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입문 - 미즈와리,워터드랍, 트와이스업
요즘 자주 비가 온다. 이런 날엔 위스키에 물타기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이 단어만 봐도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눈에 선하다. ‘술에 물을 타다니!’ 그리고 고전 위스키 책에서도 외친다. ‘얼음도 물도 넣지 마! 향을 못 느끼잖아!’라고. 니트로 느낄 수 있는 강력한 향. 그 향을 모으고 모아 ‘글랜 캐런’ 잔으로 마셔야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 위스키에 물을 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리라.
위스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물타기’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논점을 흐린다, 여론을 몰아간다, 남들을 따라 한다.’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놀이동산에서 줄 서서 후룸라이드는 타면서 어쩐지 배신이다. (뭐에 대한 배신인지는 모르겠다.)
커피는 매일 같이 물에 타서 먹을 수 있는데(아메리카노), 위스키는 그냥 마시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역시 커피는 ‘에스프레소’ 라며 호쾌하게 마시는 이탈리아인들이다. 그들이 에스프레소를 멋있게 훅 들이키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다. 설탕을 한 큰 술 구수하게 넣고 마신다. 그래 쓰긴 쓴 거구나. 예전에 어디선가 “원래 유럽에선 그냥 마시는 거래. 그러니까 그냥 마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의하기 쉽지 않았다. 유럽에서 넘어와서 미국에서 물을 탄 아메리카노는 뭐라 설명할 것인가? 그걸로 치면 버번위스키에 얼음 타 먹는 건 국률로 봐야 하나.
물에 타면 진한 맛 때문에 못 먹을 음식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러다 조금씩 진하게 만들면서 진정한 맛을 알게 되지 않는가. 어릴 때 조금씩 익숙해진 김치가 그랬다. 커피는 어떤가? 내 경우 어렸을 때 커피 우유에서, 레쓰비로 그리고 카페라테를 먹다가 어른이 돼서야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게 되었다. 그런 진한 아메리카노도 에스프레소를 연하게 한 버전이다. 에스프레소로는 마실 수 없는 이들이 많기에 아메리카노로 대중화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위스키에 물타기도 위스키를 더 흥하게 하지 않을까? (충분히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담아 흥미로웠던 물타기 방법 4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섞인 채로
1. 미즈와리
- 얼음 넣고, 잔을 식힌다
- 위스키 적당량. 1oz(30ml) 정도
- 위스키의 두배 정도 (1:2) 물 붓기
- 위스키와 물을 섞는다
이 방법은 식사를 하거나, 식후 주로 차 마시듯 즐기기에 좋다. 목 넘김이 편해서 맥주 대신으로 좋다.
2. 트와이스 업 twice-up
- 위스키 적당량
- 상온의 물을 1:1 비율로 넣기
- 섞는다
1번 방법이 너무 약하면 같은 비율로 넣어서 마실 수 있다. 미즈와리는 생각보다 너무 약하고, 몸은 좀 힘들어서 그대로는 마시기는 부담스러울 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술 만드는 사람들이 즐기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안 섞인 채로
3. 워터드롭 water-drop
- 위스키 적당량
- 스포이드로 물을 한 방울씩.
위스키에 물을 어마나 붓는 게 좋은지 모를 때 해볼 수 있다. 과학실험처럼. 대충 정해진 비율은 있지만 어느 정도가 자기 자신에게 좋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한 방울씩 넣으면서 마셔보는 것이다. 오늘의 나에게 맞는 양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멋진 걸 사면 더 좋겠지만 굳이 비싼 위스키용 워터드롭을 사지 않아도 된다. 숟가락으로 물을 한번 찍었다가 떨어뜨리면서 마셔도 되고, 다이소에서 식용 스포이트 하나 구해서 물을 떨어뜨려봐도 된다.
4. 위스키 플로트 whisky float
- 컵에 물 70% 채운다
- 나머지를 위스키 한 샷 정도 넣는다
- 섞어도 되고 그냥 먹어도 됨
숟가락을 뒤집어서 위스키를 붓기만 해도 된다. 바 스푼이 있으면 부을 때 좀 더 (겉)멋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
막상 마셔보면 위스키 플로트는 처음엔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위스키가 떠있어서 물이 하나도 안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온 관우 마냥 한 번에 쫙 밑에 있는 물과 함께 들이키는 방법이 있다. 이건 샷을 한 잔 들이켠 다음에 바로 물을 마신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그리고 조금씩 새가 물을 쪼듯이 위스키를 호록 호록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이것도 천천히 조금씩 마시면 워터드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용한 듯한 효과가 생긴다. 내가 마시는 만큼 위스키가 줄어드니까 마실 때마다 농도가 바뀌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처음 이야기했던 두 가지 방법은 섞인 채로 마시는 거라 탕수육으로 치면 부먹(부어먹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뒤의 두 가지 방법은 찍먹 같다. 그때마다 기분 따라 즐길 수 있기에 4가지 방법 다 즐겨보시면 좋겠다.
물타기는 논점을 흐리게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위스키에 물타기는 위스키를 흐리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가지 색과 층으로 선명하게 해 준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떠들 때,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집중시켰을까? 큰 소리를 쳐서 조용히 시키는 타입이 있고, 또 하나는 극도의 침묵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이 있다. 수업을 한창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재잘거린다. 화가 난 선생님은 분필을 멈춘 채 5초간 침묵한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싸한 느낌을 받는다. 조금만 있으면 교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바로 이게 침묵의 힘이다. 위스키에 물을 붓게 되면, 개성이 넘치는 특정 향들이 조용해진다. 시끄러운 아이들이 잠잠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제야 조용히 수업을 듣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보인다. 물은 교실에서의 침묵과 비슷하다. 저렴한 위스키에서 격한 알코올 향이 난다. 그 향에 숨겨져 몰랐던 캐러멜향을 물을 부으면 그제야 느낄 수 있다. 비싼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어떤 건 꿀 향이 강하다. 그런 위스키에 물을 부으면 잘 몰랐던 꽃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나 같이 코가 안 좋은 사람에게도.
만약에 당신이 그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모든 아이들의 목소리가 하나하나 들린다면, 그리고 그게 힘들지 않다면 그냥 그대로 하면 된다. 위스키도 드시던 대로 글랜 캐런 잔에 자작히 부어 마시면 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속에 고개를 파묻은 채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하나씩 찾아내고 싶다면, 때때로 위스키에 물 타 먹기, 미즈와리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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