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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Sep 03. 2021

6. 내 취향의 위스키를 찾아서

#양주입문 - 위스키지도, 위스키아로마휠

위스키를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처음 맥주를 마셨을 때와 비슷했다. 친구들이 몰래 집에서 챙겨 왔던 그 맥주... 수학여행에서 처음 마셨다. 강렬한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결론은 맛없고 씁쓸했다. 첫마디는 보통 “으웩”이었다. 늘 당류에 빠져있는 어린이에게 쌉싸름한 맥주가 달달 할리 없었다.


그러던 나의  학생 시절은 갑자기 끝이 났다. 그리고 준비할 틈도 없이 독립의 날이 왔다. 가족들 사이에선 몰랐던 실패, 헤어짐, 외로움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가난함과 초라함이 나를 헤집었다. 언제부터인가 맥주는 달달해졌고, 소주는 처음엔 힘들었다가 물처럼 느껴지게 된다. 쌉싸름함에서 새로운 단 맛을 찾아낸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설탕은 하나도 안 들어 가있을 텐데. 이 놈의 술은 인생의 씁쓸함과 반 비례로 자꾸 달달해진다.


달달해진 이후로는 쉬웠다. 맥주를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여행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취향 맥주가 하나둘씩 생겼다. 이 맥주는 가볍지만, 향긋해서 목 넘김이 좋고 저 맥주는 과일맛이 난다. 어떤 건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넘어가고 다른 건 톡톡 쏘며 온 몸을 상쾌하게 해 준다. 그래서 오늘은 곰표다. 맥주의 맛을 느끼는 내 미각도 이렇게 성장했다. 처음엔 “쌉싸름”, “맛없음”에서 서서히 “단 맛”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점점 “시원하고 톡 쏜다.”, “부드럽고 묵직하다.”, “향긋하고 과일 느낌이 난다.” 로 진화해 간다. 그리고 술은 맥주에서 멈추지 않는다. 와인도 마시면서 술을 마시는 방법이 발전한다. (게다가 신의 물방울을 읽었다면) 색을 구경하고, 흔들면서 잔 속의 모양을 본다. 마시면서 향을 즐기며 표현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위스키는 처음 보기엔 복잡하고, 이름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예습을 해왔다. 맥주, 소주 와인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마셔온 우리에게, 위스키가 과연 복잡할까?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 참소주에서 참이슬까지 알 듯, 다양한 위스키의 차이가 서서히 보일 것이다.  


위스키 마시는 방법

글랜케런 잔에 흘려내려오는 위스키 레그스..

그렇다. 마음대로 마시면 된다. 사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위스키의 차이를 극명히 느끼기 위해 시음법을 이해하면 편리하다. 위스키를 마실 때는 시각, 미각, 후각을 모두 이용한다. 처음에는 꼴꼴꼴 위스키를 따르고, 글랜케런 잔으로 휘휘 돌려보면 무언가 흘려 내려온다. 진득한지 아닌지를 지켜보자. 이 흘러내려온 부분을 위스키 레그스(whisky legs)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진득하게 내려오는 쪽이 더 숙성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색상을 바라본다.


색도, 향도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이다.


색상 관찰이 끝난 다음에는 후각이다. 잔에 냄새를 맡아보고, 잔 안의 벽에 위스키를 한 바퀴 굴려본다. 그리고 위스키가 가라앉아있는 부분의 향기와 컵 위에 남은 향기가 차이 나는지 실험해본다. 컵 안과 살짝 밖에서의 미세하게 향이 다를 수 있다. 지거와 컵 안팎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제 마지막으로 마셔본다. 처음에 혀 끝에서 닿는 느낌을 느껴본다. 입에 한 모금 정도 머금었을 때 혓바닥 중간에서(혀의 양 옆쪽?) 느껴지는 맛도 다른지 찾아본다. 그리고 꿀떡 마시고 여운을 즐긴다. 목을 타고 넘어 간 여운을 느낀 후에 숨을 뱉는다. 그리고 향을 느껴본다. 이때 실수로 숨을 들이쉬면 알코올 때문인지 콜록거리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이렇게 다양한 층에서 향과 맛을 느껴야, 수많은 위스키 (위스키 지도로만 350개 정도..)의 차이를 찾아갈 수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처음에 씁쓸함보다 여러 가지 맛을 느끼기 위해 집중해보면 몰랐던 느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위스키용 아로마 휠


위스키용 아로마휠, Scotch whisky insitute


마셨을 때 느껴지는 향이 예상한 것보다 복잡할 수 있다. 강하게 코를 찌르는 것도 있고 이상하다.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는 향과 맛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향이 많아서 그렇다. 먹을 거에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약 냄새가 난다거나, 나무 맛이 난다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뭐라고 해야 할까? 정답표가 없다. 그래서 본인이 느끼는 게 정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아로마 휠이 약간의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향들 마저도 날 수 있구나 하는 걸 기대하면서 마셔볼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아로마와 맛으로 가득한 위스키를 어떻게 시작하고 마셔보면 좋을까? 접근법도 여러 가지 있다. 위스키가 나온 국가별(영국, 미국, 일본)로 즐겨본다거나, 싱글몰트라면 영국 내 지역별로 마셔본다거나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마음에 드는 한 병이 생겼다면 그 한 병을 만든 증류소의 술들을 연수나 스타일별로 마셔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샘플링


아직 마음에 드는 한 병을 못 찾아서 여기저기 해메야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화학 실험처럼 샘플링해보는 방식이 실패를 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 연구를 통해서 위스키는 여러 가지 향과 맛이 있다는 것이 나와있다. 이것을 어느 정도 그룹핑해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나는 잘 몰랐으나..) 맛이나 스타일에 따라 하나씩 샘플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샘플링하면 좋단 말인가?) 위스키 대백과(원제:Whisky Classified)에 위스키를 그룹 별로 분류한 내용이 있다.  세로축이 섬세함/풍부함(Delicate / Rich), 가로축이 와인 같은/스모키 한(Winey/Smoky)로 이루어져 크게는 4그룹으로 되어있다. 이것을 책에서 세부적으로 10그룹으로 묶어 정리했다.


위스키 지도 Whisky maps (350종 중 극히 일부)


이 분류를 지금 보고 외우기보다는 (뭐랄까 주입식 교육의 본능) 그저 지도로 사용하는 게 좋다. 외우려고 해도 외워지지도 않을뿐더러 브랜드 명 밖에 없어서 헷갈린다. 게다가 이 분류와 다르게 분류한 결과물들도 있어서 이것을 답이라 여기는 건 좋지 않다. 나는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스키 바에서 각 맛의 비슷한 위치에 있는 브랜드를 한잔씩 마셔보고, 취향에 가까운 걸로 한 병 사보면 실패할 확률이 조금 줄어드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4-10병을 그룹별로 1병씩 골라 비교하면서 마셔보면 제일 재미있을 것 같다. 이건 정해진 바가 없어서 여러 가지 그룹이 가능하다.


4 groups

- 빨간색 : 발베니

- 주황색 : 맥캘란 파인오크

- 파란색 : 아드벡

- 초록색 : 오반


이렇게도 해볼 수 있고…


6 group

- 각 타입별로 한 병씩 골라본다.

- 혹은 아까의 4그룹 외에 블렌디드 2병을 추가해서 마셔본다.


위스키 대백과 Whisky classfied / 그룹핑의 숫자에 따라 유사한 종으로 묶인다.


유사한 미니병 위스키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미니 병은 비싸서, 가능하면 주류전문샵의 미니 위스키가 좋겠다.) 샘플링이 효율적인 이긴 하지만 만약에 위스키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 표는 아마 소용없을 것이다. 언젠가 이 모든 영역을 한 병씩 그리고 모든 위스키를 하나씩 먹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얼마가 드는 걸까…) 그러다 보면 리큐르 샵 분과도 친해져서 이것저것 추천을 계속해서 받게 되고 그렇게 이 표의 모든 술을 알게 된다.


혹시 이 연구들이 각자가 느끼는 첫 향에 대한 선입견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남들은 이렇게 느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느낄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맛있지만, 나에게는 맛없을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정답이 어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도를 펴고 어디든 천천히 가보자.


0. 양주 입문한 이유 - 술도 못마시면서

1. 양주의 정체  - 양주의 정의와 종류

2. 하이볼을 위한 변명  - 여름이 가기 전에 하이볼

3. 물 타기 해볼까 - 미즈와리,워터드랍, 트와이스업

4. 장비병. 정답은 없다 - 필요한 장비들, 지거, 바스푼, 글랜케런

5. 가을엔 홍차 같은 술, 술 같은 홍차 - 핫토디, 홍차와 브랜디, 양 웬리

6. 내 취향의 위스키를 찾아서 - 위스키지도, 위스키아로마휠

7. 내 취향의 양주를 찾아서 - 위스키,진, 럼, 브랜디, 보드카, 테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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