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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Nov 28. 2020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네요

대학을 다니며, 항상 일을 했다. 왕복 3시간 통학을 하면서도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상 중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금요일을 공강으로 만들어 금, 토는 미술관에서 일을 했다. 학점을 챙기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으나, 내게는 생활비가 필요했다. 아주 적은 금액이었으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그 돈으로 아버지 허락 없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집에 살곤 있으나 자금의 독립을 이뤘다는 사실은 꽤나 역사적인 일이었다. 완전히 아버지의 돈으로부터 독립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한 최소한의 돈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당연하다는 말씀으로 교통비와 식비를 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아버지의 지원 없이 독학으로 붙은 학교. 아버지는 나의 대학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그 도움이 감사했다. 


영상 중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이 기억난다. "드디어 그만둔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하기 싫었고, 의미도 배움도 없는 아르바이트였으나 2년을 넘게 일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편했고, 시급도 높았다. 지금은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식대도 나왔다. 심지어 내가 원할 때만 일을 할 수 있었으니 정말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의미와 배움이 없으니 그 어떤 조건도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나의 방향성이었다. 배워야 하고, 달라야 하고 무언가를 이뤄야 했다. 


중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금, 토만 했던 미술관 아르바이트가 계약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시급 1만 원에서 일급 10만 원으로의 변화 내게는 기회였다. 미술관 아르바이트는 내게 의미와 배움이 가득했다. 생전 처음 보는 작품들, 작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들이 곁에 계셨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도 창피하지 않았다. 모든 분들이 선배이자,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피곤했던 날도 있고 마음이 어려웠던 날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모두 감사한 나날이었다. 정말 좋은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많이 배웠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미술관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미술관에서 일한 돈을 모아 유학자금에 보탤 수 있었다. 넉넉하진 않았으나 미술관에서 일한 돈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내겐 그 자체도 감사였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후 감사하게도 미술관에서 다시 연락을 주셨었다. 물론 더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공과 전혀 관련 없고, 정확하게는 내가 고려해본 업종이 아니었다. 업종을 다르지만, 방향성과 사업을 통해 만드는 사회적 가치가 '언젠가 내가 회사를 만들면'이라고 다짐했던 가치와 유사하기 때문에 선택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회사인지는 추후에 적어보고 싶다. 아직 글로 맺기에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자금의 독립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기에 어떻게 완벽하게 독립할 수 있겠나 싶다. 다만 내가 버는 돈으로 생활하고, 아버지께 손을 벌리지 않고 있다. 내게는 정말 큰 걸음인 것 같다. 내가 아직 학생이라는 점 때문일까. 졸업 전에 아버지로부터 자금의 독립을 했다는 사실이 꽤나 뿌듯하다. 그리고 매 주말 아버지를 위해 빵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빵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 빵을 사들고 집으로 가던 길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기뻐서. 뿌듯해서. 


돈의 가치를 알아가는 중인 것 같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이제껏 벌었던 돈의 수준과 비교하면 단연 높다. 그래서 돈을 사용하는 방법과 모으는 방법 등을 알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더 큰돈을 벌 날이 올 텐데, 그날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오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큰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눈에 보인다. 돈에 대해 지난 글에서 썼던 내용이다만, 정말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지고도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누리기보다 세상에 환원하고 그 시장에 직접 들어가서 새로운 환경을 만드시는 어른을 보았다. 그분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돈을 사용하시는 것이라 표현하신다. 돈을 쓰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 나의 돈은 정말 적지만, 배운 대로 행해야 한다. 아직 그러진 못하고 있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 친구들과 만나도 돈을 버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친구들과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내 친구들 꽤나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있었다. 하는 일의 가치를 공감하면서, 20대에는 조금 덜 벌어도 많이 배우고 느끼자는 대화를 나눴다. 시기적으로 삼십 대에 돈을 더 벌면 되기에 20대에는 (상처 받지 않으며) 배우며 돈을 벌자는 생각인 것이다. 30대가 되면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욱이 기회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지금 많이 배우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큰돈을 버는 20대 친구, 형들이 몇 있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무게를 견디는 중이기 때문에, 분명히 배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돈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가. 이게 정말 중요하다. 


내게도 유혹이 있었다. 투자 방법 중 외환 투자를 배울 뻔했다. 불법도 아니고, 잘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내게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하신 분은 그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셨다. 그러나 손을 잡지 않았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의 계좌를 이용해 자신의 돈을 벌기 위한.. 그림이랄까. 그 사실을 눈치채고 손절을 했었다. 조금 멀리 봤던 것 같다. 지금 당장에 그 일을 했으면 혹시 모르지. 외제차 타고 떵떵거릴지. 그러나 멀리 보니까, 나의 계좌를 이용한다는 것은 어떠한 결과라도 내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을 의미했다. 또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내게는 꿈과 방향성이 있었다. 지난 모든 날을 뒤로하고 인생을 투자하기엔, 내가 너무 아까웠다. 종종 그 당시 그분과 일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 선택이 인생의 방향성을 갈고닦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게 비슷한, 동일한 제안이 온다 한들. 그 제안의 먼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미래가 그려진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소명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시려고 지난날을 경험하게 하셨나. 싶은 생각도 한다. 물론 지금 내가 그리는 미래 그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상상하면 현실이 되지만, 정확하게 실현되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신 미래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고, 그 돈을 버는 과정과 돈보다 더 큰 가치를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오늘도 아버지가 드실 빵을 사서 집으로 왔고, 오는 길에 아버지와 먹을 치킨을 배달시켰다. 빵과 치킨. 정말 작고 소박하다. 그런데, 그게 좋다. 언젠가는 아버지께 빵을 사드리고 싶어도 못 사드리는 날이 올 테고, 함께 치킨을 먹지 못하는 날이 올 테니까. 돈은 오늘의 행복을 사는 도구인 것 같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삶에서 느끼고 베풀며 살라고 허락하신 것 같다. 나는 아직 나의 모든 재정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으나, 이렇게 알려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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