요한 본방은 그 뒤에 있었나 보다. 그렇게 여자인 나를 빼야 하는 그 자리는 대체 뭘 하는 자리였던 걸까.  


양주를 파는데 왜 늘 하트가 강조되는지 의문이었던 “양주 집”


그 힌트는 길거리에 있었다. 길거리에 수많은 핑크색 배경에 하트에 화살이 딱 꽂혀있는 양주 간판들이 있다. 그런 간판들을 서울에 올라고 오고 나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우리 지역에 그게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학교 주변에는 없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 이후 올라온 서울에는 수많은 ‘양주’ 간판들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주변에 유해시설이 들어왔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야’라는 짧은 설명을 듣고 ‘그래’ 하고 단숨에 납득했다. 그때가 머릿속에 퇴폐와 향락의 아이콘으로 양주라는 단어가 정착한 순간이었다. 퇴폐를 위해 가는 가게의 이름이자, 금녀의 구역에서 형님이 아우에게 내려주는 술. 그렇게 미운털이 박혀버렸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 안의 양주는 멋진 사람은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대체로 바람이 난 남자. 대기업의 정신 나간 아들. 부자에 겉멋만 가득한 사람을 표현하는 주요 아이템이 바로 ‘양주병’과 잔이었다.


- 애석하지만 위스키  너란 놈은 싫은 술이다.


비슷하게 생긴 양주란 양주는 다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미지는 점점 나빠져갔다. 퇴폐적인 데다가 낭비벽이 가득한 사람들이 마시는 술로 자리 잡은 것이다. 마치 안 어울리는 명품백을 든 것 같은 어색함. 체육복에 운동화가 편한 사람에게 명품백을 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싸긴 한데 기쁘진 않다. 기왕이면 이걸 맥북으로 바꿔주면 좋겠다.


 ‘양주를 마시러 가자’는 말을 들으면 부담스러움이 밀려온다. 회비도 비싸겠지만, 뭔가 덜컥 싫은 느낌이 들었다. 위스키라는 단어도 좀 밥맛이 없었고 마신다는 사람들도 하나 같이 밥맛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부자”도 아니고, “오빠”도 아니다. 더군다나 센 술을 잘 마시는 “주당”도 아니다. 양주를 마시는 일은 부자인 그들과 마셔서 불편했고, 오빠인 그들에게 강요당해 힘들었고 나 자신이 술을 잘 못 마셔서 괴로웠다.


그런 편견에서 빠져나와 몇 년 뒤, 다시 “위스키”를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보며, 홍차를 마시던 자리에 상큼한 향을 내주기도 했고, 요즘처럼 더운 날 야구를 보는데 시원한 맥주를 대신하는 하이볼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편한 자리에서 마시는 “위스키”란 녀석은 첫인상과는 달랐다. 생각보다 가성비도 높았고, 어떤 성별이건 간에 즐겁게 마실 수 있고, 술 약한 사람도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술을 잘 마셔서 양주를 마시는 게 아니다.

돈 많아서 양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술 잘 마시고 돈 있는 남자의 술도 아니다.  

 

술도 못하고, 돈도 없지만

양주를 좋아하게 된 여자의


양주 입문기.



 









0. 양주 입문한 이유 - 술도 못마시면서

1. 양주의 정체  - 양주의 정의와 종류

2. 하이볼을 위한 변명  - 여름이 가기 전에 하이볼

3. 물 타기 해볼까 - 미즈와리,워터드랍, 트와이스업

4. 장비병. 정답은 없다 - 필요한 장비들, 지거, 바스푼, 글랜케런

5. 가을엔 홍차 같은 술, 술 같은 홍차 - 핫토디, 홍차와 브랜디, 양 웬리

6. 내 취향의 위스키를 찾아서 - 위스키지도, 위스키아로마휠

7. 내 취향의 양주를 찾아서 - 위스키,진, 럼, 브랜디, 보드카, 테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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